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유라
아저씨 집 드라이브웨이는 4대의 자동차로 꽉 차있고 길에도 차들이 여러 대 서 있었다. 파독 부부인 아저씨 집은 널고 긴 드라이웨이를 가진 단층집이었고 뒷마당 끝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개천이 있었다.
당시 스카보로는 인구밀도도 낮고 청정한 동네여서 공원에 흐르는 개천에서 낚시도 즐길 수 있었다. 대부분 송사리가 많이 살지만 가끔씩 꽤 큰 잉어들이 잡히기도 했다. 아저씨는 독일에서 전기 기술자로 아주머니는 간호사로 일하다 캐나다로 이민해 오셨다. 기술이 좋은 아저씨는 일감이 넘쳐나 항상 바쁘셨고 아주머니는
요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셨다. 오신지 2년 만에 근사한 단독 주택을 장만하실 정도로 두 분은 아주 열심히 일 하셨다. 두 분에겐 2살이 아직 안된 아기가 있어서 나와 동생들이 자주 베이비시팅을 했다. 그 대가로 우리에게 넉넉한 돈을 주시면서도 늘 고마워하시는 겸손한 분이셨다.
집 앞 드라이브웨이에서 콩닥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잠시 서성대고 있었다. 집안에서는 경쾌한 음악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낯익은 얼굴이 앞문을 열고 나왔다.
헤이 버스데이 보이.. 왓 아유 두잉 낫 카밍인?
얼굴이 벌게진 토니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벌써 맥주를 꽤나 많이 마신 모양이었다. 토니는 나와 같이 13학년인데 스카보로 서쪽에 있는 웩스포드 하이스쿨에 다니고 있었다. 운동으로 다부진 체격을 지닌 그는 아주 훌륭한 축구선수였다. 나도 톰슨의 축구선수이긴 했지만 나의 주종목은 야구라 축구에는 그리 좋은
활약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기 때 가끔 만나면 내공을 뺏는데 재미를 부친 친구였다. 토니가 나를 끌고
들어가며 너를 기다리는 뷰티풀 한 여인이 있다며 재촉을 했다. 집안에는 24,5명이나 되는 내 또래 아이들로 꽉 차 있었다. 아마도 토론토의 모든 하이틴, 이십 대 초 들이 다 모인 듯했다. 당시 토론토의 한인 총인구는
2천여 명 정도였는데 그 나이 때 아이들은 누구 생일 파티가 있다 하면 대부분 다 모이는 게 생활화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내가 들어가자 오늘의 주인공 왔다며 모두들 환호를 지르며 반겨주었다. 나는 일일이 모든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며 반가운 척을 하는데 구석에서 누구와 예기를 나누던 긴 머리 여인이 뒤돌아 서 나에게 옅은 미소와 함께 눈인사를 했다. 순간 심장이 또 꿈틀 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여태까지 한국에서 살아온 나의 삶은 공부와 학교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자 친구를 사귀어 본 경험도 없었고 누구를 좋아해 본 경험도
전무한 모태솔로였다. 나를 포함한 내 주위의 모든 친구들은 공부깨나 해야 들어간다는 일류 학교의 학생
들였고 또다시 일류대학에 가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공부에만 전념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나의
그런 삶은 식구들이 캐나다로 떠나면서 끝이 났지만. 그렇게 드라이 한 삶을 살던 나에게 그녀의 등장은 내 안에 낯설고도 신비로운 감정을 서서히 일깨워 주고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유라 씨, 와 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제 동생한테 감사해야겠네요.. 동생이 이 모든 음모를 꾸몄거든요…
저는 오후까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지요..
동생한테 오빠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한국에 혼자 남겨졌었다는 이야기며, 어느 날 밤늦은 시간에 아파트 문을 두드리고 나타나 식구 모두를 놀라게 한 이야기..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였어요. 그 예기를 듣고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마침 동생이 파티에 초대해줘서 이렇게 만나게 되었네요.
작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유라 앞에서 나는 마법에 걸린 아이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철수 씨! 유라가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내 이름을 불렀다.
아 예 유라 씨… 미안해요. 제가 잠시 우주여행을 갔다 온 것 같네요..
순간 나의 위트 본능이(?) 살아났고 유라가 처음으로 소리를 내어 웃었다.
태어나서 누구와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나와 전혀 다른 성격과 전혀 다른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과. 유라는 미술을 공부하는 화가 지망생이었고 예민하고도 날카로운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나는 과학을 공부하지만 예민하지도 날카롭지도 않고 과도한 감정의 소유자였다. 한국에서 살아온 배경도 전혀 달랐다.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국민학교부터 반장 부반장만 하다가 소위 일류 중고등학교를 나온 나였고, 유라는 이리저리 전학도 많이 다녔고 어느 한 곳에 오랫동안 살았던 기억이 없다고 했다. 지금은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파독 간호사였던 언니와 둘이 살고 있었다. 언니 초청으로 유라도 나같이 혼자 캐나다로 왔고 그 여정도 나의 경험과 유사했다. 일본에서부터 비행기 스케줄이 어긋나 미국 시애틀을 거쳐 밴쿠버로 다시 토론토로 오느라 시간도 많이 걸렸고 힘들었다고 했다. 더구나 시애틀에서는 밴쿠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감옥 같은 방에서 몇 시간이나 갇혀 있었다며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군댄다고 했다. 미국 비자가 없었으므로…
헤이 러브 버드!
누군가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장난꾸러기 토니였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모두를 춤추고 맥주, 음료 마시며 재미있게 노는데 우리 둘은 후미진 곳에서 몇 시간째 속삭이고 있었다.
9… 3, 2, 1, 땡.. 해피 버스데이 투 철수 오빠…
12시 땡 하자 동생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시작하자 모두 해피 버스데이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끄럽고도 흥겨운 생일파티는 어디에서도 경험한 적이 없는데 이게 나의 생일 파티라니 모든 걸 기획한 여동생이 고마왔다. 용돈을 왕창 챙겨줘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유라가 나를 잡아당겼다. 토니는 그녀를 잡아 댕기고.. 처음엔 어색한 자세로 슬로 댄스를 시작했지만 몇 초가 지니자 유라는 아주 능숙하게 나를 리드해 나갔다. 타고난 몸치인 나는 유라가 하는 대로 이리저리 스텝을 맞추어 움직이자 어느새 나도 조금씩 리듬을 타게 되었다.
와 우리 오빠 몸치병 나았다…. 유라 언니가 몸치 고치는 의사 선생님이셔….
여동생이 손뼉을 치며 환호를 지르자 모두들 큰소리로 화답하며 즐거워했다. 둘만의 댄스가 끝나고 나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아쉽지만 우리의 파티 시간은 밤 1시 까지였다. 그 시간까지 청소를 깨끗하게 끝내고 모든 가구들은 정위치로, 쓰레기는 모두 수거해 주인 분들이 돌아왔을 때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그분들과의 약속이었다. 유라도 끝까지 남아 청소를 도왔다. 모든 청소와 점검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정각 1시였다.
밖에는 가을을 재촉하는 실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