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로 입원한 병원(첫번째 병원 재입원)은 입원기간이 6개월이다. 6개월동안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다 보면 정이들고 친해지게 마련이다. 몇 안되는 젊은 환자들은 틈만 나면 뭉쳤다. 그맘때 으레 했어야할 사회생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함이다. 사고로 인한 척수손상, 선천성 혈관기형, 뇌종양, 심장천공, 원인불명까지..
사례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자기 잘못이랄게 별로 없다는 정도일까.
스물일곱 그 날 이후로 시간이 멈췄다고 말했지만, 야속하게도 계절은 계속 바뀌어 어느덧 다시 겨울이다. 환자들끼리 조촐하게 송년회를 하자고 치킨이며 케이크도 준비했다.그 중 누군가가 케이크에 꽂은 초를 이리저리 꺾어놓기 시작했다.
"요새 밖에선 이렇게 하는게 유행이래."
"그래? 우리도 뒤쳐질 순 없지."
저마다 앞에 꽂힌 초를 꺾은 후 불을 붙였다.
촛불 앞에 잠시 소원을 생각했다.
'내년에는 이 빌어먹을 병원에서 나가게 해주세요.' 하고 빌었던가.
요양병원에도 사람들이 살고있다.
그동안 병원을 두번 옮겼다. 코로나로 인한 병원폐쇄는 여전하다. 덕분에 재활치료가 없는 저녁시간이나 주말이면, 나가지도 못하고 정말이지 무료해 미칠것같다. 계속 재활삼아 무언가를 꼼지락대고 있었지만, 스물아홉살의 공허함은 여전했다.
맞은편 강씨 할머니의 간병인으로 일하는 조선족 여사님은 중국식 옥수수면과 팔도양념장으로 비빔면을 정말이지 기깔나게 하신다. 휴일이면 방 식구들이랑 같이 먹었는데 이게 또 별미다. 맛없는 병원밥을 대충 먹고 내 몫의 비빔면 배급을 기다린다. 다들 나눠먹는 것이니 더달라고는 양심상 못하겠고, 면을 잡는 여사님의 손바닥이 좀 더 벌어지기를 내심 고대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주어지는 푸짐한 면사발.
대각선 침대 할머님의 딸, 은주언니는 콩나물같은 나물반찬을 곧잘 무쳐서 나눠주신다. 주방이라고 부르지도 못할 것같은 탕비실의 간소한 조리설비들로 어떻게 이런 요리들을 만드시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가끔 저녁에 국가대표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병실 한 침대에 모여 치(무알콜)맥도 했다.참고로 내 경험상 논알콜 맥주중에 칭따오가 제일 흡사했다.(ㅋㅋ) 병원에 칭따오 논알콜 짝으로 시켜드시는 분께 가끔 얻어먹었다.
이러나저러나해도 진짜 생맥주가 최고다-_-b
B병원 703호 6인실
80대
80대
70대
60대
60대
20대
평균연령 약 65세(20대가 많이 깎아먹음)
한 병실에서 오래 있다보니 같은 병실의 '룸메 언니들'과도 친분이 많이 생겼다. 병원은 거의 8시반이면 소등하는데, 할머님들이 잠에 드시고 나면 종종 남아있는 언니들(보호자 포함)과 한 침대에 모여 야식을 시켜먹곤 했다.다른 분들 깰세라 불끄고 침대 머리맡 개인등에 의존하여 소곤소곤. 가끔은 인생상담소가 열리기도 한다. 주된 내담자는 나였다.
2021.3.18
요새 내가 이래저래 좀 싱숭생숭한 것이, 봄을 타나 싶다. 병실을 같이 쓰는 식구들이랑 야식을 먹었다. "언니들, 저 봄타나봐요.. 발병하고 3번째 맞는 봄인데, 직전 두번의 봄은 그런걸 느낄 겨를도, 여유도 없었거든요? 근데 이제 좀 살만 한가봐요. 봄을 타는 것같아요. 예전에 건강할 땐 이런저런 방법으로 해소하면 됐는데, 병원에 갇혀있으니 어찌해얄지 잘 모르겠고, 그래서 약간 우울? 혼란스럽기도 하고.."
다영아, 앞으로 살면서 이만큼 큰 일 또 겪기 쉽지 않다. 너무 젊은 나이에 이런 병에 걸려서 괴롭겠지만, 이거 잘 견뎌내면 어지간한 일은 문제로도 안보일거야. (중략) 내년 봄엔 멋진 사람이랑 보내자ㅋㅋ
분명한 것은,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는 것. 병실에도 어김없이 시간은 흐른다는 것. 나의 세상이 붕괴된 것 같았어도희노애락이 존재했다.
병원에 입원해 학교를 장기간 못가 자퇴처리되어도, 택시기사가 택시 운행을 못해 생계가 멈추어도, 백일된 핏덩이 아들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올수밖에 없었어도.
전염병으로 병원이 폐쇄되건 말건, 어김없이 벚꽃이 지고 단풍이 물든다. 이윽고 첫눈이 내린다. 그리고 다시 새싹이 움튼다. 모두에게 공평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