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나
친구라는 말은 나에게 있어서 낯설면서도 괜찮은 말이다. 나는 중학교 이후로 친구가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전부 중학교 친구였다. 그 이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된 까닭은 참 모르겠다. 그리고 주변에 오는 사람들이라곤 내가 먼저 다가갈 때 이상향을 바랐던 건 아니지만, 결국에는 나의 삶을 바꾸러 오는 것이 좋지 않아서 그저 눈을 지레 감고 사라져 버렸다. 그 중간 관계성이 관측되지 않아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 친구라는 말에 반가움이 드는 건 결국 중학교 친구뿐이었다. 그 열 명 남짓한 인간관계에 참작한 나는 뭘 만들어 내는 것조차 그 한정된 인간관계 내에서 자아에 침잠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잠깐의 시간 속에서 나는 외향성을 비춰냈다. 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나의 외향성을 표출할 길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표출하는 것이 글로서 표출하는 것 그것 하나에 매몰되어 있다. 다른 매체 말이라던가 글로 표출하는 것 등에 있어서는 사진, 이미지, 글 중 마지막에 매몰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 안에서 뭘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전부 글로 정제되어서 되지 않는 이상 나의 그 야망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했다. 우선 돈을 버는 것,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제1의 원칙이 되고 나서 뭔갈 할 수 없게 되었다. 주변과의 인간관계가 끊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현재의 삶에서 경제 자폐증에 걸린 것만 같이 행동하고야 말았다. 나의 모든 매매 명세를 살펴보는 것 외의 일들은 헛된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학교와의 관계를 불태우고 말았다. 그 이후에 그 모든 이야기들을 전부 암호화하고 복호화 자체를 잘못하도록 전부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와 아무 이야기도 하기 싫었다. 아마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데이터는 이미 전부 가져갔으리라. 그 중간 탈취자로서 뭘 할 수 있는 걸까. 우선 금융권에서 자금을 다르게 보이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그건 그 녀석이 이미 한 것이다. 그래서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