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사

토론토 미드 타운, 리 사이드

by Engineer

새집으로 이사 온 지 한 달이나 걸려 짐 정리가 대~충 끝났다. 살림을 줄이려는 이사였기에 상당수의 가구와 가재도구들을 자선단체와 식구 및 지인들 여기저기 나누어 주고 왔는데도,

청춘이 언제였던가!!

늙은 부부 둘이서 이리저리 계단을 오르내리며 들고 나르려니 예전에 비해 시간이 두 세배는 더 걸렸다.

수십여 년 간 인연을 맺었던 온 태리오 주 XX공사에서 은퇴를 한 후 딸애가 사는 동네 근처로 이사를 간지

10년도 채 안되어 다시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가까운 지인들과 친척들은 또 이사 가냐고 혀를 내 두르며 retirement home으로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이사 가는 동네 이름을 알고는 한 번 더

놀랬다. 리타이어먼트 홈과는 거리가 먼 주로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동네이기 때문이었다. 하기사 내

주위에는 우리만큼 이사를 많이 다닌 사람이 없다. 토대 재학 시절에 결혼하여 졸업 후 2년 만에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했는데 이번이 7번째의 이사다 보니 5,6년마다 이사를 다닌 셈이다. 직장 때문에 이사를 가기도 했지만 지난번 살았던 집으로 이사 갈 때만 해도 더 이상의 이사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90년대 초에

지어진 그 집은 앞뒤로 상당히 큰 마당과 여러 개의 큼직한 베드룸을 가진 커다란 집이었다. 우리 부부

두 사람이 살기에 그 집은 너무 컸으나 집 조건이 텃밭을 꾸밀 너른 마당과 아내의 작업실로 사용할 널찍한

공간이 있는 집을 찾다 보니 그 집을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10여 년 동안 아내와 나는 각종 나무와 화초를 심고, 여러 가지 채소가 나는 텃밭을 일구어 이른 봄부터

초겨울까지 꽃이 지지 않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어 놓았다. 하지만 또다시 이사를 가게 되어 아쉬움이 컸다. 그 집을 떠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 큰집을 가꾸고 살기엔 체력적으로 더 이상은 무리임을 깨닫게 된 까닭이었다. 가장 체력이 소모되는 잔디 깎기, 정원 관리, 눈 치우기 등 모두 기계의

힘으로 하지만 기계가 하지 못하는 작은 공간들과 정교한 마무리 작업등은 모두 나의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작업이 끝나면 녹초가 되었다. 노동의 이득이 있다면 그날 밤은 눕자마자 곯아떨어져 아침까지

시체처럼 미동도 없이 잔다는… 아내의 말에 의하면..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 집을 떠나게 된 이유는 엉뚱한 데서 시작했다. 유난히 더웠던 어느 여름날 저녁,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아내와 함께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아내가 사색이 되어 박쥐, 박쥐, 박쥐이이이…

소리를 질렀다. 순간 검은 물체가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우며 내 머리 위로 지나갔다. 박쥐이이… 공포에 질린 아내는 울상이 되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오래전에 살던 집에서도 박쥐가 집 안에 들어와 한동안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아내는 박쥐를 유난히 두려워했다. 두려워하는 아내를 진정시키고

박쥐가 벽에 앉기를 기다렸다. 이미 지난번 경험으로 박쥐가 앉을 만한 장소는 벽난로 위의 높은 벽돌 벽뿐

임을 알고 있었다. 표면이 매끈한 다른 벽에는 앉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창고에서 뜰채와 기다란

장대를(물에 빠진 골프공 건지는 텔레스고프식 장대) 가져와 테이프로 칭칭 동여 맺다. 사람 손길이 닺지 않는 높은 곳에 앉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10여분 후 예상대로 그놈은 벽돌 벽 가장 높은 곳에 찰싹 달라붙어 앉았다. 조심스레 다가가 휘청거리는 장대를 조금씩 움직여 가며 놈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갔다. 바로 옆까지 다가가 단 한 번에 놈을 쓸어 담아야 하는데 20 ft가 넘는 높은 곳에 앉았기 때문에 장대의 가느다란

