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팔, 다리를 비롯해 손가락, 발가락은 물론이고 오른쪽 몸통까지 모든 근육 전반에 마비가 있다. 휴직을 종료하고 복직을 가정했을 때, '못 할 이유'들이 너무 많았다.
통근버스를 타지도 못하고, 사업장의 많은 언덕배기를 오르내리지도 못한다. 우여곡절 끝에 사무실에 앉은들 오래 앉아있으면 허리가 아프고, 타자를 치지도 못한다.사무직인데 한 손으로 독수리타법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세개 이상 자판을 누르는 단축키도 어려울 것이었다.
나는 근무 도중 뇌출혈이 발생해, 그날부로 휴직처리되었다. 빨리 내 자리로 돌아와서식어버린 웰컴티를 마저 마시고, 늦게나마 호텔객실로 돌아가고 싶었다.
복직하지 못하면?
돈은 어떻게 벌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
그 이후의 선택지는 마련하지 못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복직해야 했다. 복직할만큼 몸상태를 끌어올려야 했다.
2년동안 정말 많이 노력했다. 그것말고는 방법이 없는 마냥, 뒷걸음질 치면 낭떠러지인 양 초조한 나날들이었다.그렇게 했는데도 좋아진건 휠체어 뗀 게 고작인데, 남은 2달여 동안 갑자기 손가락이 움직일리 만무했다.
인정해야 했다.
예전으로 당장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선택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재활운동과 병행을 위해 단축근무를 신청했다. 그리고 다른 보조도구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장애인용 개조차
예전에는 통근버스로 출퇴근을 했었는데, 보행장애 때문에 넘어져 다칠 위험이 너무 큰 버스는 타지 않는다. 그렇다고 매번 보호자와 동행하기도 어려우니, 장애인용 개조차를 구입했다.(아프기 전 가입해둔 건강보험에서 나온 진단비가 빛을 발했다.)
악셀이 왼쪽에 하나 더 달렸다. 왼쪽 악셀을 누르면 오른쪽 악셀이 눌린다.
개조를 한 왼쪽 악셀도 엄밀히 말하면 제대로 왼쪽은 아니고, 기어변속도 왼손으로 오른쪽에 있는 기어를 조작해야해서 오래 운전하면 허리가 몹시 아프다.
자동차를 등록하러 주민센터에 갔다.
우리 동네 주민센터의 장애인 공무원 선생님. 나보다 10살 미만으로 많으실려나. 생후 100일 무렵에 뇌성마비로 뇌병변장애인이 되셨다고 했다. 양상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오른쪽 편마비이다.
"제가 운전 배울 적엔 이런 개조라는 게 없어서 왼발로 오른쪽 악셀을 조작했어요."
개조된 차도 불편한데 왼발로 오른쪽 악셀을 밟으면 운전이 가능한건가? 불과 십년 사이에 이런게 생긴거면 이전에는 장애인들 어떻게 사회활동했을까? 또 앞으로는 어떤게 더 좋아질까? 생각을 잠시 했다.
한 손 키보드
복직을 하려면 사무직이니까 컴퓨터를 쓸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오른손 손가락을 전혀 못 움직이므로 일반 키보드는 쓸 수 없다. 속도도 안나거니와, 멀리 떨어진 자판들을 동시에 누르는 것도 불가하다. 회사에서 볼펜을 입에 물고 누르는 건 최후의 보루 아닌가. 고민하던 차에 장애인 보조도구 중 한 손 키보드라는게 있다는 걸 발견했다.
초등학생 때 컴퓨터실에 있던 키보드 퀄리티밖에 안되는게 오질라게 비싸다.. 고용주가 장애인고용공단에 신청하면 받을 수 있다.
복직 전에 미리 받아서 시험을 해봤다. 키보드 자판배열이 보편적인 그것과 아예 다르다. 한컴타자연습으로 속도를 재봤다. 40타 실화니..
그래도 컨트롤, 알트 따위도 한번 누르는 것으로 고정되고, 자음 모음 이동할 때 손을 많이 안움직여도 되니 훨씬 빠르다. 일반키보드로는 아예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해진다.
이 두가지가 복직을 가능하게 해 준 두가지 요소.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귀가 가능했던 1대장은 직장 동료들이라 하겠다.
발병하고 내 주위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변하고 사라졌지만, '사람'만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2022년 6월 29일
오늘도 나 12시 반쯤 단축근무하고 퇴근하는 길, YE와 엘리베이터까지 이어지는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배웅받고 헤어졌다.
복직 전 얼마나 많은 우려와 함께 시작했던가. 일은 잘 할 수 있을지, 단축근무가 주변에 폐가 되진 않을지, 이동 중 다치진 않을지, 사람들 시선은 어떠할지, 따위와 같은 것들. 어려움이 없었던건 아니었겠지만, 그런대로 평온하게 직장생활에 안착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사람'덕분이다.
내 휴직 연장, 복직을 챙겨주고 나를 동기가 많은 파트에 배치될 수 있도록 힘써준 SH님, 내가 단축근무하느라 발생하는 공백을 커버해주는 YE이, HS오빠. 오며가며 말 걸고 챙겨주는 IS언니, JI오빠. 내가 봉지 못 뜯어서 낑낑대고 있으면 뒤에서 슬쩍 다가와서 도와주는 KR언니. 만년 동생을 귀여워해주시는 '직무스트레스 개선' 메신저방 선배님들. 이외에도 오며가며 마주칠 때마다 더 좋아졌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 센터장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 무슨 연말 시상식 소감같이 되어버렸지만, 정말로 그렇다. 가끔 '네가 잘해서 그래.'라며 좋은 말씀 해주시는 분들이 있지만, 내가 베푼 것 대비 훨씬 받은게 많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건 '복'이다.
걱정과는 달리 출근해서 동료들과 직장생활하는 자체로도 내게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라는 느낌을 준다. 오랜 병원생활로 일상의 파괴가 일상이 되어버렸던지라 더욱 그럴지도. 만사에 '감사'를 대입하는건 내 스타일이 아니긴 한데, 참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