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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네 Oct 25. 2024

7. 나의 손글씨 아카이브

오른손을 못쓰게 된 오른손잡이

 허리를 세워 앉을 수 있게 되고, 아직 걷는게 어려웠을 무렵, 재활병원에 입원한 스물여덟살(그새 한 살 먹었다ㅜ)에게는 할 수 있는게 많지 않았다. 재활치 중간중간 비는 시간에는 1층 로비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사서 글씨연습을 했다.




 처음 무언가를 쓴 건 재활병원 작업치료 시간이었다. 글자를 쓰는게 너무 섬세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선긋기, 도형 그리기부터 시작했다. 혼자 펜을 쥐는게 어려워 선생님이 손을 잡아주면 같이 그렸다. (사실 선생님이 그려주는 거나 다름없음)


 그러다 혼자서 펜을 쥐고 쓰기 시작했다. 안정성이 없으니 펜이 이리흔들리고 저리흔들리고 난리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니 내가 쓴건데도 뭐라고 썼는지 기억이 안난다. 상형문자 해석이 따로 없다.

2019년 6월 1일 토요일. 뭐라고 썼나 맞춰보세요ㅋㅋ

 펜촉을 눌러쓸 필요가 없는 것, 두께가 두꺼운 것이 훨씬 수월했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 보드마카로 바꾸고, 생각 없이 베껴 적게끔 노래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혹자는 나에게 물었다."안움직이는 손으로 시도하는거 지치지 않아요?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냥 왼손으로 쓰고 말아요. 충분히  그정도 능력은 되는 분인데도 그냥 멀쩡한 손부터 나간다니까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이렇게 멈추는게 정신적으로 더 지쳐요.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일종의 용기일 건데, 사실 저는 용기가 없는 겁쟁이라서 하는거에요. 뭐라도 안하면 무너질까봐."


 '될 때까지 하면 무조건 되는거니까~'

 평소에 자주 하던 말이었다. 내가 이런 상황에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 말이 무슨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내내 붙잡고 있었다.



미디어를 전공한 동생이 만들어준 영상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린다.

 글씨를 쓰는게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던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항상 써왔던 것이 글자인데. 상지의 근육들이 복합동작을 수행해야만 가능했던 것인걸 몰랐다.

 힘줘 누를 수 없으니 얼굴은 오만상인데 획하나 긋지도 못한다. 물을 한바가지를 쏟아부어도 구멍이 바늘구멍이니 통과하는건 극히 일부다. 짜증을 내며 몇번이고 펜을 던졌다가도, 욕지기를 사리물며 다시 시작했다.

 순전히 오기였다.





나의 손글씨 아카이브


팔꿈치위치, 손목각도, 책상 높이, 펜, 종이에 따라 글씨 쓰는 퀄리티가 엄청 달라진다. 아래 적은 것은 뒤로 갈수록 고난이도
1. 보드마카-얇은 수성펜-볼펜
2. 얇은스프링종합장-두꺼운스프링종합장-그냥 공책
보드마카
(왼)수성펜, (오)볼펜
노트에 볼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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