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1973 여름, 재회

연애의 시작

by Engineer

유라를 다시 만난 것은 생일 파티 후 9개월이 지난 다음 해 초여름이었다. 그동안 나는 공부에만 집중해야 했다. 당시 4년제 대학교 입학 조건은 13학년 수료였고 토론토 공대 같은 경우에는 수학, 과학에 우수한 성적을 요구했다. 한국에서부터 나의 진로는 이공계였지만 캐나다로 이민 온 후 공대 입학은 더욱 절실했다. 당시 나의 판단은 캐나다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나의 영어 능력을 네이티브 수준으로 끌어올리기엔 늦었다는 생각이 강했다. 대학 졸업할 시의 내 캐나다 생활은 6년밖에 안될 텐데 그 시간 안에 얼마나 나의 영어가 유창해 질지는 알 수 없었다. 내게 남은 옵션은 언어보다 기술이 판가름하는 엔지니어링이었고 나는 토론토 공대를 타깃으로 삼고 공부에만 전념 하기로 했었다.


오월 말경에 모든 시험이 끝나고 나의 13학년 성적은 토론토 공대에 무난히 입학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나 한 가지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었다. 학비와 그 외 필요한 교과서, 학용품 등등이었는데 듣기로는 공대 교과서는 상당히 비싸다고 했다. 아무래도 1년을 다시 일해 저축을 해야 할 듯싶어 학교 카운슬러를 찾아가 상담을 했다. 상담 선생님(guidance counselor)은 일 년 후에 대학에 입학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조언을 하셨다. 대학 입학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의 토론토 대학의 입학 문턱은 그리 높지 않았으나 졸업 문턱은 아주 높았다(1). 일 학년이 끝날 때 입학생의 40%가 낙오를 하고 4년 후 졸업 시에는 60% 이상이 낙오를 해 고작 3,40% 정도만 살아남아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증명이나 하듯 나와 함께 토대에 입학한 한인 학생이 11명이었는데 졸업 시에는 단 3명만 남았다. 낙오 생 중에는 고교 졸업 시 전교 1,2등을 했다며 부모님들이 교민 신문에 기사를 낸 학생들도 있었다. 고교 때는 부모님들이 한국에서 하던 대로 강제로 과외와 특별 지도까지 시켜 성적이 우수했다. 그러나 토론토 대학은 열심히 공부를 해도 따라가기 어려운 환경이었고 부모한테서 벋어 난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공부를 할 줄 몰랐다.


모든 시험이 끝난 주말 난 유라를 찾아갔다. 토론토 다운타운의 고층 아파트 단지인 제임스 타운에서 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당시 토론토의 한인 인구 중에 30대의 미혼 처녀 총각이 아주 많았다. 남자들은 월남에 파견 나갔던 기술자들, 각종 특수 기술로 이민 온 기술사들, 파독 광부들, 미국 캐나다 유학생들이었다. 여자들은 가족 이민, 파독 간호사, 캐나다 정부 주도로 이민 온 봉제사들이었다. 그런데 여자가 남자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었다. 제임스 타운의 오씨 자매는 남자들 사이에 인기 최고의 결혼 상대 감이었고 총각, 특히 노총각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작년 생일 파티에서 헤어진 후 난 한 번도 그녀와 만나지도 전화 통화도 없었지만 동생을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듣고 있었다. 동생은 유라에게도 나의 근황을 전해 주고 있었다고 했다. 동생은 여전히 중간에서 우리 둘을 연결시켜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미술 대학에서 그래픽을 공부하고 있는 유라는 학기말 과제를 준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들었다. 언니와 함께 사는 아파트로 찾아가 로비에서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유라의 언니인듯한 분이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누님? 저 유라 친구 박 철수입니다.

누구?

유라 친구 철수입니다.

잠시만요… 유라야!!!!! 언니의 음성 톤이 싸늘하게 들렸다.

철수 씨, 제가 로비로 내려 갈게요.

아 예.. 천천히 내려오세요…

유라가 보였다. 그녀를 보는 순간 가슴이 또 설레었다. 긴 머리를 질끈 묶어 뒤통수에 부치고 물감이 여기저기 묻은 헐렁한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속으로 와하는 감탄이 나왔다. 문득 어머니가 “유라한테 콩깍지 씌었구나” 하셨던 말이 떠 올라 잠시 멍하고 서 있었다.

철수 씨….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고 유라가 내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아 유라 씨… 그동안……. 잘 지냈지요? 멋쩍음을 모면하려고 얼버무렸다.

방금 또 우주여행 갔다 왔어요? 유라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ㅎㅎㅎㅎ.. 이번엔 내가 웃을 차례였다.

미안해요, 갑자기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학기말 작품 하느라 바쁘시다고 동생한테 들었어요.

저도 동생한테 오빠 소식 들었어요. 성적이 잘 나와서 토론토 공대 입학에 문제없을 거라는.. 축하해요..

감사해요 유라 씨.. 이거.. 근처에서 산 컨츄리 스타일 도넛과(2) 커피를 유라에게 건넸다.

아 고마워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커피네요..

유라 씨 얼굴 봤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 갈게요.

작품 잘 끝내고 우리 다시 만나요.


오랜만에 보는 유라를 더 붙들고 싶었지만 작품을 마쳐야 하는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어 그렇게 말했다. 유라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살짝 스쳐갔다.

고마워요 철수 씨. 다음 주 주말에는 모두 끝낼 수 있을 거예요. 그때 우리 다시 만나요..

유라가 물감으로 얼룩진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았다. 문득 언젠가 저 손을 다시 잡으면 절대로 놓지 않을 거야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1) 토론토 대학교는 전형적인 아카데믹 스쿨이다. 아카데믹 스쿨의 특성은 입학 문턱은 낮지만 졸업 문턱은 절대적으로 높다. 입학생의 60% 이상이 낙제를 하는데 이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도록 만든 시스템이다.

(2) 7,80년대 컨츄리 스타일 도넛 가게는 토론토 전역에 퍼져 있었고 질 좋은 커피를 제공하는 프랜차이즈였다. 2000년도에 후발 주자인 팀호튼(60년대 아이스하키 선수였고 팀호튼 도넛을 창업했으나 성공을 보기 전에 퀸 엘리자베스 하이웨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에게 선두를 빼앗기고 현재는 가게 숫자가 현저하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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