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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네 Oct 27. 2024

16-1. 이 구역의 미친 X을 '지향'합니다.

장애인으로 살아가기(날 세우기)


 나는 태어나기로 조금 얌전한 사람이다. 큰소리 나는 걸 싫어하고, 그렇게 쉽게 화가 나지도 않는다. 몇 번의 연애에도 다퉈본 적이 잘 없다. 있긴 있었나? 기억나는 게 없다.


 그런데 사실, 장애인으로 살아가려면 '고슴도치'가 되어 온몸에 가시를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가 겪은 두 가지 정도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2021년 4월 29일

 병원이 상가 건물에 있는지라, 상가 엘리베이터를 같이 쓴다.
 이 건물엔 학원도 많은데, 내가 엘베를 탄 시간이 딱 학원차 도착하는 시간과 겹쳤나보다. 1층 도착하고 사람이 내릴 새도 없이 와글와글 떠들며 쏟아져 들어오는 어린이들. 키가 내 가슴께나 올까. 초등학생정도 되어 보인다. 이리밀치고 저리밀치고,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가기는커녕 자칫하면 중심을 잃고 넘어질 것 같았다.


  "아!!!!! 진짜!!!!!!!!!!!!!!"

 복압도 약한데 완전 복식발성. 순간적으로 크게 소리쳐버렸다. 예고 없이 튀어나온 짜증에 잠시 찾아온 정적. 애들은 그대로 멈칫 굳어버렸다.
 '엘리베이터에선 사람이 내리고 타야지. 집에서 안 배웠니?'
 제정신을 차렸다면 이런 훈계를 한마디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큰소리를 쳤다는 사실에 내 자신이 놀란 나머지, 벙져서 말없이 걸어나왔다.

 아픈만큼 성숙한다고 누가 그랬는지.. 느는건 피해의식이고 마음은 되려 좁아지는 것 같다.
 이후 걸어가면서 생각을 정리컨대, 장애인으로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의 성깔은 좀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점잖게 타일렀다면 한 단어 뱉기도 전에 넘어졌을지도. 욕을 먹건 뭐하건 넘어져서 다치는 일은 피해야 할 것 아닌가.

 안다. 장애가 있지 않았다면 그냥 헤쳐 지나가며 '어휴, 자식들.. 귀엽네' 하고 말았을 거라는걸. 그 아이들도 내가 장애인이라는건 미처 몰랐을거라는걸.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과민반응하는 것도 어쩌면 피해의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지 않은 사람도 잘못하면 넘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장애인이라서 그렇다는 생각에 살짝이지만 괴로워했다.




2023년 10월 7일


 장거리 운전은 하지 않는다.
 한 자세로 오래 앉아있으면 허리에 무리가 가고, 속도가 높아지면 코어 힘이 딸려 오른쪽 팔다리가 굳어지기 때문이다. 운전은 왼손, 왼발로 하긴 하지만 혹여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까 싶어 피하고 있다.
 무엇보다 엄마가 굉장히, 너무 싫어하신다. 어떻게 살린 목숨인데 위험하게 그러냐고.

 멀리 갈 일이 있었고, 그래서 지하철을 탔다.

 지팡이는 소지하지 않았다. 솔직히 지팡이 갖고 다니는 것 많이 불편하다. 나는 오른손도 못쓰기 때문에, 왼손으로 지팡이를 쥐면 다리는 세 개가 되지만 손이 0개가 된다. 그래서 동행인이 있을 때는 지팡이를 떼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주말의 분당선. 앉을자리가 없어 처음엔 서있었다. 좌석 양쪽의 고정바?도 사람들로 차있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벽에 기대서 있는 힘껏 중심을 잡아보려 했으나, 쉽지는 않았다. 출발과 정차할 때마다 흔들리는 열차에 동행인이 넘어질뻔한 걸 잡아줘야 하는 일이 있었고, 마침 노약자석에 자리가 나서 그냥 앉았다.

 다음역에 타신 중년 여성. 대놓고 중얼거림(나 들으라고 하는 것이 분명한)이 시작되었다.
 "젊은 사람이... 어쩌고저쩌고"
 "노인석에 앉아서... 어쩌고저쩌고"

 나는 당당하다. 저분 흔들리는 전동차 안에서 걷고 중심 잡고 다 하지 않는가. 나는 못해서 여기 앉아있는 거다. 내가 앉아있으면 멀쩡해 보여서, 몰라서 그러는 거야.
 몇 정거장 가는 동안 계속되었지만, 참을 인자를 새기며 안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네번째 들었나, 다섯번째인가. 결국은 참지 못했다.
 "여기 노인석 아니고 노약자석이에요. 저는 장애인이고요."
 "누가 본인한테 뭐라고 했어요?"
 "아까부터 계속 말씀하시잖아요. 죄송하네요. 저한테 말씀하시는 줄 제가 오해했네요!"

 그 이후로는 아주 조용하게 왔다.

 도착해서 내가 뒤뚱뒤뚱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고 뒤에서 그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근데 나는 또 그 모습을 보이는게 왜 속상하냐..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다. 알려주지 않으면 모른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자세한 사정은 안들리니까, 안보이니까.

 젊잖은  글과 말로써 모든게 설명되면 좋으련만, 장애인으로 몇년 살아보니 잠깐의 시간으로는 내 서사를 남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직관적'인 표현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구역의 '곱게 미친년' 정도는 되어보기로 했다. 일정 부분 요구도 하고, 부당하다고 생각이 들면 싸우고 화도 내겠다.

 나는 내 삶을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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