끝부분까지 뽑아냈으니 휘청거림이 심해 쉽지가 않았다. 큰 숨 한번 들이쉬고 숨을 멈추고는 놈이 앉은 벽

근처 아래에 몸을 부치고 아주 천천히 한발 한발 다가갔다. 목을 위 방향 90도로 꺾은 채 움직이려니 온몸이 뻐근해 왔다. 놈으로부터 약 30여 센티 거리에 다 달아 손목과 팔에 온 힘을 다해 순식간에 놈을 쓸어 담았다. 놈이 뜰채 안에서 파득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성공! 아내에게 회심의 미소를 날리며 뜰채를 둘둘 말아 밖으로 나가 날려 보냈다.. 다시는 오지 마라.. 오면 죽는다… 아뿔싸 그것이 대 실수이었음을 이틀 후에 알았지만…


나무와 숲이 울창한 토론토는 박쥐를 비롯한 많은 야생 동물들이 도시 곳곳에 서식하고 있다. 내가 살던

동네에도 토끼, 너구리, 스컹크, 여우 등 여러 동물들이 집 주변 숲 속에 많이 살고 있다. 집 앞마당에는

도장나무가(Korean Boxwood) 빽빽하게 마당 한편을 둘러싸고 있는데 그 안에서 토끼 가족이 매년 새끼를 낳으며 살고 있다. 여름이면 텃밭에 기르는 야채의 반은 토끼 몫이다. 한동안 토끼와 전쟁하느라 텃밭에

담장을 둘러쳐보고 했지만 텃밭에 못 들어가게 된 토끼들이 야채보다 더 귀한 화초들을 아작 내 버리는

화풀이에 결국 야채를 내어 주는 것으로 공생 협정을 맺었다. 8월 중순쯤 한 여름 더위가 가실 때가 되면 해가 진후 한 십여 분 동안 우리 집과 이웃집들 지붕 위로 수많은 박쥐들이 날아다닌다. 봄에 태어난 새끼들이 먹이 사냥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해 개체수가 급작스레 늘어난 것이다. 이 박쥐들은 굴뚝 안이나 지붕과 벽 사이의 아주 작은 공간에 서식하고 있는데 야행성이고 워낙 소리를 내지 않는 습성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집에

박쥐가 산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우리 집도 어딘가에 박쥐가 살고 있는데 길을 잘못 들어

집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 틀림없었다.


이틀 후.. 새벽 1시 반, 집 지하실에 있는 사무실에서 밀린 업무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아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순간 또 박쥐?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자리를 박차고 위층으로 달려갔다. 박쥐…박쥐 아내가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창고로 달려가 뜰채를 가져와 박쥐를 공격했다. 이번에는 놈이 높은 벽에 앉기 전에 빨리 포획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마침 놈이 천장이 높은 거실에서 천장이 낮은 방으로 날아들어 왔다. 재빨리 방문을 닫고 놈을 코너로 몰아 뜰채 안에 담는 데 성공했다. 잠깐 숨을 돌리려는데 뜰채의 구멍 사이로 놈이 빠져나왔다. 깜빡 뜰채를 둘둘 마는 것을 잊고 있었다. 다시 놈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움직이자 이번에는 놈도 안 잡히려고 천장에 가까이 붙어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녔다. 몇 분간의 숨바꼭질 끝에 놈을 다시 잡아 얼른 둘둘 뜰채를 말았다. 죽음을 감지한 듯 놈이 온 힘을 다해 뜰채 안에서 바둥거리더니 거의 몸의 반이

빠져나왔다. 순간 본능적으로 뜰채를 바닥에 패댕이 쳤다. 놈이 한번 꿈틀 하더니 잠잠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끔찍한 상황에 놀란 아내의 비명소리가 귓가에 쟁쟁했다.

“미안, 하지만 더 이상 놓아줄 수가 없네…”

박쥐한테 한 말인지 아내한테 한 말인지 나도 모르게 중얼댔다. 박쥐는 습성 상 살던 집으로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라고 알려져 있는데 증명이나 하듯이 다시 오지 않았든가. 동일범이라는 100% 증거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두 번의 박쥐 소동을 치르더니 밤이 오면 아내의 신경은 지극히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거금을 들여 박쥐 완전 차단한다는 전문회사를 고용해 박쥐가 침입 못하도록 집 바깥벽을 완전 봉쇄를 했는데도. 그런

