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1971년 여름 캐나다 스카보로

주유소 알바, 결투

by Engineer

1360 Danforth Road, Scarborough, Ontario, Canada 가 내 집의 주소가 되었다. 한국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면 난 항상 “친구야 내가 사는 동네가 스카보로야. 싸이먼 앤드 가펑클이 부르는 노래 스카보로

페어에 나오는 그 동네 마랴.” 실제로 1900년대 초까지 Scarboro Fair라고 불리던 농업 쇼가 그 스카보로에 존재했다고 위키피디어에 나와 있다. 그러나 이 노래의 원조는 영국 요크샤이어에 있는 Scarborough이고 중세기에 이 동네에서 물물교환 박람회가 열렸었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스카보로 페어 노래의 상징적인 의미는 순수한 사랑이라고 한다.


가족이 사는 아파트는 빌딩 가운데에 3개의 엘리베이터 공간을 기점으로 3방향으로 복도가 나 있는 구조의

14층 건물이었다. 총 168 가구가 살고 있었고 인구 구성은 아시아 계통은 우리밖에 없었고 웨스트 인디

(자메이카, 가이아나, 캐러비언 섬나라들..) 가족들 네댓과 나머진 모두 백인들이었다. 빌딩 슈퍼 이름은

미스터 왓츠였고 나이는 50대 중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퇴역 군인이셨다(1). 전쟁 당시 20대 이셨던

아버지도 전쟁에 참여했었기에 두 분은 생사를 같이 한 전우라며 가까이 지내고 계셨다. 가평전투에서 약간의 부상을 입었던 미스터 왓츠는 금요일 오후면 영락없이 맥주 서너 잔을 마시고는 아버지와 전쟁 이야기를

하셨다. 아버지도 전쟁 시 팔에 관통상을 입으셨기에 커다란 상처가 남아 있어서 두 분은 누구 상처가 더

큰지 항상 티격태격하면서 입씨름을 하시곤 했다. 가끔 두 분의 술시중을 들었던 나는 아버지의 서툰 영어

대화 능력이 술에 취하실수록 나아지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당시엔 원인은 알 수 없어 그냥 흥미로운 현상이라고만 생각했었다(2).


미스터 왓츠에겐 나보다 한 살 아래인 부치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를 닮아 큰 키에 근육질의

몸매를 지녔다. 학교에서는 미식축구 선수였고 잘 생긴 덕분에 여자애들을 늘 달고 다녔다. 1970년 초

당시에는 홍콩에서 제작된 중국 쿵후 영화들이 북미에 들어와 큰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캐나다도 예외는 아니어서 젊은이들 중심으로 쿵후(Kung Fu), 태권도, 가라데, 등에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아시아에

관한 정보가 많지 않았던 시대라 이런 영화를 본 젊은이들은 모든 아시아인들은 무술을 배운 사람들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부치도 그중에 하나였는데 나와는 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한테

조심스레 너도 무술을 할 줄 아냐고 물어왔다. 캐나다 오기 전 한 일 년 동안 동네 태권도 도장에 다녔던

경험이 있어 조금은, 아니 아주 많이 과장스레, 아 난 태권도 2 단야라고 말했는데 그의 눈이 붕어 눈처럼

커졌다. 그들에게 태권도 2단은 감히 넘사벽이었고 난 순식간에 동네의 무술 고수가 되었다. 나의 실제

실력은 초단 승급 심사를 얼마 앞두고 캐나다로 떠나 왔지만.. 그 대화 이후로 나는 부치의 절친들 무리 속에 들어갔고 내 캐나다 삶의 레벨이 급작스레 향상되었다. 부치와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레 자신이 알바하고 있는 주유소 사장님한테 나를 소개해 나도 알바를 뛰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해보지 못한 알바를 캐나다에서 그것도 서툰 영어로 생전 처음 하게 되었고 그 알바는 내 삶의

방향을 통째로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주유소 일은 말 그대로 자동차에 휘발유나 경유를 넣어주는

일인데 일은 쉽지만 하루 종일 일을 하다 보면 옷과 몸에 휘발유 냄새가 배기도 했다. 내가 일하던 주유소는 쉘오일 같은 대기업이 아니고 이름 없는 작은 회사라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그런 이유로 학생들이나 저소득층들이 많이 이용을 했는데 늘 긴장하지 않으면 사기를 치는 부류들이 종종 있었다. 주유소 사기는

주로 차들이 많이 모이는 바쁜 시간대 6대의 주유 펌프가 모두 급유를 하고 있을 시 일어난다. 연휴가 겹치는 금요일 오후 동네 YANG아치들이 차를 몰고 와 소량을 주문하면 직원이 차의 휘발유 공급 뚜껑을 열고

급유기(펌프 노즐)를 구멍에 넣어 펌프를 작동시키고 다른 자동차들의 급유를 살피러 간다. 고 사이에

YANG아치 놈이 차에서 슬그머니 나와 펌프에 달린 스위치를 순식간에 껐다 다시 켠다. 그러면 펌프 미터는 다시 영에서 시작하게 되고 그전까지 넣은 휘발유는 고놈이 공짜로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정산 시 이런 것들이 튀어나오고 때로는 고스란히 알바생들이 물어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알바를 시작하고 나서 동네 Y아치들이 나를 타깃으로 삼았다. 어눌한 영어에 익숙지 못한 작업 행동 등 그들한테 나는 사기 치기 쉬운 먹잇감이었다. 부치가 나한테 조심해야 하는 무리들을 알려주고 절대로

