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스트리트 몰 축제
토론토의 여름은 항상 예고 없이 찾아온다. 매년 4월 중순경이면 동장군은 마치 오케이 목장의 결투와 같이 짧고 강한 눈보라를 한차례 뿌리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그리고 약 한달 동안 계절을 알수 없는 어중간한
날씨가 지속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에어콘을 켜야 할 정도로 온도가 급상승한다. 며칠 전까지도 밤에는
히팅을 틀어야 할 정도로 추은 날씨 였음에도.. 이렇틋 토론토의 봄은 늘 온 건지 안 온 건지를 알수 없게
하다가 갑자기 여름 날씨로 급 선회를 한다.
그날 주말은 본격적인 여름이 왔다는 신호를 보내듯이 온도가 급상승 했다. 덕분에 주유소는 이른 아침부터 캠핑족들과 카테지로 가려는 자동차들로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점심도 거른채 일하다가 오후 4시 나는
도망치듯 퇴근했다. 머리속에는 온통 유라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내가 사는 스카보로에서 제임스타운에 사는 유라를 만나려면 돈밸리 파크웨이를 이용하는게 가장 빠른 코스였다. 토론토 시는 4개의 하이웨이로 둘러 쌓여 있다. 남쪽에는 온태리오 호숫가를 따라 동서를 달리는 가드너 익스프레스 웨이가
있고 북쪽에는 하이웨이401이 동서를 이으고 있다. 동쪽에는 돈밸리 파크웨이, 서쪽에는 하이웨이400이
남북으로 뻗어 있어 가드너 익스프레스와 401하이웨이를 연결시켜 준다.
휴가 인파가 빠져나가 한산한 하이웨이를 달려 30여분만에 유라의 아파트 건물에 도착했다. 문앞에서 벨을 누르려다가 잠간 멈칫했다. 유라 언니의 싸늘한 톤이 생각나서였다. 유라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언니는
얼마 후면 결혼을 할거라고 들었다. 동생 유라에게도 번듯한 직업을 가진 남자를 소개 해 주고 싶었는데
유라가 번번히 거절을 해 속상해 하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거절하는 이유를 알고 나서는 더욱 더
화가 나 있다고 했다. 번듯한 직업과 재력을 겸비한 남자들이 주위에 상당수 있는데 나이도 어리고 장래도
알수 없는 애송이를 만나고 있으니 화도 나고 걱정도 되었을 것이었다. 멈칫하는 사이에 문이 열리고 유라가 모습을 들어냈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등장에 난 놀랜 척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유라가 알아서 나와 주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내 퇴근 시간도 알고 내가 부지런히 오리라는 것도 알고 있을터니 시간을 맞추어
나오면 좋을텐데 라는 나의 바람을 유라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얼른 그녀의 손을 잡고 도망치듯이 밖으로 나왔다.
천천히 가도 되요 철수씨….
언니한테 다 허락 받았어요. 나 철수씨 만나는 것도요.. 내가 그랬거든요..
좋은 직업이고 재력이고 아저씨들과는 절대로 안 만난다고요..
아저씨요?
언니 주위에 있는 남자분들은 제 눈에는 다 아저씨 같아서 저하고 안 어울려요..
저도 시간이 가면 아저씨가 될텐데요…
그땐 저도 아줌마가 될거고 우리는 잘 어울리는 아저씨 아줌마 커플이 되겠죠…
유라와 난 한바탕 소리내어 웃었다.
우리의 첫번 데이트는 아주 오래된 연인들처럼 자연스럽고 거리낌이 없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유라의
손을 잡았고 유라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주었다.
언니가 틀림없이 아파트 발코니에서 우리 둘을 내려다 보고 있을거에요.
쳐다 보지 말아요…
네? 난 화들짝 놀래 손을 움찔했으나 유라는 더 꽉 내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그냥 잡고 있어요. 언니한테 우리는 절대로 떼어놀수 없는 사이라는걸 보야줘야 해요. 그래야 언니가 빨리
포기하고 본인 결혼에만 집중할거에요..
가슴속이 뭉클해 왔다. 작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 느낀 감정은 호기심과 기대감 이었다면 지금 이
느낌은 따스한 온기가 심장 안으로 깊숙이 들어 온 느낌이었다. 마음이 편안해 졌다. 문득 이 좋은 느낌을
영원토록 놓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데이트는 항상 영스트리트 멀에서 시작했다. 유라의 아파트가 있는 제임스 타운에서 영스트리트 몰은(1) 걸어서 20여분 거리에 있었다. 영 스트리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길로 알려져 있었다. 영 스트리트의 맨 남쪽끝은 온태리오 호수이고 반대편의 북쪽 끝은 온태리오, 마니토바, 미국의 미네소타 주가 만나는
곳으로 약 1900킬로미터에 달한다. 여름이면 토론토 시에서 영스트리트의 일부를 자동차 금지 구역으로
만들어 각종 스트리트 푸드와 공연등을 즐길수 있는 축제 분위기를 조성했다. 1973년 10여년에 걸친 월남
전쟁이 끝나고 북미는 평화와 히피 문화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다. 남녀를 구분할수 없는 긴머리에 꽃무늬 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무리들속에 나와 유라도 함께 동행 하기도 했다. 우리 둘은 그저 같이 있다는
것에 즐거웠고 영 스트리트 멀은 우리들의 천국 이었다.
(1) 영 스트리트 몰은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여름 한동안 영스트리트를 자동차 프리 지역으로 지정해 각종 스트리트 푸드, 음악, 미술, 마술, 공연등으로 토론토니언들과 관광객들에게 여름 축제 분위기를 즐길수 있게 토론토 시가 마려한 행사였다.
사진 출처: 1970년대 토론토 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