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1972 늦여름 깜짝 파티

설렘

by Engineer

그날은 주유소가 유난히 바빴다. 이유는 간단했다. 근처 2킬로 반경에 대형 주유소가 3개나 있었는데(1) 모두 동시에 기름 가격을 올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중동의 정세가 가끔씩 뉴스에 등장하고 문제가 있을

기미가 보이면 영락없이 기름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우리 주유소 사장님은 이런 뉴스에 항상 느긋하게

다음 주에 올려볼까 식의 반응이라 가격에 변동이 없었다. 그런데 하필 주말이라 평소보다 더 많은 차들이

몰렸다. 주말에 모두들 놀러 가려면 풀 탱크를 채우는 게 습관화되어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긴 하루를 쉴 새 없이 뛰어다니다 퇴근하고 집에 와 샤워를 하자마자 깜박 잠이 들었는데 여동생이 사정없이 깨웠다.


오빠, 빨리 일어나..

누가 오빠 찾아왔어…

이 시간에 나를 누가 찾아와… 아 피곤해 더 잘래..

안돼, 오빠 얼른 일어나 로비에 내려가… 기다리고 있대..


나 보다 두 살 아래인 여동생은 어릴 때부터 음악에 재주가 많았다. 피아노를 배우다가 통기타에 빠져 학교의 대표 통기타 가수 역할을 했었다. 이민을 와서도 틴에이져들이 모이는 파티에 자주 불려 다녔고 친구도

나보다 훨씬 많았다. 나는 음치에 몸치에 모든 치를 달고 태어난 인생이라 파티와는 거리가 먼 생을 살고

있어 친구를 사귈 기회도 적었다. 닦달 거리는 동생의 성화에 할 수 없이 일어나 로비로 내려갔다.

하이 철수 씨…


로비 벤치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나며 나한테 손짓을 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형이었다. 그런데 그 옆에 누가 앉아 있다가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목례를 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긴 생머리에 롱드레스를 입었고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나도 얼떨결에 목례를 하고는 어정쩡한 자세로 멍하니 서 있었는데 뒤에서 갑자기

“해피 버스데이 투모로 오빠”라는 노랫소리와 함께 기타 소리가 짜자장!!! 들렸다. 여동생이 어느새 내려와 내 뒤에서 나를 놀라게 한 것이었다. 오늘이 내 생일.. 아니고 내일인데… 나는 어리둥절 한 표정으로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언니, 우리 오빠예요..

오빠 모해 빨리 가서 인사해. 오늘 오빠 깜짝 생일파티에 오신 분들야… 있다가 밤 열두 시 땡 하면 해피버스데이 불러 줄 거야.. 길 건너 xx아저씨 집에서 밤샘 파티하기로 했어. 아저씨네는 휴가 가셔서 빈집야. 허락은 물론 받았지.. 거기들 다 모여 있어. 얼른 인사하고 같이 가자고..

안녕하세요, 철수 씨. 저는 오유라입니다.

그녀가 꽃다발을 건네주며 자신을 소개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저는 박철수입니다. 순간 심장이 콩닥 뛰었다.

형도 오셨네요.. 감사해요.

먼저 가 계세요. 저는 잠깐 이 꽃다발 집에 갔다 놓고 갈게요.

어서 모시고 가. 나도 금방 갈게..

그래 오빠 빨리 오라고..


콩닥거리는 가슴을 들킬까 봐 얼른 꽃다발 핑계를 대었다. 그들이 나가자 나는 후다닥 집으로 올라갔다.

가슴이 계속 콩닥거렸다. 대체 저 묘령의 여인이 누구지… 그녀의 긴 머리가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깜짝 생일 파티라니. 말로만 듣던 Surprise Party란게 이런 거 구나.. 어쩐지 며칠 전부터 나만 보면 슬쩍 미소를 짓는 여동생의 행보가 수상하기는 했는데. 가끔씩 그녀 손에 용돈 몇 푼씩 쥐어 주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나를 놀라게 하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모하니.. 빨리 오랜다.. 어머니가 소리치셨다.


정신이 퍼턱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세수하고 크림 바르고 머리에 젤 바르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메이드 인 인도, 꽃무늬 손수가 놓인 히피 셔츠 입고 길 건너 아저씨 집으로 재빨리 뛰어갔다.

어떤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설렘으로 가득 찬 채..


(1) 당시에도 대형 주유소들은 경쟁과 담합을 교묘하게 위장으로 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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