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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내나는하루 Oct 31. 2023

나는 심리상담을 받는다2

기분부전 성향을 진단받다


나는 여전히 심리상담을 받는다. 심리검사 결과, 정상 범주에 속하지만 기분부전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기분부전이란 경증의 조증과 울증을 반복하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쾌활하고 외향적이며 적당히 사회생활을 잘해 보이는 평균적 인간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빠지는 상황이 오거나 몸이 피곤해지면 많이 예민해지며 쉽게 슬픈 생각과 다양한 망상을 하는 경향이 있다. 즉, 우울감을 쉽게 느낀다는 것이다. 또 그러다가 쉽게 활력이 돌아오며 갑자기 뭔가를 갑작스레 시작하기도 한다.


이런 기분부전성향을 가지고 있으면 술, 약물에 중독되기 쉽다고 한다. 예전에 잠깐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내 사주를 보고 너는 알코올에 쉽게 중독될 수 있는 팔자인데, 술을 잘 못 먹는 체질로 태어나게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글쎄, 나를 이렇게 낳아준 부모에게 감사해야 하나, 정서적으로 그다지 튼튼하지 못하게 길러줬는데 감사해야 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불안과 항상 싸우는 인간이라 불안 장애나 우울증 정도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 외의 결과가 나왔다.  기분부전성향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나니 조금은 속 시원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속상하기도 했다. 차라리 우울증이 나았으려나. 왜인지 히스테릭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조증이라는 단어가 또라이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해서인가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연인지, 최근에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을 읽었었다. 그 작가가 기분부전 환자라고한다. 그래서 ‘기분부전’이라는 병명을 알고 있었다. 작가는 정신과에 다니며 의사와 상담하는 대화 내용을 그대로 책으로 옮겼다. 책을 읽고 나니까 책 제목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알게 되었다. ‘죽고 싶지만’은 우울증을 의미하고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조증을 의미한다. 그 작가의 기분을 나만큼 잘 이해하는 이가 또 있을까. 죽고 싶지만서도 갑자기 떡볶이 생각을 하면 다시 생에 활기가 도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이 기분의 변주곡을 나보다 누가 더 잘 이해할까.


상담선생님은 약이 필요하면 약을 먹어봐도 좋다고 했다. 근데, 뭐 누구나 현대인들은 약간의 우울감을 가지고 있고, ‘정신과’라는 단어는 너무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그리고 정신과 약물은 먹으면 졸리고 나른할 거 같아 일상생활에 방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섭다. 그리고 병원비도 무섭다. 의료보험이나 실비보험이 되는지 알아만 둬야겠다.


그리고 나는 가족과의 관계에 대한 편안함이 없다고 한다. 항상 결과물이 좋아야만 칭찬을 받았고 존재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평가만 받는 존재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 자체가 가치 있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것 같다. 이 문장을 쓰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슬프다.


아빠는 대체로 자상하고 금전적 쓰임에 인색함이 없지만 나에 대해 결과 지향주의적이었던 것 같다. 좋은 대학 못 들어갔을 때, 실망한 모습이 역력했었고 임용 고시를 떨어졌을 때 ‘네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까 떨어졌겠지.’라고 했다. 아, 근데 그때 임고는 떨어졌지만 되게 열심히 살았다. 내 능력의 범주가 넓지 못했었을 뿐이지. 학습 방법을 제대로 몰랐거나. 또 눈물이 나네, 속상하다. 그리고 뭔가 문제가 생기면 항상 내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농담으로 ‘너 때문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엄마는 유복하지 못한 환경에서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라서 애정표현에도 어려움을 많이 겪고 기분의 변동폭이 큰 사람이다. 자식과 의사소통이라는 걸 잘할 줄 모르고 잔소리와 핀잔, 비난으로 주로 소통을 한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식들은 참 힘들다. 집에서 강아지랑 재미있게 놀고 있으면, ‘너는 친구가 없으니까 집에서 강아지랑만 놀고 있지?’라고 한다. 나는 실제 친구가 그렇게 없는 편도 아니며 많지는 않아도 몇몇 친구와 깊은 교류를 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잘 지낸다. 기분 좋게 잘 놀다가도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너무 나쁘고 울화가 치민다. 내 울증의 원인은 김여사의 지분이 클 거다. 적지 않다고 본다.


이렇게 부모님 험담을 쓰고 있자니, 속 시원하면서도 걱정도 된다. 나중에 책 내고 싶어서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나를 아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나를 불쌍하게 보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에라, 모르겠다. 내 모든 지인이 이 글을 다 읽을 것도 아니고 내 브런치 주소를 아는 이는 없으며 알게 되더라도 어쩌겠는가. 내 글이 유명해져서 책 내고 싶은 욕망이 더 큰 걸. 나도 책 제목 만들어 놔야겠다. ‘쪽팔리지만 책은 내고 싶어’, 좋은데?


이렇게 마음 힘든걸 글로 쏟아내니까 속이 시원하다. 마음 힘든 사람들이 다 글을 썼으면 좋겠다. 친구한테 상담하고 수다 떠는 거 한계가 있다. 다들 글 한번 써봤으면 좋겠다. 배뇨, 배변 활동 한 것만큼 시원하다. 다시 조증으로 올라가는 중인가 보다. 기분부전 모두 힘내자.





이미지 출처: https://mobile.hidoc.co.kr/healthstory/news/C000047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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