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by 이일우


“행복한 지방의회 전문위원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지방의회 전문위원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_ 이일우

사람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 뒷담화가 있다. 나의 어공 전문위원 생활은 뒷담화와의 전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은 집행기관 직원들이 내 검토보고서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식이었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공들인 부서의 사업이나 조례안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다는 검토보고서를 어느 부서장과 팀장이 좋아할까. 의회사무국 직원들의 뒷담화도 비슷했다. 지방의회의 인사권이 독립되기 전에는 의회사무국에서 1∼2년 근무하다가 구청으로 돌아가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 직원의 눈에 구청의 동료를 성가시게 하는 내 검토보고서가 좋게 보일 리가 있겠는가. 이와 같은 직원들의 뒷담화는 자연스레 일부 의원들의 뒷담화로 이어졌다. 친(親) 구청장 또는 친(親) 공무원 입장에서 원내 의정활동을 하는 기초의원일수록 공무원을 힘들게 하는 나 같은 전문위원을 떨떠름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국회나 광역의회의 경우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가 비판적일수록 칭찬을 받는 반면 공무원과 오랫동안 형님, 동생처럼 지내는 기초의회일수록 의회의 위상이나 역할보다 본인의 개인적 친분을 훨씬 소중히 여기기 일쑤였다. 어느 구의회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정년 퇴임을 앞두고 6개월간의 공로 연수에 들어가는 의회사무국의 모 의정 팀장이 마지막 출근일에 몇몇 의원들에게 나를 뒷담화했다가 머쓱해진 적이 있다. 낼모레면 환갑인 나이에 정년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출근하는 날 구의원에게 고작 한다는 말이 임기제 전문위원 험담이었으니 그 모습이 의원들에게 좋게 보였겠는가. 그 상황을 전해준 의원도 나도 씁쓸하긴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왜 뒷담화를 할까. 《자존감 수업》의 저자이자 정신과전문의인 윤홍균은 사람들이 험담하는 이유를 질투 때문이라고 봤다. 그가 SNS에 올린 험담에 대응하는 몇 가지 팁을 보고 공감을 많이 했는데 일부 내용을 인용해본다.


“여러모로 알아봤는데, 역시나 가장 큰 원인은 질투 때문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누군가 가지고 있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뺏길 것 같은 위험이 느껴질 때 우리는 험담을 한다. 그 사람의 평판을 깎아 먹거나 그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단점이라도 만들어서 부각시킨다. 그러니 험담을 당했다는 것은 두 가지 사실을 반영한다. 첫 번째는 당신이 그 집단에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 두 번째는 사람들은 당신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대세에 지장이 있을 것 같으니 공격을 하는 것이고, 전면에 나서서 붙어볼 만큼 만만치는 않으니 뒤를 노린다. 특히 당신이 험담 당했다는 사실을 전해주는 동료를 조심해야 한다. "험담을 당했을 때 멘탈이 얼마나 흔들리는지" 알아보기 위해 당신을 떠보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험담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준비된 표정으로 너털 웃음을 지어야 한다. 표정을 갑옷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공격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신의 마음속 깊은 자아가 아니라 얼굴 근육이다. 얼마나 내가 표정을 단련했는지가 이때 반영된다. 허술하게 한방에 뚤려 버리면 상대는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이하 생략)”

뒷담화를 한 번도 안 당할 줄 알고 아무 준비 안 된 사람이 아니라 아주 어릴 때부터 수많은 시기와 질투, 비난과 험담에 단련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게 포인트라고 윤홍균 작가는 강조한다. 그러면서 강해질수록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은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 얼굴 근육을 단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머리로는 알 것 같은데 막상 직장에서 뒷담화에 노출되면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점이 문제다. 열등감을 감추려는 마음이 강해질수록 타인의 약점을 들춰내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려 한다면서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는 이를 ‘열등감 콤플렉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우월감은 일시적일 뿐 관계는 점차 피로해지고 고립만 깊어질 뿐이다.


