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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작정고전소설읽기 Oct 01. 2024

희망

10번째 주제

(1) 1장


1) 나의 빛 나의 친구 희수.

희수는 내가 좋아하는, 좋아했던 친구였다.

유치원생때부터 우리는 같이 따라다녔고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같이 따라다녔다. 우리는 늘 껌딱지처럼 붙여 다녔고 늘 서로서로 챙기는 관계로  지냈다. 누군가에게 연인이 생기면 응원해 주고, 이별하면 서로가 위로해 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남들이 우리를 보고 막 연인 사이 아니냐고 의심할 정도였고 우리가 봐도 평생을 같이 할 사이였다.

그런 우리의 관계가 처음으로 절망으로 바뀐 순간은 고등학교 2학년때 희수가 우리 집구석에서 알약을 먹는 것을 본 순간이었다. 구석에서 몰래 먹던 희수.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수십 개의 다른 알약들. 나는 그것을 보고 희수를 보면서 물어봤다.

“이게 대체 뭐야?…”

희수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굴에 눈물이 흐르면서 처음으로 나에게 고백을 했었다. 중학교 때부터 불치병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병이 요즘 점차 심해졌다고. 그걸 들은 나의 눈시울도 붉어졌고 우리는 한참을 화장실에서 서로를 안은 채로 울었다.

사실 희수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는 생각했다. 학교도 자주 빠지고 어떨 때는 한동안 학교에서 안 보이는 모습을 중학교와 고등학교 내내 보였다. 그럴 때마다 반애들은 막 남자 친구랑 놀러 가는 거 아니냐, 혹시?… 이러면서 의심을 하고 다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희수가 그런 아이라고 변호를 했지만 정확하게 그것이 뭔지는 몰라서 제대로 변호는 하지는 못했다. 나도 반 애들처럼 무슨 일이 있구나 정도로는 생각을 했지만 그가 그렇게 심각한 병을 갖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런 징후가 있었는데 그냥 내가 넘겼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희수를 제대로 변호하지 못한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고 희수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희수랑 더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학교에서도 계속 희수의 병세를 관찰하고 혹여나 학교를 빠지는 일이 있으면 나름에 이유를 붙여서 친구들에게 희수가 빠지는 이유를 나름대로 설득시켜서 괜한 의심을 막았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희수는 점점 더 아파왔고 결국 장기입원이라는 선택을 하면서 고등학교를 휴학했다.


2. 희수랑 희망


나는 학교가 끝나고, 학원이 끝나고, 그리고 시험이 끝날 때마다 늘 희수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학교 사진이나 시험지를 보여주면서 학교를 가지 못하는 희수에게 최대한 학교 생활을 보여줬다. 희수에게 자랑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또래들과 다른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이었다.

희수는 병은 사악했다. 평소에는 진짜 일반인 보다 더 건강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갑자기 안 좋아지면 간호사가 5명 이상 오고 의사도 3명 넘게 오면서 오만가지 주사를 들고 와서 희수에게 주사를 했다. 그럴 때마다 보이는 희수의 고통 어린 목소리와 비명은 내 가슴을 더욱더 아프게 만들었다.

나는 희수를 간호하고 싶어서, 그리고 희수 같은 친구를 간호하기 위해서 간호대학을 진학했다. 간호대를 진학했다고 자랑했을 때 희수는 마치 자신의 자식이 합격한 것 마냥 방방 뛰며 좋아했다.

나는 간호대를 가서도 미친 듯이 공부를 했다. 희수가 있는 병원을 가기 위해서 그 병원에 입사할 수 있는 토익점수를 만들고 학점을 만들고 정말 진짜 “희수”위해서 달렸다.

희수는 정말 고마워했다. 사실, 희수의 부모님들은 병원비를 벌기 위해  모든 일을 다했고 외동이다 보니 병실에 늘 혼자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희수를 항상 챙기러 갔고 그런 모습에 희수는 “희망”을 가졌다.

자신에게 부모님이 있고 그리고 항상 자기를 응원하는, 간호하기 위해 달리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 희수는 희망을 가지고 달렸다. 병세가 나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 

나도 희망을 가졌다. 희수가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그녀에게 내 마음을 솔직하게 전할 수 있다는 희망.


3. 희망은 희망 고문을 만든다.


간호학과 3학년이 되면서 실습이 많아지고 나는 점점 바빠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가는 발걸음이 줄었다. 그렇게 가끔씩 가면 확연하게 보이는 그녀의 왜소한 모습, 점점 병세가 나빠지는 모습이 두 눈에 들어왔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을 찢어지는 기분이 들었고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그냥 고개를 숙이고 그녀와 대화를 할 때도 있었다. 그녀가 병들어가는 얼굴을 보기 너무 싫었다. 괜히 완치될 수 있다는 희망이 망가질까 봐…

사실 대학교에 들어오고 공부하면서 그녀의 병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자세한 논문이나 서적을 찾아봤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오는 예상 수명과 도박확률 같은 수술 난이도, 그런 확률을 보며 나는 희망을 가져야 할지, 아니면 그 확률에 절망을 해야 하지 나는 차마 선택을 하지 못했다. 

참.. 사실 나보다 그 병의 위험과 절망을 더 잘 아는 것은 희수 자신일 텐데 희수는 늘 나에게 괜찮다고 희망 섞인 목소리를 내면서  꼭 나을 것이라고 자랑하는 듯이 말했다. 한 번은..