아내를 보는 것이 영 편치 않아 어느 날 이사 갈까…. 라는 나의 말이 불씨가 되어.. 활기 넘치는 이 동네로

이사 오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집으로 이사 오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에는 기왕 가는 거 이제는 노동할 필요가 없는

low rise(10층 미만)콘도를 중점으로 보기로 했다. 인구 밀도가 높은 고층 콘도는 기피하기로 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새로 짓는 콘도에서 근래에 완공한 콘도와 지은 지 일이 년 미만인 resale콘도 들을 보았다. 걸어서 10분 안에 식품점, 식당, 베이커리, 공원 등등이 있고 안전하고 인구 밀도도 높지 않은 등의 조건을 내세우다 보니 맘에 드는 콘도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에 부동산을 하는 후배를 만나들은 이야기로 인해 콘도는

접기로 했는데… 후배 왈, 선배님 콘도 절대로 가지 마세요.. 왜? 토론토는 요, 요즘 짓는 모든 콘도,

하이라이즈나 로우라이즈나 땅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모든 주자창이 지하로 3,4층에서 많게는 5,6층까지

내려갑니다. 그거 돌아 나오는데 어지럽고 눈 돌아가요.. 나오다가 차는 벽에 긁히고.. 그리고 출퇴근

시간에는 주차장만 빠져나가는데 10,20분 걸려요… 절대로 가지 마세요.. 아 하 그런 걸 몰랐네… 그래서

다시 주택으로 선회했는데..

토론토의 주택 시장은 북미에서 가장 핫한 시장이라 한다. 이유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가 토론토로 옮겨 오고 있다 하는데 실제로 매년 만여 명의 하이텍 고 보수 인력들이 대거 토론토로 영입되고 있다고 한다. 부동산 리스팅 웹사이트들을 검색하면서 알게 된 zolo.ca에서 단독 주택들을 중심으로 검색하다가 유독

새 집이 많은 동네가 눈에 뜨였다. 401 하이웨이 남쪽으로 영과 애비뉴 로드 근처에 새집 리스팅이 다른 데에 비해 현저히 많았고 오픈하우스도 매 주말마다 정기 행사처럼 시행되고 있었다. 지도를 펴 놓고 오픈하우스가 있는 집들을 일일이 검색하여 지도에 위치 표시를 하고 길 방향에 따라 방문 순서를 매긴 후 주말에

방문하기로 했다.


토론토에서 반세기를 살았지만 대부분 스카보로와 광역 토론토시에서 살았기에 정작 토론토 중심지 동네는 잘 알지 못했다. 때문에 아주 황당한 상황을 맞게 되었는데… 지도에 표기해 놓은 오픈하우스들을 차례차례 방문하기 시작했는데 그다지 마음에 드는 집이 나타나지 않았다. 젠트리케이션이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낡은 방갈로들은 부수고 새로 모던하게 지은 집들이 길에 따라 6,70% 이상 진행된 곳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새집들은 오픈 콘셉트로 일층에 키친+패밀리, 리빙+다이닝의 구성으로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넓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구조였다. 집 내부 구조는 마음에 들었으나 좁은 땅에 리빙 스페이스를 극대화하다 보니 땅을

깊게 파고 만든 차고가 위험해 보였다. 차고 입구가 가파른 경사이고 비가 많이 오면 배수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좀 더 최근에 지은 집들은 땅을 파지 않고 가라지를 만들었으나 대신 리빙 스페이스가 줄어들어 너무 좁아 보였다. 선뜻 마음에 드는 집을 찾지 못한 채 마지막 오픈하우스에 다다랐다. 유난스레 조용한 분위기의 길 끝 쪽에 위치한 이층 집이었는데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모던하고 깔끔한 외부와 1.5카 차고가 경사 없이 지어졌고 넓어 보이는 더블 도어 입구가 전체적인 안정감을 주는 구조였다. 서너 개의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자 꽤 넓은 현관이 나왔다. 현관에서 다시 서너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일층 인듯한데 젊어 보이는

세일즈맨이 나오다 우리를 보고 멈칫거리며 섰다. 워낙 예민한 아내는 세일즈맨의 얼굴에 미소 대신 황당한 표정이 역력했다는데 나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나는 주저 없이 계단을 올라가 세일즈맨에게 헬로

캔아이 룩 어라운드.. 하고 집안을 둘러보았는데 방문객이 우리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애비뉴 로드

가까이 있는 오픈하우스들에는 제법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 집에는 세일즈맨 외에는 아무도 없어 좀

의아했는데 그때까지도 아주 황당한 상황에 처하리라고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세일즈맨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그의 혼돈스러운 표정을 처음으로 알아챘다. 그와의 대화….