20년 가까운 직장생활 경험상 뒷담화와 이간질은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공동체의 분열과 불신을 조장하는 효과는 똑같기 때문이다. 뒷담화, 이간질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인상적인 캐릭터가 있다. 1990년대 초 인기리에 방영된 TV 애니메이션 머털도사 시리즈의 2편인 “머털도사와 108요괴”를 낄낄대며 시청했다. 주인공인 머털이의 어리숙한 캐릭터나 유머도 재밌었지만 극 중에서 108 요괴의 하나로 나왔던 ‘이간질 요괴’가 압권이었다. 청소년 시청자를 대상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에서 ‘이간질 요괴’를 빌런으로 등장시킨 작가의 상상력과 통찰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흔히 요괴라고 하면 머리에 뿔이 달리거나 입술 양쪽에 송곳니가 툭 튀어나오고 이목구비가 제멋대로 생겨 흉측하고 난폭하게 묘사되기 일쑤였다. 이간질 요괴는 눈꼬리가 양옆으로 가늘게 찢어진 것 말고는 겉보기에 평범한 외모였다. 하지만 그런 겉보기와 달리 행동이 달랐다. 이간질 요괴는 등장하자마자 주인공 머털이와 여자친구 묘선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끊임없이 확인되지도 않은 말로 둘의 사이를 험담했다. 마치 두 주인공이 멀쩡하게 지내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이간질 요괴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아무리 애니메이션이라지만 이간질도 요괴로 쳐줄 정도로 인간사에서 주요 경계 대상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중국의 고서 ‘한비자’에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나온다. ‘세 사람이 입을 맞추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는 말로 거짓임에도 여러 사람이 반복해서 이야기하면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다. 한 구인구직 사이트가 직장인 89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한 직장인의 89%가 ‘직장에서 말실수로 인해 곤란을 겪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특히 가장 많이 한 말실수가 바로 ‘상사, 동료, 후배, 회사에 대한 뒷담화 실수’(27.6%)였다고 한다. 직장에서 특정인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는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속하고, 이는 2019년 7월 16일 근로기준법 내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가 명문화돼 위반 시 처벌될 수 있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 ‘뒷담화’를 한다면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이러한 뒷담화 혹은 ‘카더라 통신’은 실제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데 문제가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사실이 아닌데도 일단 소문이 퍼지고 나면 타격이 심각하다는 데 있다.


어공 전문위원으로 일하는 동안 집행기관과 의회사무국을 가리지 않고 뒷담화 때문에 괴로웠던 순간이 많았다. 구청장이 속한 정당과 다른 정당 출신이라서 비판적이라느니, 안하무인이라느니, 갑질을 한다느니, 검토보고서를 쓸데없이 길게 쓴다느니 등등이 그것이다. 당연히 전부 사실무근이다. 당시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내가 나서서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렵고, 설령 그럴 기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마치 변명하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직원이나 의원은 전후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흔히 ‘뭔가 그 사람 본인에게 문제가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행위자-관찰자 편향’(actor-observer bias)과 관련된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주로 상황 탓을 하는 반면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는 그 사람 탓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정말로 속이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체로 기초의원은 원내 의정활동에 관심이 적다 보니 의회 운영을 세심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글자 그대로 등잔 밑이 어두운 격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나갔다. 1년 6개월의 셀프 안식년 동안 조직 밖에서 지내니 뒷담화를 들을 일이 적었고 달리 생각해볼 심적 여유도 생겼다. ‘나를 잘 모르면서 뒷담화하는 그 사람이 문제다’, ‘내가 왜 그 사람의 단점 때문에 괴로워해야 하나’, ‘내가 응징해 주지 않아도 그 사람은 그 단점 때문에 언젠가는 곤란을 겪을 것이다’라고 나부터 다독이기 시작했다. 지방의회의 존재 이유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중요해질 것이므로 나에 대한 일부의 오해도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해소될 거라고 믿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뜻하지 않게 기분좋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뒷담화를 많이 들었던 옛 직장 두 곳 모두에서 의회사무국 직원 대상 교육의 강사로 나를 불러준 일이 그것이다. 금의환향까진 아니더라도 새옹지마가 따로 없었다. 2023년 11월경 그중 한 곳에서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타자마자 내 안에서 뭔지 모를 감정이 몽글몽글 일어났다. 당시 적어둔 업무 일기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한바탕 굿판을 벌인 것처럼 속이 다 후련했다.” 그렇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사람을 바꿀 수는 없다. 그 사람은 그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게 두고, 나는 내 노래를 부르자. 이제는 습관처럼 타인을 이간질하는 사람의 경우 결과적으로 조직 구성원 간에 불신을 조장하는 사람이니 일부러라도 거리를 두는 편이다. 건전한 비판과 단순한 이간질의 차이는 험담하는 사람이 평소에 자신을 얼마나 치열하게 성찰하는가에 달렸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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