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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민 Sep 20. 2022

타인의 욕망이 나의 욕망인 줄 착각하도록 부추기는 세상

정재승 '열두 발자국'

타인의 욕망을 나의 욕망인 줄 착각하도록 부추기는 세상입니다.


정재승의 책 『열두 발자국』에 나오는 구절이다.

타인의 기준과 시선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괴로운 시간을 보내던 나에게 이 말은 신의 계시처럼 큰 울림을 주며 날아왔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남들보다 많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기.


이것이 ‘남 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일반적인 삶이라고 여겨진다.

이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부모나 주변의 기대에 맞춰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 떠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이런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다르다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잘 알고 그 길로 가고 있다고 굳게 믿어왔다.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간호학과를 진학한 것부터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었고, 병원 입사, 여러 번의 이직, 대학원 진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엔 대학교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까지 모두 내가 원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그러나 모두 나의 착각이었다.


이것들은 내가 직접 경험하고 그린 나의 삶의 지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대신 그려준 가짜 지도에 불과했다.


언제부터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타인의 기준과 욕망에 맞추게 되었을까.

확실한 건 대학을 다닐 때는 보람과 자부심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을 도울 때가 가장 행복했기에 간호학과를 지망하게 되었고, 성적에 맞춰서 전공을 정한 것이 아니다 보니 공부와 병원 실습을 병행하면서도 즐겁게 대학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그 후 병원 입사까지 1년 정도 여유가 생겨 대학원에서 조교를 하게 되었는데 사춘기에도 겪어보지 못한 질풍노도의 시기가 이때부터 시작되어 버렸다.


당시에 동료로 같이 일하던 분들은 대부분 마흔이 넘은 나이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공부하긴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시는듯했다.

그러면서 너는 아직 어리니 얼른 공부를 시작해서 교수가 꼭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해 주셨다.

처음 들었을 때는 얼떨떨했지만 계속해서 비슷한 얘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대학교수가 나의 목표가 되어 있었다.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닌 것도 연구실적과 실무경험 등의 스펙을 쌓아 교수가 되기 위한 발판이었던 셈이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중요한 연구를 하고, 유명한 교수님들과 인맥을 쌓는 것을 행운으로 여기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렇게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이력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지만,

내 안의 열정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사그라지고 있었다.


왜일까.

그토록 바라던 교수의 꿈에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는데 왜 하루하루가 더 괴롭게만 느껴질까.

답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억지로라도 노력하다 보면 길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대학원에 입학한다면 배우고 싶은 전공은 따로 있었지만,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학부 때와 마찬가지로 간호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매우 유리했기 때문에 마음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러나 대학원 졸업 논문을 쓰면서부터 나의 괴로움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아니,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그때야 조금씩 생겨났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직업은 사실 교수가 아닌 교사이다.


평소에도 친구들이 어려워하는 과목은 혼자 논문을 찾아 공부한 다음에 교수님보다도 더 쉽게 설명해주는 것에 보람을 느끼곤 했다.

대학교 4학년 때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는 4주가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려 아쉬움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

교사의 역량과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학생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나서 그 매력에 푹 빠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나의 본심은 숨겨 두고 더 높은 꿈을 꾸는 척 연기하며 몇 년을 살아왔다. 그러다 더 견디기 힘들어져 나의 멘토라고 할 수 있는 분께 조언을 구했는데 내 생각을 존중해 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더욱 쓴소리만 듣게 되었다.



교수와 교사.


비슷한 단어이고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공통점은 있으나 사회적인 지위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지금은 편한 길을 가고 싶겠지만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면 굉장히 후회하게 될 거라고.

그러니 지금 좀 힘들더라도 노력해서 교수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 얘기를 듣자마자 나만의 지도를 그려 나가야겠다는 다짐은 또다시 무너졌다.

현명한 어른이라고 생각하던 분의 말을 들으니 현실의 어려움은 모르고 이상만 좇는 애송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성세대가 그려 놓은 지도 속으로 다시금 들어가 버렸다.


나만의 길을 가기 위해 계속 애쓰고 있었지만, 급변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것저것 경험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학기만 휴학해도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면접관에게 입증해야 하는 시대이니.

그보다는 남들이 좋은 길이라고, 이 길로 가면 안전하다고 정해 놓은 길을 가는 것이 맞는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어떤 직장이 더 좋아 보이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물으며 다섯 번이나 이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타인의 기준과 욕망에 나를 맞출 수는 없었다.


나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되었다.

나중에 후회할지언정 오늘 당장 행복해지고 싶었고, 오랜 방황 끝에 드디어 타인의 욕망이 아닌 나의 욕망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목말라 있던 태도를 버리고 온전히 내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조금씩 나의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나만의 내비게이션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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