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후로 오랜만에 만나는 1500페이지 대작소설, 솔직히 처음에 1800페이지라는 것을 봤을 때 실감이 안 났지만, 약 900페이지를 읽었는데도 아직 절반밖에 안 읽었다는 사실을 볼 때 그 충격과 절망은... 말을 하기 너무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재미없거나 어렵거나 지루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서 대작이라고 할 만큼 충분히 책은 재밌었고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실제로 1권 같은 경우는 하루동안 미친 듯이 읽었고 그 후에 2,3권도 1권에 비해서는 속도가 느렸지만 기존에 책들과 비교해서는 굉장히 빨리 읽을 수 있었다.
2) 책의 특징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톨 스토이의 문체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간결하면서도 굉장히 세세한 서술 묘사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서술묘사가 도스토예프스키였는데, 이번에 안나카레니나를 읽고 나는 개인적으로 톨스토이의 문체가 더욱더 마음에 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 이것이 단순히 내용이 어렵다, 뭐 등장인물이 난해하다 이런 느낌이 아니라, 그저 서술방식이 혼란스럽고 횡설수설하는 느낌이 강해서 때때로 그런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책은 그러한 불편함이 책을 읽으면서 없었다. 그냥 내용이 지루한 파트, 예를 들어 브론스키의 우마무스메 파트나 레빈의 스타듀벨리 파트같이 지루한 파트는 있어도, 문장을 읽으면서 도스토예프스키 책처럼 막히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서술이 간결하거나 서술이 적은 것은 또 아니다, 굉장히 복잡한 심리 묘사를 하면서, 사람의 내적 갈등을 잘 표현하는데, 그것을 굉장히 정제된 단어와 필력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할 다름이다.
나르코프나 일반적인 작가들이 톨스토이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3) 책을 읽으면서
책은 전반적으로 2가지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안나카레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 그리고 레빈과 키티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재밌게도 이 두 사랑 모두 그저 일반적인 사랑이랑은 다른 결을 보여준다. 안나카레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불륜이라는 주제로 엮기고 레빈과 키티는 짝사랑과 두 남자 사이에서의 갈등이라는 주제로 책이 진행이 된다.
4-1) 레빈과 키티의 사랑
키티는 브론스키와 레빈 둘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가 처음에는 브론스키를 선택한다. 그러나 그 이후 레빈과 사랑에 빠지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이 책의 전반적인 키티와 레빈의 사랑의 줄거리다. 이 둘의 사랑을 볼 때 관전포인트는 레빈의 감정 변화라고 생각한다.
4-2) 레빈의 감정변화
레빈은 처음에 키티가 갈등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는 모든 행운을 두루 갖춘 경쟁자를 만났을 때 그 즉시 상대방의 장점을 모두 외면하고 단점만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그 행복한 경쟁자에게서 무엇보다 그에게 승리를 안겨 준 장점들을 발견하려 하고 가슴이 저리도록 아픈데도 그에게서 좋은 점만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이러한 생각을 하고 나중에 가서 키티가 브론스키를 좋아할 때는
"그래 그녀가 그를 선택한 것도 당연해 그렇게 되는 게 마땅하지. 나는 그 누구, 그 무었도에 대해서도 불평할 수 없어 잘못은 나 자신에게 있으니깐. 난 도대체 무슨 권리로 그녀가 자신의 삶을 내 삶과 결합시키길 원한다는 말인가?"라고 합리화한다. 개인적으로 짝사랑을 해보다가 실패한 입장에서, 이러한 정당화는 진짜, 너무, 공감 가는 대목이었다.
사랑하는 이가 다른 이를 좋아하는 것을 납득하고 나를 낮추어 생각하는 모습, 개인적으로 고전문학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내가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공감을 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레빈의 전원일기 생활 파트, 개인적으로는 노잼이고 안나카레니나 파트 중에서 가장 노잼인 부분이었지만 잘 보면 어느 정도 나름 숨겨진 게 있는데, 바로 레빈이 키티를 잊기 위한 수단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그는 하루종일 농사를 지으면서 고된 일을 하고 그러면서 키티를 잊으려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물론 이렇게 말하긴 했어도 솔직히 농사파트랑 정치, 투표 이야기는 진짜 굉장히 지루했다... 지금도 머릿속에서 딱히 그 이야기들은 생각이 잘 안 난다.
4-3) 레빈의 형의 죽음, 그리고 이반일리치의 죽음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읽으면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생각났듯이, 안나카레니나의 레빈의 형이 죽는 파트에서는 톨스토이의 또 다른 작품, 이반일리치의 죽음이 떠올랐다."죽음, 모든 것의 피할 수 없는 종말은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띠고서 처음으로 그의 앞에 나타났다. 이 죽음, 잠결에 신음하면서 그저 습관적으로 때로는 하느님을, 때로는 악마를 부르는 것처럼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가 안나 카레니나에서 죽음을 묘사하는 것이라면
이반일리치의 죽음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보인다. 이게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라 어느 부분이 비슷하다고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이반일리치의 죽음의 주제가 죽음인 만큼, 여기서는 좀 더 자세하게 이 내용을 다루지 않나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안나카레니나에서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볍게 다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약 1부에 20~30 챕터정도 있으면 안나카레니나는 8부, 약 200 챕터정도 되는데 유일하게 레빈의 형이 죽는 장면에서만 "죽음"이라는 부제가 있다.
챕터 20의 내용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전에 죽음에 대한 것을 설명하는 것을 좀 보자면,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종말이자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띄고 나타난다고 서술한다. "난 일을 하고 있고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지. 그러나 난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것, 그것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어"라는 것을 보면 결국 죽음이라는 것 앞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생각이 든다.
4-4)그럼 안나카레니나에서의 죽음은?
5부 챕터 20에서 등장하는 죽음은 어떻게 그려질까? 레빈의 형의 죽음의 초반은 천천히.... 병든 병자가 천천히 죽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러다가 그가 점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아무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리는 척을 위해 아등바등 애쓰는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레빈은 그 "거짓"을 가슴 아프게 느낀다는 점이 참 안타깝게 다가왔다.
레빈의 형이 죽을 동안 작가는 레빈의 심리 상태에 포커스를 굉장히 많이 두는데, 그것 이 굉장히 자세하고 심도 있게 다뤄진다. 죽음이라는 것을 이해 못 하지만 결국은 찾아오는 것을 보며 레빈은 큰 고뇌에 빠지고 그 모습을 굉장히 자세하게 서술하나...
아직 죽음이라는 것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크게 와닿거나 기억에 남는 파트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 죽음 다음에는 신비로운 일이 일어나는데 바로 키티의 "임신" 사실이다. 죽임이라는 불가해 한 것이 그의 눈앞에서 실현되고 그다음에 바로 제시되는 것이 임신이라는 생명의 신비라는 것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