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민관
세상에서 태어나 그토록 오랜 시간을 지루하고, 갑갑하고, 시끄러운 소음에 시달리며 좁은 의자에 홀로 앉아 보낸 경험이 없었다.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기내 음식은 입에 맞지도 않고 화장실 한번 가려면 옆사람이 일어나 비켜줘야 하고 등등.. 틴에이져도 벋어 나지 않은 나이의 혈기 왕성한 운동 체질이라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옆자리에 앉는 젊은 여자는 필리핀에서 아기를 데리고 캐나다로 이민 가는 길이라 했다. 한살이나 되었을까, 아기는 시도 때도 없이 칭얼대고 그 여자는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려고 젖을 물리고.. 옆에 앉은 나는 민망해 눈길도 못 돌리고.. 그렇게 11+ 시간을 견디고 기력이 다 빠져나갈 즈음 드디어 비행기가 밴쿠버 공항에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
밴쿠버 공항이 어떻게 생겼는지 짐은 어떻게 찾았는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아마 몸은 너무도 지쳤고
시차 적응도 안되어 그저 몽롱한 상태에서 사람들을 따라 Customs/Immigration(입국 수속) 창구에 도달했을 것이다. 창구에 여권을 내밀었다. 푸른 제복을 입은 이민관이 여권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도장을 쾅 찍고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나를 쳐다보았다.
You just made it.. on the last day of your visa validity.. 드디어 도착했군요. 비자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
Welcome to Canada!!
Your immigration process has now concluded. 이민 수속 절차는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You are now a permanent residence of Canada. 이제부터는 당신은 캐나다의 영주권자 입니다
라고 말을 했었으리라 기억되는데 아마 그 당시엔 변변치 않은 영어 실력과 비몽사몽의 정신 상태
등이었을 터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었을 것이다. 그저 저 친구 참 말도 많이 하네..라는 표정으로 멍하게
서 있었을 것으로 상상되었다. 여권을 받아 들고 이민관이 한 말이 궁금해 비자가 붙어 있는 페이지를 들쳐 보았다(당시엔 비자가 작은 종이였고 여권에 스테이플러로(그때는 호치케스라고 불렸음) 꼭 집어 붙어
있었다. Immigration이라고 쓰인 날인과 날자가 찍혀 있었다. 그것으로 나의 이민 수속이 종결되었고
그 종이가 나의 영주권이 된 것이었다.
아 드디어 내가 캐나다에 온 것인가 생각하며 사람들을 따라 가는데 또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얼핏
가방 검사가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미 이삿짐을 다 부친 후라 내 가방은 그리 크지 않았다. 내 차례가 되어 테이블 위에 가방을 올려놓자 여권을 달라며 푸른 제복의 덩치가 아주 큰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여권을 주자 한번 열어 보더니, “Please unzip your luggage”
라고 말했는데 이 말이 생소했다(그래서 기억함). 오픈 유어 백이 아니고 언짚… 러기지.. 아 지퍼를 내려
가방을 열어라… 젠장 좀 쉽게 말하면 안 되나.. 속으로 구시렁대며 가방을 열었다.
내가 지퍼를 주르륵 댕겨 가방을 열자 검은 가죽의 성경책이 맨 먼저 눈에 띄었다. 어머니가 쓰시던
성경책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어머니는 챙기지 않으셨다. 아마도 나 혼자 두고 가시면서 성경을 열심히
읽고 딴짓하지 말라는 의미로 일부러 놓고 가셨으리라 짐작했었다. 물론 한 번도 성경 책을 열어 보지도
않았지만.. 가방을 싸면서 까맣게 잊고 있다가 공항으로 떠나기 직전에 눈에 띄어 챙겼다. 성경책이 눈에
띄자 덩치 큰 남자는 놀라는 기색을 짓는 듯하더니 곧바로 가방을 닫았다. 그리고는
웰컴 투 캐나다 하며 그 큰손을 내밀었다. 내손이 자동적으로 튀어 나갔고 우리 둘은 마치 오랜 친구가
만난 듯 악수를 했다.
그렇게 나는 우여곡절 끝에 비자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 캐나다에 도착했고 캐나다의 첫인상은 아주 강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