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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네 Oct 26. 2024

11. 언택트(untact) 하객의 축사.avi

그래도 할 건 다 해야지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3년간 기숙사에서,
대학교 4년간 충북학사에서, 무려 7년간을 같은 건물에서 살았던 친구다.
 수험생활 중 힘든 일이 있을 때면 함께 울고 토닥여주었고, 학사 앞 꼬치 호프에서 소주잔을 부딪히곤 했다.

 대학 가서 화장을 처음 가르쳐준 것도 너였고, 첫 해외여행이라 버벅거리는 나를 데리고 다녔던 것도 너였네.

 그 밖에도 인생 처음으로 해보는 것들을 많이 공유했었는데.


 스무살, 지금 남자친구와 사귀기 시작할 때부터
네 축가는 내가 불러주겠다고 약속했었는데.
뇌출혈 이후 음치가 되어버려 끝내 축가를 거절했을 때,
십년은 된 약속인데 지키지 못한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쉽진 않더라.



 사실 몇 번 울었어.

 네가 내 노래 좋아했는데. 나도 내 노래가 좋았는데.

 네 결혼식 축가 약속은 10년도 전부터 해왔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몸만 장애인이 된 게 아니라 음치가 되어서. 

 축가대신 축사라도 하려는데 재활병원은 외출을 허락하지 않아, 오랜 친구 결혼식도 못 가는 내 처지가 서러워서.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내가 겪고 있는 이 병이, 장애가 한없이 원망러워서.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가 안되면 축하의 메시지라도 하려는데 코로나로 병원에서의 외출이 금지된 지도 6개월이다. 게다가 군중이 모이는 결혼식장.. 허용해 줄 리 없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방법을 찾아봐야지.

 잇몸도 성치 않으면 턱근육이라도 써야지 싶어 축사영상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축사  준비를 시작했다.


 영상을 찍으려고 화장도 했다.
 휴직 끝나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어 왼손으로 화장연습을 하기 시작한 참이다. 이젠 왼손으로도 제법 그럴듯하게 아이라인을 그릴 수 있다. 나중에 오른손 돌아오고 나면 화장도 양손, 젓가락질도 양손으로 할 수 있겠다. 따위의 장난스러운 생각도 조금 했던 것 같다.



 주말 점심시간, 아무도 없는 치료실에서 그나마 하얗고 깨끗한 벽을 찾는다. 맞은편에 카메라를 켜놓고 동생은 옆에서 대본을 들고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의 신부 YS의 12년 지기 친구 이다영입니다. 두 사람의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한데요. 먼저 코로나19로 제한된 와중에도 참석해 주신 귀빈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요. 코로나19로 외출이 금지되었습니다. 오랜 친구의 결혼식조차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제가 해주고 싶은 욕심에 이렇게 영상으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발병초기, 좌뇌를 다쳤는지라 언어장애도 있었다.
특히 그냥 대화하는 것보다 글자를 읽는 것이 더 어려웠는데,
발병 8~9개월 차만 해도 신문읽기따위를 연습하곤 했다.
이젠 대본을 옆에 두고 보고 읽는데도 별 어려움이 없다. 이만하면 더듬거리지도 않는 것 같다.
누가 지금 내 모습을 보고 언어장애가 있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어? 조만간 몸도 그렇게 될거야.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결혼식 당일. 동생을 특사로 보내고 나는 인스타 라이브 방송을 통해 결혼식을 지켜봤다. 이름하야 언택트 하객이다.

*언택트(Untact) :  비대면, 비접촉. 접촉을 뜻하는 콘택트(contact)에 반대를 뜻하는 언(un)을 붙인 신조어



 신부대기실 중계를 한 뒤 한참을 기다려도 식장에 안 들어간다.

'뭐야? 무슨 일 있어?'

'홀 입장인원 50명이 꽉 차서 못 들어간대. 스크린 설치된 옆방에서 보라는데..?'


 코로나가 한창 창궐할 적에 결혼한 내 친구의 하객 입장 제한인원은 50명이었다. 동생이 밖에 있는 동안 홀이 꽉 차서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스크린으로 지켜봤다.

 그러니까, 결혼식을 왔는데 식은 집합금지 인원제한 때문에 못 들어가고 옆 방에서 프로젝터로 중계되는 결혼식을 내 동생이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서 인스타 라방으로 공유를... 복잡하다 x.x



 축사 영상 재생되는데 친구가 자꾸 얼굴을 닦는다.

야, 너 울어? 너 당일에 처음 보면 울 것 같다고 며칠 전에 받아다 보고 미리 울었잖아ㅋㅋㅋ 슬픔기 쏙 빼고 담백하게 준비했는데..!

 나는 이미 울만큼 울어서 그런지, 영상의 영상으로 봐서 그런지, 눈물이 나지는 않았어. 그저 먼 곳에서나마 너희들을 축복했다.


 우리네 사는 동안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참 다시 못할, 하고 싶지도 않은 경험임은 분명하다.



"우리 고등학교 2학년 때 한참 신종플루 유행할 적에, 여자 사생 48명 중 무증상자 7명만 기숙사에 남아있었잖아.(2009_생존자들.jpg)
 그때는 그것도 엄청 큰 일이었는데 지금 같은 코로나 사태가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지?

아마 앞으로도 이와 같이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두 사람이 함께 이겨내고 더욱 행복해질거라 믿어.
사랑하는 친구야. 결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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