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가에 등록된 뇌병변 장애인이고, 이건 팩트 그 자체다. 복지카드도 발급받았다.(그닥 쓸모는 없다.)
그런데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은가보다. 내가 이런 표현을 언급하면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어떤 이는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해." 하고 말하고, 어떤 이는 "이정도임에 감사해." 하고 말한다. 누군가는 내가 자기 비하를 한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애써 위로를 건넨다.
'장애인'이라는 단어는 내 현재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 미래에 대한 비관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냥.. 그뿐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나는 종종 의도치 않은 돌에 맞은 개구리가 된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서울에서 취직해서 일 잘하고 있는데 몇년째 솔로라는 선배. 회사사람들이 '장애인이냐.'라고 놀렸단다.
'장애'를 국어사전에서 검색해 보면 두번째 의미에 이렇게 적혀있다.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 '장애'라는 의미 자체에 '결함'이 있는데 부정적으로 쓰이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싶으면서도, 그 쓰임이 너무 포괄적으로 부정적이라 가끔 발끈하게 된다. 초등학생 때 흔히 놀리는 표현이었던 '장애인아!'가 얼마나 가슴 아픈 말이었는지.. 진짜 장애인이 되어보니 알겠다.
인트라넷게시판에 장애인 관련 글이 올라왔다. 회사의 장애인 고용률이 저조하다는 글이었다. 익명 댓글 중에 이런게 있었다.
장애인.. 솔직히 경험에 따르면 별로 상종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릴적 친구나 커서 친구 중에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항상 끝이 좋지 않더라구요. 너무 배려받는걸 당연하게 여기다보니 감사함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제가 만나본 장애가 있는 친구들의 성향이 다 비슷하다보니... 이제는 그다지 상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드네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자기가 원해서 장애인이 된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왜 죽지 않고 이렇게 되었나 하늘을 원망하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요. 가뜩이나 억울한데 이런 편견 가득한 시선의 돌 맞는거 저도 굉장히 불편한데요. 저도 별로인지 한번 만나보시겠어요? 특권소리는 듣기 싫으니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제가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실명까고 이렇게 댓글을 달까 잠시 생각했다.
이틀 정도 지난 글이었고, 반박 댓글이 이미 여러 개 달렸다.
그래, 말자.
돌 맞은 곳에는 굳은살이 박여간다.
또 다른 시선; 이해와 연민
장애의 종류가 생각보다 많다. 지체장애, 정신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뇌병변장애 등등등.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는 15가지로 분류된다고 한다.
이것도 행정상, 학문상 구분의 편의를 위해 범주화 시켜놓았을 뿐 세상에는 장애인 수만큼의 장애가 있다. 저마다 다르다는 소리이다. 뇌출혈로 인한 뇌병변장애만 예를 들어도 그렇다. 혈관이 터진 부위, 피가 흘러내려 영향을 받은 부위들이 각기 다른데 완전히 똑같은 케이스가 있을 리가.
솔직히 말하면 나도 다른 장애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나자신조차도 이걸 왜 못하는지 이해 못 하겠는걸. 남들의 이해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해한다'는 표현을 할 때 굉장히 조심하게 된다. 그저 '인정'할 뿐.
그래? 너는 이걸 못하는구나. 난 저걸 못해. 그냥 그렇구나.
몇년 전 핫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나도 재밌게 봤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 암기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해-읽었던 책은 전부 다 기억한다- 변호사가 되었다는 설정이다. 1화 중간 부분에 '우영우'가 이렇게 말하는 부분이 있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에게 변론할 변호사를 선정할 때) 피고인의 사정이 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아닌가요? 사정이 딱해 보이기로는 '장애'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고요."
나도 다소 인정하는 부분이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연민'을 분리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다. '딱하다'는 시선 뒤에 오는 것은 대개는 '도움'이다. 한때 동정받기를 거부했으나 나는 타인의 직접적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연민을 두려워하거나 기피해서는 안 된다.. 장애인이 된 지 6년, 지금까지의 내 마음가짐이다.
그럼에도 이 시선 뒤에 숨겨져있는 것이 연민인지, 호의인지, 혹여나 혐오 비슷한 것은 아닐지 가늠이 안되어, 시선들 앞에 나를 내어놓는 것을 때로는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