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항상 소심해서 앞에 나서지 못 했고, 이런 나를 어디가서 소개할 때 항상 '소심'하다는 말이 수식어처럼 따라다녔다. 부모님께서도 어디 나가서 나를 소개할 때, "소심해서 우리 애가 말이 없어요" 라며 '소심'이라는 한단어로 나를 표현했다. 그렇게 나는 더더욱 소심해져가고 있었다.
학생회장을 했던 언니와 다르게 소심하다는 이유로 반장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생 3학년 때 반장이든 부반장이든 하지 않으면 정말 후회가 남을 거 같아 용기내서 반장 선거에 나갔다. 한 번도 반장을 해본 적이 없기에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기에 떨리는 목소리로 "반장이 된다면 ... 하겠습니다." 하면서 포부를 말했다. 아쉽게 반장은 되지 못 했지만 부반장이 되어서 처음으로 남들 앞에 나서서 리드를 해보았다. 새롭고 묘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그 직책을 맡았기에 거기에 따르는 행동도 해야 했고, 처음 나설 때는 떨렸지만 계속해서 하다보니 익숙해졌다. 내가 나서는 것을 어려워했던 이유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수해서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여 남들이 나라는 존재를 모르게 숨기려고 했던 거 같다. 하지만 리드가 되어보고 나서보니 처음엔 어색했지만 별 거 아님을 느꼈다.
어렸을 때부터 소심했던 성격이 활발한 성격으로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3년이었다. 어렸을 때 MBTI 검사를 하면 항상 I(내향형)가 나왔다. 하지만 성격이 바뀐 이후 검사를 할 때는 항상 E(외향형)가 나왔다.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여행'이다. '여행'은 나를 바꾸기에 아주 충분한 수단이었다.
처음 내가 해외를 갔던 곳은 캐나다였다. 혼자 갔기 때문에 내가 소심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 '혼자'라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밝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놀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 욕심으로 나는 영어 이름을 '졸리'로 정했다.
'즐거움, 유쾌함' 뜻을 내포한 졸리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었다.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캐나다 어학원에서 만나는 외국인들한테 먼저 다가가 "HI~, WHAT'S YOUR NAME?" 등 어쭙잖은 표현을 써가며 적극적으로 변하려고 했다. 신기하게도 외국에서 이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잘 받아줘서 짧은 한 달이지만 100여명의 친구를 사겨 인근에 여행도 함께 다녔다.
결국 내가 느낀 가장 큰 깨달음은 소심하게 만드는 건 '나'였다. 조금은 무모했어도 되었는데 말이다.
스스로가 소심하다며 각인시켰기 때문에 낯선이들에게 말 거는 게 두려웠던 것이었고, 리드하는 게 두려웠던 것이었다. 어떤 것이든 처음 시작을 할 때 어색하고 어설픈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지내왔던 것이다. 어색하고 어설프다는 이유로 피했고, 그렇게 피하면 피할수록 스스로가 더더욱 소심해지고 있었고 우물안 개구리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를 바뀌게 하는 것도 나 자신이고, 노력해야 하는 존재도 '나'이다. 모든 게 나의 행동과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나처럼 소심한 성격에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고 싶다면 어색해도 참고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다.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