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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민 Sep 13. 2022

수능 때까지 우리 아이 학교 안 보낼게요.

대한민국은 입시공화국

수능 때까지 우리 아이 학교 안 보낼게요.


8월의 마지막 날. 우리 반 학생 한 명이 미인정결석, 쉽게 말해 무단결석을 했다.

아침부터 학교가 끝날 때까지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기다리던 아이는 오지 않았다.

보호자 분도 일이 바빠 퇴근 후 늦은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대뜸 본인의 자녀가 수능 공부를 해야 하니 학교를 나가지 않도록 도와 달란다.


응? 나는 이런 말을 들으려고 연락드린 게 아니었는데?

평소에도 사흘이 멀다 하고 배가 아프다,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며 학교를 잘 나오지 않는 학생이었기에

가정에서 잘 지도하여 고등학교 생활을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부탁드리려고 했단 말이다.


그런데 되려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테니 '알아서 잘 처리'해 달라니??


요지는 이랬다.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2시간으로 체력소모가 큰 데다가

학교 특성상 교육과정이 정시 준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학교 대신 '관리형 독서실' 보내서 정시 준비를 하겠다는 것.


그러니 담임선생님께서는 무단결석 대신
체험학습이나 질병결석 등의 처리를 해 주고


고등학교 졸업을 위한 최소한의 수업일수를 채워
무사히 졸업장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얘기.


누가 들어도 너무나 황당한 요구사항이었지만

처음 겪는 상황과 물러 터진 성격 탓에 그저 알겠다고, 

보호자 분의 요구사항에 최대한 맞추겠다고 대답해 버리고야 말았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니 지하철에 몸을 싣고 가다가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그저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걸까?


고등학교는 대학을 가기 위해 스쳐 지나가는 발판인 걸까.


각자 원하는 분야로 진학하여 전공 공부를 할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쳤던 나의 수업과 생활지도에 쏟아부었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인 걸까.


우리 학교는 강남 8학군도 아니고, 인문계 고등학교도 아니고,

직업교육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인데 이런 곳에서조차 수능 준비를 위해 등교를 하지 않겠다니.


새삼 대한민국에서 대학 입시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나도 어릴 적 공부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고, 명문으로 불리는 대학을 나왔지만 

대학이 인생에서 전부가 아님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터.


긴 고민 끝에 보호자께 다시 연락을 드리려 한다.

독서실에 다니는 것보다는 학교에 매일 등교하여 자습시간을 활용하여 공부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학창 시절인데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급식도 나눠먹으며 지내는 것이 아이의 인생에도, 수능 성적에도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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