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족이 생기다
가까운 사무실인 덕에 같이 점심도 먹으며 가까워졌다.
서로 썸을 타던 와중에 베트남의 코로나 봉쇄가 시작됐다.
어느 정도로 심했냐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
회사, 관공서 등 마트를 제외한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었다.
거리에는 경찰들이 배치되었고 나갈 수 있는 건 하루에 한 번 마트에 식료품을 사야 하는 이유 이외에는 나갈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처럼 의료기술이 좋지 않은 베트남이었기에 그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봉쇄령이 시작되기 며칠 전에는 사재기 현상으로 마트에 모든 물건이 동나는 상황까지 생기고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었다.
그래서 나도 식료품을 사들이고 봉쇄에 대비했었다.
문제는 여자친구의 집과 내 집의 거리는 7군과 2군으로 꽤 먼 거리였기 때문에
한동안 만날 수 없게 되는 게 너무 두려웠다.
베트남의 카더라뉴스에는 최소 3개월은 봉쇄가 될 거라고 하면서 우려스러운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었는데
여자친구가 봉쇄되기 하루 전 날
같이 있고 싶다며 우리 집에 들어와 버렸다.
다음 날이 되면 가족들을 한동안 못 볼 수도 있는데 괜찮냐고 하니
널 못 보는 게 더 두렵다고 했다.
그렇게 둘이 동거를 시작하게 됐다.
그때 참 많이 정이 들었다.
그녀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대략 한 4개월 정도 봉쇄령이 지속된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발소를 못 가서 내 머리를 그녀가 가위로 직접 잘라주기도 하고 집에서 틱톡 방송을 켜놓고 놀기도 하고 나름 즐겁게 지냈다.
그녀의 가족은 1남 3녀 중 막내였다.
이미 오빠 언니들은 다 결혼해서 아이도 있었다.
베트남은 혼인을 일찍 하고 아이도 일찍 갖기 때문에 20대 후반만 돼도 여자들은 꽤 많은 나이로 쳐서 부모들이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다.
특히 부모들은 자녀들 결혼시키는 게 자신들의 마지막 몫인 걸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녀 또한 가족들로부터 결혼 압박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같이 살아보니 막내딸 같은 어린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게 귀엽기도 하고 큰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그렇게 봉쇄가 끝나고,, 그녀는 날 가족들에게 데려갔다.
처음 그녀의 가족들을 봤다.
골목의 골목을 지나서 어느 작은 집에 갔더니 딱 내가 사는 집 거실만한 곳에 그녀의 오빠 가족, 부모님들이 살고 있었다.
내가 갔을 때는 그녀의 언니들, 형부들까지 애들까지 모두 와서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정말 대가족이란 게 이런 거구나 느낀 것 같다.
나는 가족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많았는데 이들을 보고 있자니.. 이게 가족이구나 싶었다.
눈도 못 뜨는 아기부터 이제 중학교 올라가는 아이들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모두의 관심을 받은 채로 그녀의 아버지와 형부들, 오빠들과 같이 술을 먹기 시작하는데 작정을 한 모양이다.
나를 취하게 만들어서 어떤 놈인지 알고 싶었겠지
그래 같이 취해보자라는 식으로 참 많이도 먹었던 것 같다.
대화는 잘 안 통해도 즐거운 분위기 속에 그렇게 나의 새 가족들과 첫 만남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