캔아이 룩 어라운드? (좀 둘러봐도 될까요?)

아이 라이크 더 하우스… (집이 맘에 듭니다..)

아 쌩스… 예스 어브코스… (아 예 물론입니다)

아음………받.. 두 유 노우 웨어 유아? ( 아 그런데 이 근처가 어딘지 아십니까?)

왓 유민? 어브 코스 아이 노우 웨어 아이 엠.. ( 무슨 말씀이신지? 물론 알고 있습니다만..)

아….. 아이 엠 쏘리…노우.. 아이 민, 두 유 노우 더 네이버후드? (아 죄송합니다. 이 동네를 알고 오신 건지….)

디스 이스 헤시딕 쥬이시 에어리어.. (여기는 헤시딕 유대인 동네입니다)

헤시딕 쥬이시…. 난 그제야 정신이 버쩍 들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왜 저리 우물쭈물하는지 깨달았다.

엠아이 인더 헤시딕 쥬이시 네이버후드? 오 마이.. 아이 해드 노 아이디어.. (여기가 헤시딕 유대인

동네라고요? 아 몰랐네요)

예스 유아.. 라이트 데어, 데어 아 투 세네가그스 자스트 어라운더 코너 온 배더스트… 그 친구가 손으로 서쪽 방향을 가리켰다. (예, 바로 조오기, 아주 가까이에 유대인 교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배더스트 로드 아주 가까이 까지 온 것이었다.

유 노 아엠 쥬이시 마이셀프, 받 이븐 아이 캐낫 리브 인 디스 네이버후드.. (저도 유대인이지만 저 조차도 이 동네에서는 못 삽니다)

앤드 어브코스 유 온트비 웰컴 바이 뎀… (손님은 아예 끼지도 못합니다)

아 예스 유 아 롸이트.. 노 웨이 아이 캔 리브 히어.. 쌩스 훠 웨이킹 미 압.. ㅎㅎㅎ (아 맞습니다. 우리는

도저히 살 수 없겠지요.. 정신 차리게 해 줘서 감사…. ㅎㅎㅎ)


그 친구의 표정이 좀 부드러워지며 이 근처의 어느 쪽 이 좋은지, 집 구조며, 이런저런 조언들을 늘어놨다.

아마도 자신의 황당스러웠던 표정에 약간은 미안스러운 생각이 들었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주며 명함을 건네줬다. 지금도 그 상황을 생각해보면 나라도 어처구니없었을 것이었다.. 토요일엔 차도 못타, 전기불도 못 켜, 스토브도 못 켜, 해서 사람을 고용해서 불 켜라, 스토브 켜라, 등등의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행동마저 사람을 고용해서 일일이 시켜야 하는 지극히 유별난 인종이 사는 동네에 아시아인이 집을 사려고 나타났으니…..


그 집에서 나와 차를 타고 길을 돌아 나가는데 마침 앞에서 걸어오는 헤시딕 쥬이쉬 카플과 눈길이 마주쳤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은색 옷으로 단장한.. 그리고 그들의 마땅치 않은 듯한 눈빛(혹시 내가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지만)에는 역력히 “아니 누가 감히 오늘 운전을 하고 돌아다니나…. “라는 표정, 그리고 금방 아

차이니스… 그러면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눈길을 훽 돌려버리고는 배더스트 길 쪽으로 걸어갔다. 토요일엔 모든 일을 반드시 발로 걸어서 해결해야 하는 그들만의 법규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 세네가그에서 가까운

거리 안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그 황당한 경험에 놀랜 나머지 그 동네에서 아예 멀찌감치 떨어진 토론토 미드타운의 리사이드 동네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마침내 찾았다. 리사이드도 젠트리케이션이 진행 중이라 새 집들과 오래된 집들이 석여

있었다. 우리 집도 새로 모던하게 지은 이층 집이나 양옆은 오래된 방갈로라 언젠가 이 두 집도 재건축에

들어갈 텐데 그때가 되면 아마 한 4,5개월 소음과 먼지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머릿속 어딘가에 가진 채 집 계약을 마무리하고 살던 집을 매물로 내놓자마자,,, 코로나 발생.. 부동산 시장 및 전반적인 경제에 악영향 줄 가능성 높다..라는 뉴스 보도.. 그런데도 토론토시의 부동산 거래는 여전히 하락세를 보이지 않고 활발했다. 하지만 내가 사는 미시사가는 토론토 시내보다는 아무래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

