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전(前)·후(後)

by 이일우

#장면 1 : 2022년 1월 13일 오전 10시 30분 00구의회 인사권 독립 기념식

구의회 인사권 독립을 기념하며 의회 소속 직원들이 의장으로부터 임용장을 받는 행사가 열렸다. A4 용지에 인쇄된 임용장을 상장케이스도 없이 받았다. 이번에 구의회 소속으로 새로 임용장을 받은 행정직 공무원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그것도 7급 이하 직원들뿐. 나머지 구의회 사무국장부터 2명의 전문위원과 모든 팀장들은 언젠가 구청으로 복귀할 '파견' 형태의 행정직 공무원이다.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시행된다고 기념식을 하며 호들갑을 떨지만, 의회사무국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여전히 집행기관 공무원들이 주도하는 구의회이다. '주인'인 의회 소속 직원보다 '손님'인 파견 직원이 파견수당까지 받으며 목소리를 내는 구조이다. 아마 제9대 의회 이후에나 이런 사항이 개선될 것 같아 답답하다. 관료 기득권과 다투는 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만큼이나 무모한 일일지도 모른다. - 2022. 1. 13.(목) 업무일기


#장면 2 :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이 됐는데도 의회사무국장은 여전히 구청장 주재 간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2022. 2. 22.(화) 업무일기


구맹주산(狗猛酒酸)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우(外儲說右)>에서 유래한 말이다. 송(宋)나라 때 술 장사꾼이 있었는데, 술을 빚는 재주가 좋고 친절하며 정직하게 장사를 하였음에도 술이 잘 팔리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그가 마을 어른 양천을 찾아가 이유를 묻자, 양천이 되물었다. “자네 집의 개가 사나운가?” 술을 파는 자가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양천이 말하길, “어른들이 아이를 시켜 술을 사오게 하는데, 당신네 개가 사나우면 들어갈 수가 없으니, 술이 팔리지 않고 시어가는 것이네”라고 하였다. 한비자는 나라의 간신배를 사나운 개에 비유하여, 아무리 어진 신하가 옮은 정책을 군주에게 아뢰어도 조정 내에 간신배가 들끓으면 정사(政事)가 제대로 펼쳐지지 않음을 설명했다. 따라서 ‘구맹주산’은 ‘나라에 간신배가 있으면 어진 신하가 모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인다. 얼핏 보면 무관하게 보이겠지만 기초의회의 현실을 들여다볼수록 나는 이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술이 팔리지 않게(의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개가 사나운 것이다(집행기관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2025년 7월 말 현재 전국의 지방의회 사무기구 직원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의장한테 임용장을 받은 의회 소속 직원과 지자체장으로부터 임용장을 받은 후 지방의회에서 1년 내외의 기간 동안 근무하기로 한 파견 직원이다. 혹자는 전자(前者)를 ‘의회직’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현행 「지방공무원 임용령」 제3조제1항은 일반직공무원의 직군·직렬·직류 및 직급의 명칭을 별표 1과 같다고 하고 있는데 이 [별표 1]에 ‘의회직’이라는 용어는 없기 때문이다. 즉 행정직, 세무직, 전산직, 교육행정직, 사회복지직, 속기직, 방호직이라는 직렬은 있어도 법령상 ‘의회직’이라는 직렬은 없다. 집행기관에서 파견나온 의회사무기구 직원과 다르게 지방의회 의장이 임용한 자체 직원을 편하게 지칭하다 보니 의회직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인데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인 셈이다. 이런 호칭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의아해 보일 수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듯이 30년 만에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2022년 1월 시행되면서 지방의회 의장에게 의회사무기구 직원에 대한 인사권이 부여됐다지만 선언적인 것에 불과할 뿐 속사정은 딴판이다. 식당 내부는 그대로 둔 채 간판만 바꾼 신장개업이랄까. 지방의회의 오랜 염원이었던 인사권이 독립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지방의회는 정책지원관을 제외한 신규 직원을 추가로 채용하지도 않았고 채용할 수도 없었다. 단지 어제까지 의회사무기구에 있던 집행기관 소속 공무원들이 인사권 독립일을 기점으로 본인의 선택에 따라 소속을 의회 또는 집행기관으로 바꿨을 뿐이다. 기초의회의 경우 사무국장이나 전문위원만이 5급 이상 승진자리다 보니 6급 직원들은 기초의회 사무기구로 소속을 선택하고 싶은 동기가 적었다. 5급 이상 승진 자리가 많은 집행기관에 남는 것이 승진 가능성이 높을 테니까. 이렇다 보니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시행을 앞두고 공모한 결과, 집행기관에서 지방의회 소속으로 지원한 사람은 7급 이하이거나 당장 5급 승진이 급하지 않은 소수의 워라벨 추구형 6급 직원이 대부분이었다. 서울시 자치구의 경우 1,000명이 넘는 집행기관 인력 규모에 비하면 구의회 사무기구는 고작 40명 미만이니 장차 5급 승진을 기대하고 근무평정을 관리해야 할 사람이라면 당연히 구의회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집행기관으로 가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선택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조직 생활을 하면서 편한 보직, 힘있는 자리를 찾거나 승진을 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니까. 다만 기초의회 사무기구일수록 공무원들의 이런 승진 욕구를 긍정적으로 유인하기엔 형편이 너무 열악한 것이 갑갑할 따름이다. 지방의회법 제정과 의회직렬 신설을 통한 광역지자체 통합인사를 주장하는 이유이다.


헌법 개정을 통해서든 지방의회법 제정을 통해서든 지방의회 의장이 의회사무기구의 핵심 직위인 팀장과 전문위원, 사무국장을 집행기관에서 받지 않고 의회 자체적으로 직접 채용하거나 승진시킬 수 있길 바란다. 그래야 지방의회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혹시 지방의회에 실질적인 인사권을 주면 각종 인사 비리가 늘어날 거라 걱정되는가? 그것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와 비슷하다.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안목을 믿어야 한다. 인사비리를 밥 먹듯이 하는 지방의회 의장이나 의원은 결국 유권자의 밝은 눈으로 반드시 걸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집행기관으로부터 독립적인 인사와 예산이 전제되어야 집행기관과 대등하게 지방의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25년 8월 말 현재 지방의회 인사권은 아직 독립 전(前)이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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