한눈팔지 말라고 경고해 주었다. 그랬는데, 캐나다 데이 연휴 주말 오후 갑작스레 몰려든 차들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뛰어다니게 되었다. 하필이면 그날은 다른 알바생까지 결근하는 바람에 나 혼자서

동서분주하고 있었다. 차 한 대가 막 계산을 끝내고 떠난 펌프 앞으로 재빨리 와 섰다. 한눈에 부치가 말한

Y아치 무리들임을 알았다. 경계 수위가 확 올라갔다. 창문을 내리고 운전수가 Filler up(Fill her up: 가득 채워)라 고 말했다. 차 뒤쪽의 휘발유 통 뚜껑을 열어 급유 노즐을 넣고 펌프를 작동했다. 풀 탱크니 지켜볼

필요가 없어 다른 자동차들의 급유 상태를 살피러 움직였다. 하지만 나의 눈길은 그쪽으로 가 있었다. 운전수놈이 슬그머니 내리는 것이 보였다. 급유를 끝낸 차의 계산을 하면서 옆 눈길로 그놈을 주시했다. 그놈이

펌프 스위치 쪽으로 가더니 펌프 스위치와 나 사이에 서서 내 시야를 가렸다. 귀를 기울였다. 찰카닥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놈이 순식간에 스위치를 껐다가 켠 것이었다. 그리고는 태연히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태연하게 펌프가 자동으로 스톱하기를 기다렸다. 휘발유 탱크가 가득 차면 펌프는 자동으로 스톱을 하게 되어 있었다. 펌프가 스톱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난 곧바로 가지 않고 다른 차들의 급유를 끝내고

계산까지 한 후 그놈한테 가기로 했다. 그놈 차 뒤에 있던 단골 자동차의 운전수가 나한테 손 시늉을 했다.

저놈이 펌프를 끄고 켰다고… 난 눈을 끔뻑하며 입으로 땡큐 소리 없이 말했다.


드디어 결투의 시간.. 난 아주 천천히 그놈한테 다가갔다. 펌프 미터를 체크했다. 꼴랑 2.65달러. 급유 시 난

일부러 펌프 속도를 느리게 작동했었다. 펌프 작동 시작하고 그놈이 차에서 나온 시간은 대충 30초

후였으니 대략 2달러 정도를 꿀꺽 한셈이다. 그놈이 3달러를 내밀었다. 난 그 돈을 잡아채고 2 more dollars 라고 소리쳤다. 내 목소리가 컸는지 그놈이 움찔했다. 그놈이 펌프를 가리키며 2.65 달러라고 소리치자

차 안에 있는 놈들도 덩달아 2.65달러야.. 라며 웃고 떠들어 댔다.

I saw you what you did.. Fxxxx YANG AH CHEE….

What! Fxxing what?

Shut the fxxx up..you fxxx YANG AH CHEE.. 2 dollars more now!!


내 기세에 놀랬는지 그놈들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한사코 펌프를 가리키며 2.65달러라고 고집하고 있었다.

주위가 소란해졌다. 주유가 끝난 자동차들은 빨리 계산해달라고 빵빵대고 .. 마음이 급해진 나는 한번 더 큰 소리로.. 2 DOLLAS MORE!!! 그러자 덩치 큰 녀석이 반대편 문에서 나와 차에 비스듬히 기대며 fxxx chink(중국인 비하 비속어)…라고 소리치자, 운전수 놈이 기가 살았는지 얼굴을 창밖으로 내밀고는 나한테 침을 뱉었다. 순간 나의 태권도 본능이 발동했고 나의 손바닥이 그놈의 귀 싸다기를 향해 날아갔다. 소리가 엄청났다. 얻어맞은 놈이 순간 정신을 잃었었는지 한 2,3초 멍하더니 모라고 주절대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난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어 get the fxxx out YANG AH CHEE라고 내뱉자 그들은 쏜살같이 차를 몰고 도망을 갔다. 뒤에서 이 광경을 모두 목격한 차주 한분이 나를 위로하며 팁으로 2달러를 건네주고 내가 사양할 기회도 없이 휘리릭 떠났다. 이 사건의 소문이 온 동네에 퍼지고 그 YANG아치들을 비롯한 모든 아치들은 더 이상 주유소에 얼씬 하지 않았다. 한 달 후 사장님이 나한테 넌지시 말씀하셨다. 그 사건 이후로 정산 시 자주 발생했던 돈문제가(몇 달러씩 모자랐던) 모두 없어졌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1) 한국전쟁시 캐나다는 공식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26000여 명의 캐나다 젊은이들이 한국을

돕겠다고 자원했다. UN군의 공식 참전국인 영국은 영연방인 캐나다 젊은이들을 영국군에 포함시켜 전쟁에 참가했다. 전쟁에서 566여 명이 전사했고 생존해 계시는 약 5000여분들은 모두 90대의 고령입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희생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2) 수십 년 후 고등학교 때까지 프렌치를 배운 아들과 파리에 여행 갔을 때 똑같은 상황을 목격하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프렌치를 콩글리쉬같이 하는 아들이 술에 취하면 파리 현지인들과 거리낌 없이 프렌치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들 얘기에 의하면 파리지앵들과 함께 술 마시다가 취하면 두뇌가 프렌치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영어 습득 과정도 비슷했다. 캐나다에 온 지 수년이 지난 어느 날

티브이 뉴스를 보고 있는데 문득 내가 한국어 뉴스를 보고 있다는 착각을 느꼈다. 그리고는 나의 생각이

영어로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입이 터지고 영어 대화가 술술 잘 풀리기

시작했다.. 캐나다 도착한 지 5년째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4화 1971년 토론토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