매물로 내놓은 처음 2주간 몇 번의 구매자 방문이 있은 후 코로나 여파가 심각해지기 시작하자 방문이

뜸해지더니 올스톱이 되고 말았다. 뉴스는 온통 코로나의 심각성과 강력한 방역 지침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사실 당분간은 구매 방문이 없기를 바랐다. 방문자가 가고 나면 모든 창문을 열고 소독약을 뿌려가며 대

청소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지쳐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리사이드에 사놓은 집은 2월 말에 잔금 다 치르고 명의 이전된 완전히 우리 집이 되어 있었던 터라

매주말마다 방문하여 집안 환기도 하고 청소에, 차 트렁크에 조금씩 실어 온 짐들도 정리하는 등 이중 살림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6개월을 매 주말마다 이중 살림으로 50킬로의 거리를 운전하며 다니다 보니 처음 한두

달 동안은 그런대로 견딜 만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적 신체적으로 피곤해져 가고 어찌 된 일인지

도로 교통 상황까지 안 좋아졌다.


미시사가에서 리사이드까지 가려면 401 하이웨이를 통해 거의 한 시간이나 걸리야 새집에 도달한다. 코로나 여파로 평상시 보다 교통량이 조금 줄은 듯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트럭들의 교통량이 더 많아지면서 위험한 순간들을 접하게 되었다. 하이웨이를 피해 미시사가와 토론토 리사이드까지 연결된 유일한 로컬

도로인 에그린톤을 택했지만 공교롭게도 토론토를 가로지르는 대규모 지하철 공사로 인해 에그린톤은 운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온 도로가 피폐해져 있었다. 결국 남은 선택은 새집으로 이사를 가고 집을 비워둔 채로

판매는 부동산 회사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최저의 가격을 제시하고..


그렇게 드디어 9월 9일을 이삿날로 결정하고 이삿짐 센터와 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짐 정리를 시작했는데… 9월 4일 부동산 업자(로버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얼마 전에 방문했던 부부가 한 번 더 집을 보고 싶다고. 그런데 그 부부는 그 당시 예상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했던 터라 아직도 그 가격을 생각하고 있다면 올

필요 없다고 단칼에 잘라 말했더니 그래도 꼭 보고 싶다고 약속을 잡아달라고 부득불 우긴다며 로버트가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좋을 듯하다길래… 안 내키지만 그러기로 했다. 집을 보여 줄 때는 우리는 집에서

나와 근처 커피숍에서 부동산 업자의 전화를 기다린다..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도 마시기 전에 로버트로부터 전화… 그분들 집 둘러보고 돌아갔는데 얼른 와 보세요.. 집에 도착하니 로버트가 긴장된 표정으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쪽에서 오퍼를 내고 싶다는 대화가 오고 가고 있었다. 로버트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그

가격으로 어림도 없다고 이미 수차례 얘기했는데요… you gotta come up more, you’ve seen other houses for that price.. smaller, older etc, etc….. hdgsfxmxnkmmv…. 10여분이 지나자 로버트가

상기된 표정으로 엄지를 추켜세운다.. 그렇게 해서 이사 가기 며칠 전에 집 판매 계약하고 서둘러 열흘 만에 잔금 다 받고 모든 걸 훌훌 털어 버리고 새집으로 이사를 왔다. 7번의 집을 사고팔고 이사를 다녔지만

이번처럼 제대로 된 계약서류가 오고 감 없이 전화로 옥신각신 계약을 성사시킨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한 달을 보내고 이제 서야 조금 새집에 적응이 되나 싶었는데….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집안 곳곳에 설치된 스마트홈 스위치, 미니 모니터패널, 층마다에 설치된 시큐리티 패널, 외부 관찰 카메라,

와이파이 비디오 초인종, 스마트홈 앱 패널, 등등. 나름대로 IT에 적응한 시니어라 자부하던 나였건만

쓰나미처럼 몰려온 스마트홈 테크놀로지에 나는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다… 이 난관을 극복하려면 내 두뇌를 AI로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라는 코믹한 불안감과 함께 스마트홈 정복을 위한 나의 좌충우돌은 매일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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