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야 할 내 인생이라서, 대충 되는대로 살고 싶진 않아서,나 자신에게 당당하고 싶어서.
그냥 다른 걱정 없이 열심히만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내 몸을 기다릴 수 있는데, 세상은 자꾸 나를 재촉한다.
그런거겠지, 마냥 미루기만 하는 건 방법이 아닐 건데.
알긴 아는데.
'저는 오늘만 살아요!' 장난스레 말하긴 하지만, 미뤄둔 내일의 문제들에 마음이 무거운 오늘이다.
2021년 4월 23일, 879일째.
옆침대에 환자가 새로 입원했다. 같이 온 중국인 간병사님, 내가 혼자 하기 힘든 것들을 먼저 도와주시고 언제든지 도와줄 거 얘기하라고 하시는 좋은 분. 아무래도 젊은 사람이 이러고 있는걸 보니 마음도 쓰이고 궁금한게 많아보이신다. 호의에 화답하고자 내가 먼저 간략히 알려드렸다. 문답이 오갔고, 정리하자면 이러하다.
"출근해서 일하는 중에 뇌출혈로 실려왔어요. 당시엔 심각해서 의사가 수술 중에 나와갖고 어찌될지 알 수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했대요. 그래도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며칠있다 눈을 떴죠. 처음엔 인지도 불명확하고, 말도 못하고, 허리 세워 앉는 것조차 불가능했었는데, 서서히 다 돌아왔어요. 제가 주로 다친 부위가 운동영역이래요. 시간이 좀 걸릴거라는건 부정할 수 없죠. 당장 내일 돌아올거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언어나 인지 돌아왔듯 될거라고 생각해요. 2년 반이 됐는데도 전에는 못 느꼈던 감각이 생기거나, 그 감각을 이용해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게 가능해지고 있거든요. 저는 젊고, 남은 날이 많으니까, 될 때까지 할거구요."
나는 마음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도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내 상태에 대해 얘기할 때 신경쓰는 것들이 있다.
하나, 회복 가능성에 대해 확신을 갖고 말할 것. 확신의 근거를 댈 것. 둘, 그를 실현할 의지를 강하게 내비칠 것. 청자로 하여금 얘라면 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매 순간 의심하고 불안하더라도, 가끔은 숨기기 힘들어 새어 나오더라도 최대한 담담하게.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인건 사실이니까. 다행이라 생각하지 않더라도, 다행은 다행이니까.
"8월엔 복직을 해야 해서요. 다음달쯤 퇴원해서 일상생활 연습 좀 할까해요."
"진짜?! 이러고 일을 어떻게 해?"
"(한숨)그러게요. 근데 휴직도 다 쓰고 더이상 미룰 수가 없어요. 산 입에 거미줄 칠 수는 없잖아요. 벌어먹고 살아야죠.치료비 감당을 위해서라도 수입은 필요하니까요."
20201010 병원복도, 최대한 예쁘고 바른 자세로 걸으려 노력한 것이다
요새 발목과 무릎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 부쩍 걷는게 예뻐졌다. 걸을 때 예전보다 훨씬 발을 덜 끌고, 발목 들림 안나오는 것 빼면 무릎 관절 구부러지며 나오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치료부장님 피셜)
비교해보면 진짜 많이 좋아졌는데. 인간은 욕심의 동물인지라, 좋아진 것보단 부족한 부분이 자꾸 보인다. 오른쪽 몸통 무너지는거, 오른다리랑 몸통 분리 덜된거, 오른팔 살짝 구부러진 채로 올라가있는거..
퇴원과 복직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조급하고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걷는 것만 좀 더 안전해지더라도 출퇴근은 할 수 있을텐데. 밖에 나가면 평지 아닌 곳이 많은데 발목이 좀 더 좋아진다면. 아니, 손도 좀 써야 하지. 식판이라도 들 수 있어야 회사에서 밥을 먹을 것 아닌가. 뭐 맨날 빵만 먹어야 하나...
말이 좋아 '남들한테 부탁하면 되지.'다. 해 줄 사람이 없으면 멀뚱멀뚱 기다리고만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의 편의도 생각해야 한다. 혹여 내 부탁이 난감하진 않을까. 반복되면 지겹지 않을까.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이런 기본적이고 매번 하는 것들정돈 내가 자유롭게 하고 싶은데.
불만은 발전의 원동력이 될거니까, 고칠 목표가 또 생겼다 정도에서 생각은 멈춘다. 더 생각하면 슬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