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피한 이별

손에 쥐고 있어도 흩어지는 것들

영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곁에 오래도록 머무를 것이라 확신했던 것들이 오히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내 손 안에서 흩어졌다. 그리고 이별은 결코 내 의지대로 흘러갔던 적이 없었다.

나는 준비조차 하지 못한 채 이별하고 싶지 않았던 모든 것들에 강제로 이별을 고했다.

시절 인연이 떠나갈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서 이유를 찾느라 바빴는데, 내가 진짜 인연이라 착각했던 그들이 시절 인연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시기조차도 버거웠던 기억이 있다.

나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어서,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의 범위 안에 새 인연이 들어오면 내가 가진 사랑을 힘껏 나눠주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자꾸 습관처럼 사랑하는 버릇 때문에 나에게는 유독 이별이 참 아프다. 물론 누구나 이별하면 아프겠지만 정과 사랑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이별에 대한 타격감이 점점 끝 모르게 커져서 나를 갉아먹는 지경까지 이르니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별이라고 하면 일반적인 예시로 연인과 이별하는 상황이 있겠지만 연인과 이별하는 상황뿐만 아니라 나는내가 사랑했다고 느끼는 모든 나의 인연들에 이별을 고하는 매 순간이 정말 아팠다.

괜찮아져서 잘살고 있다고 느끼는 어느 날에도 나를 떠나간 인연이 스치듯 떠오를 때 올라오는 감정들을 애써 무시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여 내가 더는 아프지 않기 위한 연습을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별의 장면을 잊지 못하고 그 장면이 계속하여 떠오르는 이유는 이별했던 그 당시의 방식이 내가 원했던 이별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의 머릿속에 수십 개의 느낌표가 떠다닐 만큼 이 사실은 꽤 충격적이었다.

사실 내가 원하는 이별 방식은 어떻게든 좋은 이별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한 번도 내가 원하는 이별 방식대로 이별이 맺어졌던 적은 없다. 이별은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좋은 이별을 정의하는 것도 모순인 것이 나에게는 좋은 이별이었다고 해도 그 사람에게는 좋은 이별이 아니었다면 괜찮은 이별이라고 말할 수 없어서 그냥 이별은 언제 맞닥뜨려도 마음 아픈 것으로 어느 순간부터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별은 나에게 예측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당장 이별을 고해야만 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너를 너무나도 사랑했는데. 아직 나에게는 너에게 줄 사랑이 차고 넘치는데 이별은 자꾸 나에게 너를 밀어내야만 한다고 소리쳤다. 지금 당장 이별하지 않으면 그나마 내가 열심히 쌓아놓았던 나의 사랑 조각들이 전부 소멸해 언제 생성될지 예측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내가 너와 당장 이별해야 할 때 이별을 미루고 또 미루다 보면, 나의 사랑 조각들은 없어지고 사랑의 모양마저도 흐트러져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만드는, 마치 “사랑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삭제하기를 누르면 전체 삭제되어 복구되지 않습니다.”의 문구를 감히 띄울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것. 너와의 이별은 그런 것이었다.

나는 이 시한폭탄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너의 손을 놓았다. 이번에도 이별은 결코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날을 통째로 부정하는 날이 잦았다.

내 안에 살아있던 사랑 조각들은 어느새 슬픔으로 뒤덮여 사랑이 만들어질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는 너를 사랑했던 크기만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별은 나에게 예측할 시간을 주지도 않았지만 나를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변모시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