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1971년 토론토 도착

신 동파, 이산가족

by Engineer

서울을 떠난 지 24여 시간 만에 드디어 나의 마지막 종착지인 토론토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가 한참 지나서였다. 국내선이라 따로 수속도 없었고 가방만 찾아 나오면 되었다. 먼저 가방을 찾은 파독

부부가 함께 나가자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네다 공항에서 처음 만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나의

토론토 가족 이야기도 간략하게 했었다.


한국을 출발하기 며칠 전에 이민 수속을 담당했던 회사에서 토론토의 가족이 이사를 했다며 주소를

알려주었다. 가족이 나한테 연락을 취했었으나 내가 섣부르게 전화 서비스를 캔슬하는 바람에 연락을 받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민 수속 회사에서 이런 메시지 전달 서비스까지 제공했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친김에 나는 그 회사에게 나의 비행기 일정을 알려주고 토론토 가족한테 공항에 마중 나올 수 있게 메시지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이야기를 그 파독 부부에게 했는데 그분들은 혹시나 해서 나를 일부러 기다린 것 같았다.


공항 로비에 나오자 한국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가족이나 친지들을 마중 나온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내

식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겁이 덜컥 났다. 아니 난 어쩌라고 이 낯선 세상에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았단 말이냐…. 당혹, 불안, 등등 온갖 좌절스런 감정이 목구멍까지 꾸역꾸역 올라와 울고

싶었다. 나의 상태를 눈치챈 파독 부부가 내게 걱정하지 말라며 집 찾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함께

가자고 나를 달랬다. 이역만리에서 길 잃은 강아지가 된 나는 그분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것 밖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난 그분들을 따라 공항버스를 타고 토론토 지하철의 맨 서쪽 끝 역인 이스링톤에 도착했다.

설명에 의하면 토론토 다운타운을 가로지르는 지하철 노선이 있는데 그 지하철을 타고 영스트리트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집까지 갈 수 있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태어나 처음으로 지하철을 탔고 느낌은 기차가 긴 굴속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늦은 밤이라 그런지

승객들은 별로 없었다. 지하철 안에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냄새가 있었는데 지하철이 움직일 때마다 그

냄새가 내 코 속으로 훅하고 들어왔다. 그 이상한 냄새는 겨드랑이 땀내 같았지만 무엇인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몇 년 후 지하철 타고 토론토 대학 다닐 때 늦은 오후 수업이 끝나고 지하철을 타면 그 냄새가

유난히 독했었다. 듣기로는 토론토에 많이 사는 특정 유럽인들의 치즈 중심 식생활 때문이라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토론토 생활에 적응이 되면서 내 코는 더 이상 그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었다.


이스링톤 역을 떠난 지 약 30분이 채 못되어 영스트리트 역에 도착했다. 파독 부부의 설명에 의하면 자신들과 함께 영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 운전수한테 가족의 집주소를 알려주면 택시가 집까지 데려다 줄거니 안심하고 택시를 타고 가면 된다 였다. 그리고 댄포스는 영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오래 안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내려 바깥으로 나오자 택시들이 보였다. 남편분이 택시를 잡아 운전수한테 집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쿨하게 나한테 굿바이를 하고 퇴장했다. 난 속으로 잠깐 당황했다. 나의 은근한 바람은 집까지 또는 아주

가까이 까지 함께 가주려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그분들은 나름대로 나한테 최선을 다 했음을 알게 되었다. 차도 없는 분들이 토론토 외곽인 스카보로까지 나를 데려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택시에 오르자 운전수는 나를 거울로 힐끔 보더니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코리아에서 왔다고 말하니, 아,

아이노 코리아 라며 자신은 필리핀에서 왔다며, 느닷없이 두유 노 동파, 바스켓볼 플레이어?라고 물었다.

동파? 문득 신동파 선수를 말하는 것 같아, 아 예스 아이 노 동파. 훼이머스 바스켓볼 플레이어 인 코리아. 1969년 한국 농구팀이 아시아의 최강 챔피언으로 군림했던 필리핀을 이긴 후 게임에서 맹활약했던 신동파

선수는 필리핀의 전설이 되었다고 한다. 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 친구는 야심한 시간에 대화 상대를

만나 즐거웠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동안 열심히 늘어놨다. 나는 주로 듣기만(듣는 척?) 하고 가끔, 아

예스, 메이비, 오케이 등등으로 대답만 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약간의 두려움이 생기려 할 때쯤 거의 다 왔다며 운전수가 앞쪽에 보이는 커다란 빌딩을 가리켰다. 그리고 영에서 내 주소지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며 다음에는 지하철의 마지막 종착지인 워든에서 내려야 훨씬 더 가깝다고 알려줬다. 내 주소지는

토론토 동쪽 외곽 스카보로에 있는 댄포스 로드였고 남편 분이 말한 댄포스는 댄포스 아베뉴로 토론토

다운타운에 있는 길이었다.


그렇게 인적도 없고 어두운 거리를 약 40여분 달려 가족이 산다는 아파트 빌딩 앞에 도달했다. 빌딩 앞

처마에 1360 이란 숫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택시미터에 7달러가 조금 안되게 나와 있었다. 나는 10달러를

꺼내 주며 잔돈은 괜찮다고 keep the change라고 쿨하게 말했다. 그 친구는 놀래며 잔돈이 너무 많다며

1달러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저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준 것만으로도 감사해 한사코 it’s ok라는

말만 했다. 그러자 그는 땡큐 마이 프렌드라고 하고는 얼른 택시에서 내려 내 가방을 아파트 문 앞까지 가져다주었다. 토론토 생활이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 한잔에 5센트, 식빵 한 봉지에 13센트였음을 알게 되었고 그

필리핀 운전수가 왜 그리 놀랬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난 그에게 3끼를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돈을 서슴없이

내준 것이었다. 당시엔 맥도널드 빅맥, 프렌치프라이, 콜라의 한 끼가 1달러도 채 안되던 시절이었다.


가족이 산다는 아파트는 상당히 큰 건물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쪽에 또 다른 문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안쪽의 문은 잠겨 있어 열리지 않았다. 벽에 붙어 있는 패널에 아파트 방 번호인듯한 숫자들이 있고 그

밑에는 버튼들이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신호가 가는 것으로 짐작돼 주소에 명시된 방 번호 아래 버튼을

눌렀다. 작게 뚜르르 하는 소리가 났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또 한 번 버튼을 누르자 몇 초 후에 안쪽

문의 잠금장치가 열리는듯한 소리가 들려 얼른 문을 열었다. 밤 열두 시 반이 넘은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건물 안은 고요했다. 서너 개의 계단을 올라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일분 후 나는 내 가족의 아파트 방문 앞에 도달했다.

똑똑독…

똑똑똑……

방문이 조금 열리고 여동생이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었다..

누구세……

으악…. 오빠…. 오빠아…….

빨리 엄마 아빠 깨워… 오빠가 왔어…..

동생들이 방 안에서 난리 부르스를 치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잠옷바람으로 뛰어 나오시며 나를 끌어안았다..

아니 니가 어떻게 왔니… 우린 너 못 오는 줄 알고 있었는데……

나의 캐나다 정착은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반세기가 넘은 지금도 드라마틱했던 가족과의 그 재회 장면은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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