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레, 씨브플레
여름방학이 시작하는 6월 3번째 월요일 나는 다시 아침 6시부터 시작하는 주유소에 풀타임 직원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시엔 주말에만 하루씩 일해 왔는데 그 수입으로는 주로 점심과 기타
학교생활에 필요한 비용으로 다 소요돼 돈이 모이지 않았다. 70년대 초 당시엔 물가가 저렴하기도 했지만
상대적으로 온태리오 주의 미니멈 웨이지도 시간당 1.65달러밖에 하지 않았다. 13학년이 끝나고 대학에 입학하려면 어느 정도 돈을 저축해 놓아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온태리오 정부에서 주관하는 OSAP대출
프로그램에 있긴 하나 얼만 큼이나 커버해줄지 몰라 가능한 저축에 치중했다.
경찰이 되기로 작정한 부치는 경찰 시험에 필수인 1.5 마일 달리기 훈련에 집중하기 위해 주유소를 그만두고 지방에 있는 할아버지 집으로 떠났다. 근육질이고 강인한 몸집이지만 그의 달리기 능력은 한참 뒤 쳐 저
있었다. 3달 후 시험을 보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 부치는 몰라보게 날씬해져 있었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리고 얼마 후 좋은 성적으로 시험에 합격해 경찰학교로 떠났고 오랫동안 그를 만날 수 없었다.
부치가 그만둔 주유소에 퀘벡주에서 온 두 청년이 풀타임 직원으로 입사했다. 둘 다 20대 중후반이었고
프렌치 악센트가 강한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퀘벡주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을 프렌치 캐네디언이라
부르며 영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 여행 중에 퀘벡주의 작은 동네 식당에 들리면 영어가 안 통해 음식 주문에 애를 먹기도 한다). 둘 중 한 살 더 많은 리오는 주유소 사장님의 먼 친척이라 했고 한 살 적은
안드레는 말수가 적고 영어가 어눌했다. 둘은 한 동네 나고 자란 친구라 했다. 나는 9월이 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고 가능한 일을 많이 해 돈을 모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이런 나의 사정을 잘 아는 사장님은 나에게 특별히 많은 노동 시간을 할애해 주셨다. 아마 나의 Yang Ah Chee 퇴치 사건에 감명을 받으시고 좀 더
배려를 해주셨을지도.. 주유소는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8시간씩 오전 오후 두 쉬프트로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10시간씩 일을 했다. 리오는 나와 같이 6시부터 시작해 오후 2시에 퇴근하고 안드레가 2시부터 밤 10시까지 근무했다. 오후 4시에 내가 퇴근하면 다른 알바가 안드레와 함께 일하는 구조였다.
리오, 안드레와 같이 일하다 보면 자주 18이란 말이 들려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는데 얼마 후 그 원인을
알게 되어 더욱 황당했다. 불어로 플리스(Please)는 “씨브플레”였고 그 둘은 말도 빠르지만 입술사이로
바람이 빠지는 듯 센 소리가 많이 났다. 어느 날 교대시간에 둘이 사무실에서 작은 말다툼을 벌렸다. 한가한 시간대라 나도 사무실로 가 기웃거렸다. 둘이 불어로 한참 열내며 떠들다가 리오의 입에서 의치가 불쑥 튀어나왔다. 당황한 리오가 얼른 의치를 끼우려고 허둥대었고 그 모습을 보던 안드레가 깔깔 대며 웃다가 그의
의치도 툭 튀어나왔다. 난 이런 희얀한 광경은 한 번도 본 경험이 없어 그냥 멍하니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둘이 나의 시선을 의식한 듯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리오가 안드레에게 마지막 한마디 던지고는 밖으로 나왔다. 내 얼굴 앞에서 의치를 한번 들쑥 해 나를 한번 더 놀래키곤 재미있는 듯 웃는 얼굴로 퇴근했다. 여태까지 의치란 게 있다는 말만 들었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주로 노인들이 사용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30도 안된 두 청년이 의치를 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생각해 보면 그 둘과 일하면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의 주머니엔 늘 초콜릿 바가 서너 개씩 들어 있었고 그게 식사였다. 그렇게 초콜릿바를 입에 달고 살았으니 고작 이십 대에 이미 모든 이빨을 잃게 된 것이었다.
결국 나를 황당스럽게 만들었던 18레의 원인은 리오와 안드레의 의치였다. 씨브플레란 지극히 사랑스러운
프랑스 말이 초콜릿바를 심하게 사랑한 두 청년에 의해 가장 혐오스러운 한국말 18 레로 추락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리오와 안드레한테 설명하자 씨브플레는 나를 놀려댈 때 사용하는 그들의 주 무기가 되었다. 18레 Eighteen!
그렇게 오일 냄새로 뒤범벅이 된 1972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음을 나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