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나는 정말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아니, 저승이 꽃밭일지 어떻게 알아. 아무도 안가봤잖아.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갔더니 너무 좋아서 안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르잖아.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 기록된다. 속담 또한 여러 세대를 거쳐온 인류의 역사.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도 결국 승리자에 의한 말이 아니었을까. 나아진단 가능성을 믿고 버티어낸 자들의 기록.
저승이 꽃밭이더라도 개똥밭 이승이 더 나은 이유는 아직 엔딩을 안봤기 때문. '희망'이라는 단어로도 치환할 수 있을 그 '가능성' 때문이라면 이승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요새 그런 생각이 조금씩 든다.
그러니 나도 버티어보련다. 인생사 운과 타이밍이 90% 이상인 것 같기는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은 내 자부심이다. 느긋한 성격은 아닌지라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해왔지만, 꼴에 목표는 높아서 될 때까지 만족은 못할 것 같다. 나는 '스톱'을 깨닫기엔 너무 어리다. '못먹어도 고'다!
발병 1년쯤 되었나, 어느 이름모를 환자가 '4년정도 되니 예전에 마비 왔던 게 거의 모를 만큼 좋아져서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에이, 너무 오래 걸린다~ 난 2년 안에 끝내야지." 장난스레 말했지만, 마음처럼 빨리 호전되지 않는 몸에 매 순간 초조했고 그만큼 좌절했습니다. 4년이라는 숫자가 너무 아득히 오랜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나이 스물일곱, 스물여덟. 젊음의 가치를 느끼고 누리기 시작하던 시기. 하루하루를 살면서도 매 순간 시간 가는 게 아까웠고, 그만큼 소중했으니까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못하게 된 지금, 내 삶은 스물일곱 11월 27일 거기서 멈췄다고 여겼습니다.
'돌이키는건 불가능하겠구나.' 직감했을 때부터 참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품었던 작은 야망과 소소한 욕심은 날카로운 상처와 집채만 한 상실의 파도로 되돌아왔습니다. 그 파도 앞에서 저는 속수무책으로 부서졌습니다. 빼앗긴 사람은 있는데 앗아간 자는 누구인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의미 없는 물음이 끊임없이 떠올라 그 속에서 허우적댔습니다. 어느 순간 우울증약으로는 눈물을 멈추는게 불가능했습니다. 이유를 특정할 수 없는 우울은 약이 금방 고쳐줬지만, 이유가 있는 눈물은 약으로는 고칠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눈물이 나면 울었습니다. 슬퍼했고, 아까워했고, 비통해했습니다. 더 이상 눈물이 안나올 때까지.
발병한 지 5년도 더 되었지만, 아직 뒤뚱뒤뚱 걸어다닐 뿐, 뛰지도, 손가락을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저는 아직도 신체 기능의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발병 2년정도 지나면 회복이 멈춘다고 하던데, 저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제 못썼던 근육을 오늘 쓰게 되기도 합니다.
예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삶으로 돌아왔지만, 최근 몇년간을 돌아보면인생 시계가 다시 움직인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비로소 인생을 다시 살기 시작했습니다. 스물일곱에 멈춰버린 제 인생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딴게 기적이라니. 너무 과대평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적이라하면 당사자가 가장 감사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저는 살아있음이 그닥 감사하지 않았으니까요.
여전히 기적이라고 평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이유는 다릅니다. 지금의 제 상태를 기적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의 의지와 노력입니다. 저를 담당했던 많은 치료사들의 고민과 실력입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응원과 배려입니다. 어느 하나가 빠져도 불가능했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도 때때로 슬퍼하고, 자주 불안하고, 항상 불편합니다.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