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종종, '그 날' 죽지 못했던 내 운명을 안타까워했다. 언젠가 우울증이 심하던 때, 직장 선배의 안부전화에 '그 때 죽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살고있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킥 각인데.. 그 때 나는 한없이 진지했다. (그 점이 더욱 이불을 차게 만든다.)
지금에야 내가 이렇게 많이 회복되었고, 회복되고 있고, 복직해서 경제활동도 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보장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복직은 커녕 평생 남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이 될까봐 두려웠다. 독립심 강한 나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삶의 방식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생각해도 살아있는 자체가 감사했던 적은 많지 않다. 일상 속 소소한 기쁜 일이 감사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순간이 종종 있는데, 가장 감사히 느끼는 순간들을 꼽자면 단연 '효도할 때' 이다.
부모님의 웃는 얼굴을 볼 때 살아있길 잘했다는 확신을 강하게 느낀다. 축하받아 마땅할 당신들의 생일날, 나의 부재에 사무쳐 가슴을 치며 보내진 않았을까 싶어서. 아니 분명히 그럴 것이어서.
이모가 언젠가 엄마에게 그러셨단다. "다영이가 지금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나는 정말 감사해. 만약 잘못됐으면 너 몰골이 어땠을지.."
중학교 1학년 도덕시간, 선생님이 한자 '효도 효'자에 대해 말씀하셨다. '흙 토' 밑에 '아들 자'를 그리시고는 부정하듯 강하게 그 사이를 내리 그으며, '자식이 먼저 땅에 묻히지 않는 것' 그게 '효'라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게 부모님이니 부모님께 잘 하라고.
스물일곱 뇌출혈, 그 후 우측 편마비 장애. 정신차려보니 중증장애인이었던 나는, 장애가 생기고 난 뒤 이상한 습성이 생겼다. 사람들의 불행의 크기를 가늠해보는 것. 그리고 뒤이어 내 불운과 비교한다. 누가 더 불행할까, 누가 더 슬플까, 저 사람은 나랑 바꾸자고 하면 바꿀까? 부질없는 질문.
그런 내가 감히 엄두도 못내는 슬픔이 있다. 소중한 사람과의 때아닌 이별.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고 이 헤어짐을 피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러할, 가까운 이와의 영원한 작별. 남겨진 이의 공허. 이것은 영혼 일부의 상실과 같아서, 신체 반쪽을 못쓰게 된 상실과는 다른 류의 것이리라. 그래서 감히, 무엇과 비교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