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 섞였다고, 왜 전부를 감당해야 하지?
나는 가족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건 감정의 이름이 아니라,
의무의 족쇄처럼 느껴진다.
“가족인데 어떻게 그래.”
“그래도 네 엄마잖아.”
“부모님이 널 낳아주셨잖아.”
그래서 내가 병든 가족을 책임져야 하나?
그래서 내가 대출을 떠안아야 하나?
그래서 내가 침묵해야 하나?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입 안에서 욕설이 맴돈다.
피 한 방울 섞였다고,
왜 전부를 감당해야 하지?
그들은 내 삶에 책임지지 않는다.
그들은 내 병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병을 만든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사회는 나보고 참으란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나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싫다.
그 말엔 감정이 없다.
그건 구속이고, 족쇄고,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을 침묵시키는 도구일 뿐이다.
내가 만약 내 집을 나가면,
내가 스스로 살아가게 되면,
내가 거리를 두게 되면,
사람들은 내가 싸늘하다고 할 것이다.
냉정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래, 맞다.
나는 냉정해질 것이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식이니까.
나는 가족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걸 믿는 척했던 시절엔
내가 병들어갔다.
지금 나는, 살아남고 있다.
가족이라는 말 바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