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베트남인이 운영하는 베트남 식당에 갔다. 가족 경영인지 주인도 쉐프도 홀서빙도 모두 베트남인들이었다. 맛있다고 입소문이 나서 나름 유명한 집이었고 그래서 사람이 많았다. 간신히 한 테이블을 차지했고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무심히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이 가득찬 실내는 시끄러웠지만 그건 사실 한 테이블 때문이었다. 내 바로 옆에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 여자 쪽이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야.. 여기 장사 잘되네! 사람들 꽉 찬 것좀 봐..”, “음식이 확실히 맛있네. 장사 잘되는 이유가 있네!”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지 아내가 뭐라 떠들든 아랑곳없이 음식을 먹기만 했고 여자 역시 남편의 무반응에 아랑곳없이 높은 볼륨으로 말을 이어갔다. 음식 평을 넘어 바쁜 홀서빙을 불러 이건 어떻게 먹는것이냐, 재료가 무엇이냐를 질문했고 ’물과 밑반찬은 셀프‘라는 안내가 있음에도 다시 홀서빙을 불러 물과 밑반찬을 가져오라 시켰다.
난 갈등했다. 좀 조용히 하라고 할까. 아니면 거의 다 먹은 거 같은데 참고 기다릴까. 지적을 하게 되면, 제압을 하든 전쟁을 하든 평화로운 식사는 멀어진다. 하지만 그건 지적하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근데 혹시 이거 나만 거슬리는 건가? 다른 테이블들을 보니 이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는다. 순간 괜찮은 논리가 탄생했다. <끝이 예정된 부조리> 아무리 불편해도 곧 끝난다는 확신만 있으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지 않은가. 뒤이어 좀더 깔끔한 논리가 만들어졌다. 대도시에서는 이런 일을 얼마나 슬기롭게 감내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흉기난동도 아니고 뭘 이런 일로 식사를 망치냐. 다들 평온하게 음식을 먹고 있잖아.
주문한 쌀국수와 스프링롤이 나왔다. 내가 이집에서 특히 좋아하는 건 다른집보다 훨씬 크고 속이 알찬 스프링롤이다. 천천히 먹기 시작하는데 다시 옆에서 큰소리가 들린다. “저건 뭐지?, 맛있겠네. 저것도 시켜볼 걸 그랬나?” 물론 남편은 대꾸가 없었고 여자는 남편도 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음식 한번 먹고 내 스프링롤을 쳐다보고를 반복했다.
조금 전 애써 만들었던 평화의 논리가 와르르 초기화됐다. 짜증이 나서 맛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그만 참자. 아무래도 얘기를 해야겠다.
“저기요.”
여자는 놀라 날 빤히 쳐다봤다. 다른 테이블 손님도 날 쳐다봤다.
“이거 한번 드셔보실래요? 양이 많아서..”
잠시 눈을 꿈뻑이던 여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손사래쳤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드세요~!”
나도 지지 않았다. 스프링롤 한 개를 과감히 집어서 내밀었다.
“아니에요. 혼자 먹기엔 진짜 많아요.”
여자는 더 사양하지 않고 내게 접시를 내밀며 방긋 웃었다.
“야유.. 이거 고마워서 어쩌나.. 잘 먹을께요~~”
어떻게 된 일인지 그녀는 이후로 큰소리로 떠들지 않았다. 스프링롤이 맛있네 어쩌네 음식평도 더는 하지 않았다. 맛이 별로였나보다. 어쨌든 난 평화롭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제3의 길‘이란 것에 대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