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귀한 것
은행원의 꿈을 갖고 경영학과에 진학했으나,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대학생 때 남들처럼 아르바이트하고, 여행 다녀오고, 진로에 맞는 금융 자격증도 취득했다.
어학연수 한 번, 교환학생 한 번을 다녀오는 바람에 금융권 관련 대외할동이 시간상 맞지 않아 하나도 없었다. 취업할 때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거 같은 불안감이 컸다.
대학생 대외활동 커뮤니티에서 찾은 금융권 관련 주식 동아리를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운영했기에 타 지역 대학생도 많았고, 동기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미있을 거 같았다.
명문대 회장이 운영하는 주식 동아리인데, 회장이라는 분이 개인 톡으로 연락이 왔다. 본인은 이 동아리를 키우는 게 소원이라며 , 동아리 홍보 대가로 한 달에 70만 원을 준다는 것이다. 나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했기에, 여행 자금 모으기 위해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게 나의 이름으로 된 1500만 원 대출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당시 제3금융권 최고 이율까지 적용한 대출이었다. 그 만남 이후에 계속 대출 관련 문자가 왔고 그때서야 직감했다.
정말 죽고 싶었다.
순식간에 빚쟁이가 되었고, 나의 존재가 싫었다.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저지른 일이니, 돈은 갚고 죽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처음으로 자살..이라는 것에 공감을 하게 되었고 5일 동안 한숨도 못 자고 울기만 했다.
그렇게 힘든 순간에 내 옆에는 정말, 가족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가족보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는 연락 한 통 없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모진 말만 남기고 떠나갔다.
그렇게 나는 친구도 돈도 모두 잃었다.
나로 인해 가족이 울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컸고 어리석은 스스로가 용서되지 않았다.
늘어나는 이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부모님께서 일단, 나 대신 상환해 주었다. 취업 준비도 해야 하는 상황인데 모든 것을 도전할 용기도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은행 관련해서 대출의 '대'자도 듣기 싫었다.
누군가에게 대출을 권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수치스럽고, 무서웠다. 아직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고, 트라우마가 되어 은행 근처에도 잘 안 간다. 그런 고통을 이겨내고 은행원이 될 자신은 없었다.
우연히 법 자문을 하러 법원에 갔다가 법원에서 1년 정도 봉사를 하게 되었다. 대가 없는 베풂이 좋았다. 작은 베풂에도 감사하다고 하는 사람을 보는 게 좋았다. 봉사를 하면서 잃었던 자존감도 점점 회복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일이 하고 싶었고, 그러면서 돈도 벌고 싶었다.
막연하지만 타인에게 베푸는 일, 나의 존재가 신뢰받는 일,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 하고 싶었다. 그게 공직자라 생각했다. 남들보다 늦게 도전했기에 불안한 마음이 컸다. 특히 부모님께 진 마음의 빚과 현금을 생각하면 빨리 취업해서 갚고 싶은 마음이 컸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하루 종일 울었던 적도 있고, 자살 충동을 느끼며 절망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합격했을 때 나보다 기뻐해 주는 부모님이 계셨고, 언니가 있었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월급을 받지만 그래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이유는 '공'이라는 이유로 나를 신뢰하는 사람이 있고, 소외된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하루가 존재한다는 것.
비단 공직자만이 꼭 그런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당시 나의 좁은 사고로 생각해 낸 최선이었고, 지금 나는 충분히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 월급이 조금 더 올랐으면 하는 바람은 늘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