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있는 소중함을 몰랐다.

2018년 남복 평화 협력 기원 평양공연

by 부산 아낙네

대학시절 난 가난하여

대학축제를 즐기질 잘 못했다.

취업이 빠르게 가능한 대학 축제 때

생각나는 초청가수 ㅡ 강산에


대학 보다 어릴 때

강과 산에서 라는 줄임인가?

이름이 자연적이고 순수 한국적이고

흥얼거리기에 편한

노래 "라구요" 좋았다.


오늘 알고보니

6.25때 북에서 각각 따로 월남한

부모님 이야기가 노래 가사라고 한다

너무 어릴 때라 몰랐다

이야 이런 사연이-


지금 들어보니 여전히 좋다

대학 축제 당시 관객인 학생들이

반말 한다고 야유를 보냈지만 ㅡ기억이 확 난다

가수님께서 멋진 라이브로 끝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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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건

내 아버지 레파토리 **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를 자주 부르시던

아버지 덕분에 이 노래는 알지만,

북에 가본적없어 두만강의 뱃사공은 본 적이 없구나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는 노래는 어데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어릴 때 들은 적 있는 이 노래가 왜 좌파 노래인지

도대체 좌파의 정의가 먼지?

언제쯤 역사 속으로

명확한 정의가 없어 보이는

좌파, 우파라는 단어가 사라질지?

민족의 분열과 국민의 분열을 자극한 단어들


솔직히 저는 북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자랐습니다.

TV에서 이산가족상봉을 본 적 있는 데

이제라도 만나서 기쁜데 웃어야지

텔레비 방송 중에

왜 저리 정치인처럼 표정관리 안하고

오열하고 울고 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저는 20대 30대 초반까지도

카타르시스도 알지 못해,

비장한 마음으로

교수님께 질문했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T였구나?합니다

지금은 나름 느끼는 F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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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고향 생각 나실 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

18번은 최애곡 중 아주 자주 부르는

노래입니다.

아버지는 "눈물 젓은 두만강"이 최애곡으로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소주 한 잔 하시고 우시던데

그 이유를 알아보니,

"향수병"- 고향생각


죽는 날까지 하시던 말씀은

"북에 있는 내 고향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

라는 저의 사연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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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 건

내 어머니 레파토리**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를 자주 부르시던

어머니 덕분에 이 노래는 알지만,

북에 가본적 없어 흥남부두는 본 적이 없구나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 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데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던가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를 간들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다오 남북통일 그날이 되면
손을 잡고 울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


아버지의 고향은 두만강을 보는 함경북도

어머니의 고향은 흥남부두를 보는 함경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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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남은 인생 남았으면 얼마나 남았겠니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어머니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18번은 "굳세어라 금순아"을 부르며

우시면서 하시던 말씀은

죽는 날까지 하시던 말씀은

"북에 있는 내 고향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

라는 저의 사연이었습니다. ^^


'라구요'는 강산에가

실향민 부모님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

실향민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사람


이산가족찾기 할 당시

꼬마인 저도 곧 통일이구나 했다.

차로 몇 시간만 가면 되는 그 동네

일부러 떠나온 정치범도 아닌데,

속상하게 "실향민"라는 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쪽에서 살면서 "종북세력 척결" 과 같은

정치적 공세가 더하여,

북쪽 관련 등본이 있으면

공직도 못나아가는 불합리한 상황에서

그들은


지금의 탈북자는 선택이 있었고

탈북자는 혜택도 있지만,


당시 북에서 내려와 사셨던 분들은

고향도 그립고,

남쪽에 아는 사람도 없고,

사는 방식도 다르고 음식도 다르고,

게다가 감시대상자였으니,

어떤 방식으로도 북쪽 땅을 밟아볼 수 없는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실향민이 맞습니다.


하지만 부모 마음을 아는지

아님 단순히 흥행의 목적인지

알 수는 없지만 ^^


"라구요"라는 곡으로

북쪽에서 공연을 하는 것으로

부모님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는

효자가 되셨네요 ^^


훈훈하고 따뜻한 소중한 이야기는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저의 대학시절 축제 때

가까이서 뵈었던

야유로 소외 받던 가수님의

진심어린 효심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도 소외된 분들의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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