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1973 여름 두 번째 데이트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 마을

by Engineer

일주일 후 다시 유라를 만났을 시 그녀의 얼굴에 근심이 서려 있었다. 한 달 후면 결혼하는 언니한테 자신은 독립해 살겠다고 말했더니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처음 대하는 유라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난 잠시 난감했다. 우리 앞길이 탄탄대로라고 생각했던 나의 안이한 생각이 일주일도

채 가지 않았다. 유라의 근심을 잊게 해주고 싶어 그녀를 태워 나이아가라 폭포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토론토니언들은 대부분 주말이나 휴가철엔 토론토 동쪽이나 북쪽으로 가기 때문에 서쪽인 나이아가라 방향은 교통량이 많지 않았다.


토론토와 나이아가라를 이어주는 QEW(Queen Elisabeth Highway)를 타고 서쪽으로 한 삼사십여분을

달리면 멀리 남서쪽으로 일 년 내내 시뻘건 불꽃과 연기를 내뿜는 스텔코(한국 포스코와 같은 회사)의 굴뚝이 보인다. 1910년에 토론토와 나이아가라 폭포 중간쯤에 있는 도시 해밀톤에 설립된 스텔코사는 이만 오천 여명의 직원을 가진 세계에서 꽤 큰 규모의 철강 회사였고 해밀톤 시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굴뚝에서

내뿜는 연기는 해밀톤을 캐나다 최대 오염 도시로 만드는 주범이기도 했다.


온태리오 호수를 따라 삼십여분 더 가다가 나이가라 폭포와 근접해 있는 작은 마을 나이아가라 온더 레이크 에서 차를 세웠다. 운전하는 동안 내내 말이 없던 유라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유라의 손을 잡고 다운타운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다운타운이 가까워 오자 뾰족한 지붕과 스테인드 유리창으로 장식된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건물들이 줄줄이 보였다. 작은 가구점, 화랑, 장식품, 흥미로운 볼거리들이 많았다. 갑자기 거리가

소란스러워지며 길 건너 편의 건물에서 큰 웃음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왔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빅토리안 시대의 복장들을 입고 있었다.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다.

“로미오!!! 오 로미오 마이 러브” 느닷없이 내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왔다.

“오 쥴리엣? 하우 아이 러브 디” 누가 저쪽에서 화답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모두 소리 내어 웃었다. 길을 사이에 두고 우리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잘 아는 친구들

처럼 손 흔들며 웃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이 잠깐의 깜짝쇼에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유라도 어느새

그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길가에 붙은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그 길 건너 건물은 극장이었고 빅토리안 시대의 연극이 열리고 있다는 광고 포스터였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유라와 근처 영국식 펍 식당으로 들어갔다. 건물 앞 주춧돌에 1879이라는 연도가 새겨져 있었다. 고풍의 건물은 빅토리안 시대에 지어진 올드 호텔이었는데 아래층은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쉐퍼드 파이와 기네스(2) 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그랬더니 서버가 우리 둘을 빤히 보더니 드라이버 라이센스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그의 눈에는 우리가 너무 어려 보여 맥주를 팔아도 되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내가 미소를 지으며 운전 면허증을 보여주자 그도 웃으며 쏘리 하고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신분증 검사는 이런저런

이유로 맥주를 살 때마다 내 또래의 한국 남자아이들이 겪는 일상이라고 유라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오븐에서 방금 꺼낸 듯 김이 모락모락 나는 쉐퍼드 파이가 테이블에 놓였다.

음! 난 이 냄새가 너무 좋아.. 유라가 얼굴을 쉐퍼드파이 가까이 들이대고 코를 벌름거리며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화들짝 놀래며 뒤로 물러났다. 뜨거운 김이 그녀의 콧속으로 휙 들어온 것 같았다. 순간 자신의 행동에 당황했는지 “미안” 하고는 얼른 정색을 했다. 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고 입을 꽉 다물었는데 일초도

못 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유라도 내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 뜨으렷다.

유라 씨, 이 기네스 맥주 좋아해요?

들어보긴 했는데 마셔보진 않았어요. 흑맥주 같네요.

네, 흑맥주이긴 한데 보통 흑맥주와는 맛이 조금 달라요. 다른 맥주들에 비해 영양분도 많고 약간의 단맛과

쓴맛을 느낄 수 있어요. 원산지는 영국의 이웃나라 아일랜드예요.

마셔봐요 유라 씨..

음.. 맥주보다는 걸쭉한 느낌이 드는 막걸리 같은 느낌이네요..

막걸리요? 여러 번 마시면서 늘 무엇인지 익숙한 느낌이었는데 이제야 알겠네요.. 맞아요 유라 씨. 마치

막걸리의 진한 맛을 느껴요..


나도 한 모금 들이키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유라의 말대로 기네스는 특유의 쓴 단맛과 막걸리의 걸쭉한

느낌을 가진 독특한 맥주였다. 문득 왜 영국이나 유럽인들이 한국인을 아시아의 아이리쉬라고 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동안 여러 번 기네스를 마셔봤지만 한 번도 막걸리에 비교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단 한번

마시고는 막걸리와 유사한 점을 밝혀 내는 유라의 예민함에 난 속으로 감탄했다. 쉐파드 파이 한 접시와 맥주 두 잔의 간단한 식사였는데 배가 불렀다. 쉐퍼드 파이는 양념 고기 위에 매쉬 감자를 얹어 오븐에 구운

음식인데 생각보다 배를 든든히 채워 주었다. 식당 안이 잠시 소란스러웠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십여 명이

입구에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거리로 나왔다. 신혼부부인듯한 커플을 태운 마차가 딸랑거리는 종소리를 내며 가볍게 달리고 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붙여진 허니문 캐피톨이라는 수식어가 참으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말이

없었던 유라가 기분이 나아졌는지 말문을 열었다.


언니에게 독립하겠다는 말을 하자 언니도 예비형부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혼자 살려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까지 하면서 학교를 다니기엔 너무 힘들다고 왜 사서 고생하냐고 극구 반대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두 분은 혼자 살면 나와 더 가까운 사이가 될까 봐 은근한 걱정도 있을 것 같았다. 두 분들 주위에는 이미 집도 소유하고 탄탄한 직업도 가진 준비된 총각들이 상당수 있어 수시로 동생을 소개해달라는 들볶임을 받고 있었다 했다. 당연히 언니와 형부는 유라가 졸업하는 내년까지 같이 살다가 멋진 결혼식을 시켜주고 싶은 바람이 컷을 것이었다.

말을 끝낸 유라가 언니하고 형부한테 조금 미안하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모르게 내손이 튀어나가 유라의 손을 꽉 잡았다.

이제부터 유라씨 곁에는 항상 제가 있을 거예요.

우리의 앞날은 우리가 함께 헤쳐 나가요.

유라의 눈이 촉촉해졌다.

난 유라를 살포시 끌어안았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내 가슴을 통통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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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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