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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작정고전소설읽기 Oct 05. 2024

식물, 철사, 안경

11번째 주제

1)

나는 한 달 전부터 갇혀있다, 아니 두 달 전, 아니, 잘 모르겠다.

 좁고 좁은 철창 속. 그것도 한 팔은 철창에 철사로 묶인 채 차갑고 좁은 철창 속에 갇혀있다. 이런 추한 모습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철창 위에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나를 보면서 나에게 괴성을 지르거나 먹을 것을 던지고 심지어 쓰레기들을 던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안 묶여있는 오른손으로 사람들이 던지는 "쓰레기"들을 하나하나 주워 그것을 먹거나 수집하는 것뿐이다. 쓰레기라고 한다면, 다양한 것들을 말한다. 깡통부터해서 오만가지가 날아오고 심할 때는 나를 맞추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너무 더러워졌다 싶을 때마다 사육사가 와 내 우리를 치워주는 것이 반응의 전부이다.

주머니 속에 많은 것을 넣을 수 없어서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맥가이버 칼뿐이다. 예전에, 누군가 실수로 맥가이버 칼을 내 앞에 떨어트렸고 바로 그것을 내 주머니 안에 넣었다. 무언가 탈출할 수 있을 거 같다는 희망이 생기면서 나는  맥가이버를 계속 소지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상상은 말이 안 된다. 손목과 철창이 수백 줄로 묶여있어서 하나하나 자르기라는 것은 불가능했고, 만약 그것을 하나라도 자를 경우 신호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팔을 자르고 탈출하는 것인데, 팔을 자르는 것이 쉽지 않은뿐더러 팔을 자른다고 해도 철창 속을 어떻게 나갈지는 미지수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수용"이다. 그냥 지금 처지에 만족한다는 생각으로...


2)

그러나... 너무 외롭다. 맨날 나에게 쓰레기를 던지는 사람들. 그리고 아무 반응도 없이 그냥 청소만 하고 사라지는 사육사들. 나는 살아있어도 되는 것인가?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돌을 던지고 관심이 없는데 나는 그저 나에게 던져지는 쓰레기 같은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온종일 내 머릿속을 덮친다. 나는 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이길래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나는 너무 괴롭다…

더욱더 외롭게 만드는 것은 “희망“이다. 내가 과거에 뛰어놀면서 놀았으니 언젠가는 그럴 수도 있다는 희망. 저 콘크리트 벽만 넘으면 내가 마음껏 달릴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그곳에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생명이 있을 거라는 희망. 그래! 나는 그러한 생명을 보고 싶다! 나에게 쓰레기를 투척하는 존재가 아닌,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생명, 그것을 보고 싶다는 소망이자 볼 수 있다는 희망.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나에게 고통을 만들고 나를 괴롭게 한다.

(퉁!)

나에게 괴성을 지르던 관중 한 명이 실수로 안경을 흘려서 내 앞에 떨어졌다. 떨어진 충격으로 어느 정도 금이 갔지만 오랜만에 보는 안경이 반가워서 나는 안경을 썼다. 안경으로 보는 세계는 색달랐다 흐릿한 콘크리트 건축물이 선명하게 보이고 나에게 쓰레기를 던지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자세하게 보인다. 저런 사람들이 나에게 돌을 던지고 있었구나. 하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그렇게 돌아보다가 구석에서 다채로운 색을 빛나는 것을 발견한다. 어두컴컴한 철창 속에서 홀로 빛이 나는  다채로운 노란색, 민들레! 그래! 식물이다! 이것이 얼마 만에 보는 생명체인가, 너무 반갑다! 나는 너무 행복하다! 늘 나에게 관심 없는 사람이나 나에게 쓰레기를 던지는 생명체가 아닌, 나를 보며 환하게 인사해 주는 생명체라니! 너무나도 반갑구나!

다가가고 싶지만 철사에 묶인 손이 그것을 가로막는다. 보기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절망하면서 교감이라는 것이 떠오른다. 만지고 싶다. 꽃을 만지고 싶다, 혀로 핥고 싶다, 가까이 다가가서 귀를 대고 식물의 소리를 듣고 싶다 ,  코를 들이밀어서 향기를 맡고 싶다. 그냥 오감을 다 느끼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 교감을 위해서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3)

아침이 되었다. 밤에 하면 아름다운 그 꽃봉오리를 못 본다 아침에, 해가 중천이 돼야지 “작업”을 할 수 있다. 심호흡을 한다. “작업”을 위해서 나는 행동해야 하기에 나는 칼을 팔뚝에 찔러 가른 뒤 뼈를 자른다는 구상을 하고 실행한다….

고민도 없이 바로 칼을 꼽는다. 극심한 고통이 찾아오면서 마음속으로 괴성을 낸다. 

‘하아... 해야 한다…. 꽃을 위해서라면, 그와 교감을 하기 위해서…“

뼈는 단단하고 너무 단단해서 나는 칼을 계속 찔렀다. 그 단단한 뼈가 잘릴 때까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내가 하는 행동을 보면서 기겁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눈을 가리고 몇 명은 구역질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다. 아니, 해야 한다. 이 작업을 해야지 ’ 그것‘을 만날 수 있으니깐..

고통을 길고 괴로웠다. 피는 폭포처럼 넘쳐흐르고 눈이 빠질 거 같은 고통을 견뎌야 했다. 

손이 피로 젖는다 그래! 이렇게 해야지만 나는 얻을 수 있다! "그것"을 이렇게 좀만!... 좀만 한다면!..

(툭)...

잘랐다. 잘린 팔은 대롱대롱 매달리고 잘린 것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바로 그 꽃을 향해 달려간다

찾았다! 나의 ’ 희망‘ 나의 ’ 생명체‘


4)

미친 듯이 달려가서 그 꽃을 사뿐히 오른손으로 만져본다. 처음 느끼는 생명의 손길은 참으로 부드럽고 축축하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혀로 민들레 꽃을 핥는다. 시큼한 맛, 썩은 고기에서는 보지 못하는, 죽은 생명체에서는 못 느끼는 향긋한 신맛이 내 혀를 덮친다. 

‘정말… 달콤하다..’

이제 코로 향기를 맡아야 한다, 생명의 향기, 살아있음을 알리는 향기가 내 코 깁숙한 부위를 찌른다.그것은 꽃과 더 많은 교감을 하게 만든다.

‘그래! 귀‘

귀를 들이밀어 꽃에 가까이 댄다. 사늘한 바람소리에 흔들리는 꽃의 움직임이 들려온다. 살랑살랑 움직이는 생명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너무 행복하다 이것이구나…


5)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가고 어느정도 진정될쯤 보안관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이제 잡힌다, 잡히면 어떻게될까? 다시 구속? 아니다. 너무 난동을 피워서 도축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괜찮다. 행복하다

나는 꽃을 봤으니깐, 아니 나는 생명을 봤으니깐

나는 "교감"을 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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