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0대 아르바이트

신발 공장서 왕씨 성을 가진 언니가 도와줬어요

by 부산 아낙네

고등학교 때 성적이 좋지 않아서 인지

정신 교육 차원인지

저희들을 돌봐주신 이모와 어머니께서는

저를 신발 공장에 아르바이트를

보냈습니다.


공장에 도착하려면

버스를 두 번 타야 했는데

일하는 기간 중에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곳에 내려 걸어서 다시 찾아가야해

지각이 잦았습니다


단순한 작업으로 돌아가는 기계속에서

신발이 완성되는 것인데

방학숙제인 한문도 거기서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이 힘든 것보다 공장 찾아가는 길이

너무 힘들었어요

1-2시간 일찍 가도 헤매게 되는 길 ㅜ


마지막날이 다가올 때 쯤

왕씨 성을 가진 언니는 저는 괜찮다는 데도

출근 시간을 찾아 월급을 조금 더 받게해주고

없는 돈에 마지막 파티도 해주셨어요

월급으로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안나는 데

아마도 어머니를 드렸지 않을까 합니다.

항상 제가 번 돈은 어머니 드렸으니요 ^^


나중에 성공하면 갚아야지 했는데

지금은 만나면 커피도 밥도 살 자신이 있어

여기에 남깁니다 ㅡ


어떻게 기억하냐구요?

왕씨는 임금의 성으로 옛날에는 왕족인데

나에게 이렇게 베푸는 언니는

공장에서 왕일까?


사실 저 챙겨주다 혼났는데도

끝까지 챙겨주셨어요 ^^

며칠간의 스친 인연 궁금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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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 보탬도 되고 용돈도 벌고자

신문배달을 하룬가 이틀인가

중학교 때 했습니다


일하고 난 후

한 오빠가 무서워하는 오토바인가?자전거를 태워

데리고 간 해운대 바닷가의 일출을 봤는데

지금껏 그리 멋진 장관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노동 후 행복한 일출의 광경을 보고자

끝까지 일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하지말라고 강압ㅡ 노우

갑자기 외할머니께서 매달 신문 배달비 준다고

유혹 ㅡ 노우

문제가 신문보급소에서 배달 잘못해서

전화가 많이 왔다고 ㅜ 화를 내셔ㅜ

어쩔 수 없이 항복해서 포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했습니다


10대 알바는 이게 다 였나?

대학 진학 전 고등학교 때 잠시

단월드를 다녔는데

최근 사이비 종교라는 소식에 충격

거기서 운동하며 배움도 있었는데

싫어하는 가족때문에, 대학 생활을 위해

점점 잊혀진 곳이 되어 버렸지요


알바는 아니고 무상으로 전단지 배포 등

다니니 건강이 좋아져서

자신있게 홍보했는데 알고보니

사이비 종교단체 ?

전혀 몰랐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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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까요?

저는 사무직도 좋지만

건강하다면 노동의 가치가 더 뿌듯하단 걸

몸소 체험을 통해 배워

좋은 왕언니와 바닷가 일출을 보여준 오빠

사이비 종교 단월드보다 건강을 찾아준

원장님 덕분인지


그냥 나름 선하게 살았습니다.

글 속에서 느껴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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