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장애가 있는 환자가 쉬는 시간 내에 치료실을 이동하는 것은 시간상 어렵기 때문에, 치료실이 바뀌는 경우에는 끝나기 무섭게 각자의 보호자들이 환자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호다닥 잰걸음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안그래도 짧은 치료시간, 5분이라도 늦으면 안되니까. 흡사 휠체어 카트라이더같다.
"엄마는 이 순간이 매번 슬퍼. 휠체어 대기공간에 다 어르신들밖에 없는데 어린 까까머리 하나 덩그러니 있는걸 보면, 가슴이 미어져."
치료대기공간에 줄지어 휠체어를 주차해 놓으면 시간 맞춰 치료사가 휠체어에 탄 나를 데려간다. 엄마는 이 시간이 되면 매 순간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나를 혼자두고싶지 않아 하셨다. 주차된 휠체어들 사이를 비집고 서서, 내 옆에서 하염없이 오른손을 주물렀다. 근육을 안쓰게되면 몸이 굳는 '구축'이 생기는데,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또 스물여덟씩이나 먹고 엄마를 옆에 계속 끼고있는게 조금은 부끄러워서, 가끔 엄마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날이면 올라가서 좀 쉬라고 등을 떠밀었다.
엄마와 같은 마음에서였을까. 나를 담당하던 치료사 선생님들은 치료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30분이 너무 짧다.'라며 움직이지 않는 내 손을 붙들고 움직임을 만들어내려 애썼다.그 덕이다. 생각만큼 빠르지도, 기대만큼 많이 움직일 수 있지도 않았지만, 나는 분명히 나아지고 있었다.
우울증약이 만들어준 활기일까. 나도 이 무렵부턴 '될 때까지 하지 뭐! 싸우자 인생아 한번 찍어보지 뭐!' 하고 생각했다.아니, 생각하려 애썼다.
낮의 일과가 끝나면, 저녁 먹고 남는 시간은 병원 로비를 걸었다. 직선의 로비를 난간에 붙어서 일자로 걷는다.
머릿속에선 끝없이 생각을 한다. 걸을 때 어떻게 걸을지 생각하며 걷는 사람이 어디있어. 그냥 걷는거지. 하지만 나는 걷는 방법을 잊어버렸기에 매 걸음 생각하며 내딛는다.재활치료시간에 배운 법을 되뇌고 또 되뇐다.
왼쪽발 나가고 몸이 올라가면 이 빈공간으로 오른발을 앞으로 끌고 가고, 엉덩이 힘주고 무릎은 똑바로...
생각하면 무얼해.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도대체 엉덩이에 힘은 어떻게 주는거지?다리를 펴려고 하면 발목이 안쪽으로 돌아가 디딜 수가 없어 그냥 바닥을 끌어야 한다. 실패하면 다음 걸음에 또 시도하고, 시도한다.성공률은 0.그냥 제로.
190422 걷는 모습 (느린영상 아님. 1배속) 아니 엄마는 딸래미한테 왜 빨간양말을 신기고 그래..
난간이 끝나면 뒤에서 보호자가 끌고 온 휠체어에 옮겨타고 다시 난간의 시작점으로 간다. 뒤돌아서 다시 가면 안되냐 의문이 생기겠지만, 불가하다. 오른손으로는 난간을 잡을 수 없으니까.
맞은편에서 왼쪽 편마비인 사람이 오른손으로 난간을 잡고 걸어오고 있으면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친 원수들처럼 미묘한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난간이 없으면 못 걷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보호자와 휠체어를 호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