“야 어떡하냐? 네가 간호사 되기 전에 나 완치하는 거 아니야?”

팔에 온갖 링거를 달고 옆에는 비상벨이 있는 상태에서 그런 긍정적인 소리를 하다니 그 희망찬 희수를 보며 나는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4. 아 진짜 희수야!


희수의 부모님과 친해져서 나는 진료날이나 검사날에 같이 의사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4학년 어느 날…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충분히 노력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솔직히 기적이었거든요.. 이제는 결정을 하셔야 합니다. 남은 6개월을 보낼 것이냐 아니면 생존확률 10% 되는 수술을 하실 것인가, 물론 그것을 한다고 해도 기대 수명은 1년입니다.”

그 말을 듣고 희수의 부모님은 한참을 울었다.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토닥일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졸업하기 위해서 군대도 미루고 대학교를 휴학 없이 계속 달려왔다. 그런 나에게 그녀의 예상수명은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희수에게 갔을 때 희수는 여느 때처럼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들었지? 희망적인 소식이야! 내가 6개월이나 살 수 있대! 아니? 수술만 성공하면 더 오래 살……“

“아 진짜 희수야!!! 그놈의 희망 희망 희망!!!!”

나는 순간 너무 화가 났다. 계속 말하는 희망에 너무 화가 났다. 뭐 희망? 지금 당장 수년간 뒷바라지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완치를 바라는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소식이 왔는데 여기서 희망적인 소식이라고? 나는 너무 화가 났다. 그놈의 희망고문! 그 희망고문 때문에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울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어서, 희수에게 화를 냈다.

“정신 차리라고! 이게 지금 희망찬 소리냐고? 너 지금 6개월밖에 안 남았다니깐? 망할 10 퍼 밖에 안 되는 수술 해도 너는 1년 더 살 수 있는데 이게 어떻게 희망찬 소리야? 너 진짜 왜 그래?”

한 번도 간호를 하면서 화를 내본 적 없는 내가 처음으로 그녀에게 화를 내고 그대로 병실을 나가 학교를 가서 휴학을 내고 군대에 입대했다.

5. 전화 한 통

희수의 부모님에게만 말하고 희수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부탁한 다음 나는 간호병으로 빠졌다. 그러고 마음 한편으로는 계속 희수 생각이 났다 내가 너무 심하게 말을 한 것은 아닌가 싶고 잘 지내나 걱정되고 오만가지 생각이 났지만 차마 내가 그녀에게 편지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한통의 전화가 왔다.

“희수가 그 수술을 받는단다. 만약 잘 안되면… 수술다음날에 장례식을 할 거야.”

나는 수술 날짜에 맞춰서 휴가를 냈다. 그러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났다. 그렇다고 희망은 있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는 어느 정도 했다. 다만 그녀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전달해야 할지, 아니면 최소한 미안하다고 말은 해야 할지 나는 고민하고 고민했지만.  나는 편지를 찢고 그냥 휴가날까지 기다렸다.


2장)


1) 희망

휴가를 내고 버스를 타면서도 희수 생각이 계속 났다. 그리고 웃기게도 막상 병원에 다가오니 작은 희망이 생겼다. 설마 나아서 나에게 오지 않을까? 웃으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희망.

병원을 가는 나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희망을 생각하니 정말로 그렇게 될 거 같다는 웃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면 고백을 할 것이다.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고. 정말 보고 싶다. 희수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렇게 병원에  가자마자 희수를 볼 수 있었다.

“고인 성명 이희수…”


2) 장례식

희수의 웃는 얼굴이 장례식장에 걸쳐있었다. 부모님들은 나름 체념했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희수의 웃는 표정을 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가서 술 한잔을 따라먹었다. 그깟 희망 때문에, 차라리 희망이 없었으면 이렇게 절망도 하지 않았을 텐데, 어설픈 희망 때문에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나는 한참을 후회하고 탄식했다.

나는 발인하는 순간에도 그냥 아무 표정도 없이 걸었다.

그사이 희수의 어머님이 나에게 부탁을 했다. 희수 병실에 있는 유품들을 좀 가져다 달라고. 차마 그것들을 자신이 못 가져오겠다고. 그냥 태워도 되니깐 있는 것들 정리하고 오라고.. 나에게 말을 해줬다


3) 일기장

병실은 이미 청소가 된 거처럼 깨끗했다. 나는 거기서 하나하나 챙겼다. 그녀의 옷, 그녀의 책들 … 그러다가 한 권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또래의, 그것도 이성의 일기장이라니 이것을 열어도 되나 고민했지만 한번 보고 싶어서 “그날”만 한번 보고 싶어서 그날 일기만 봤다

“병원에서 나에게 시한부선언을 하면서 10%라는 절망적인 숫자를 알려줬다. 괴롭다.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있을까? 이 거지 같은 병실에서 수년간 썩는 것도 미안한데 결국은 병원에서 죽는다니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그러면서도 나는 너무 무섭다. 죽는다니, 난 아직 할게 너무나도 많은데, 진짜 많은데, 너무 무섭다 여기서 죽기는 싫은데.”

마지막 부분은 연필 심이 부서졌는지 다른 글자보자 더 강한 게 써져 있었다. 나는 몰랐다. 그녀가 항상 희망찬 소리만 하길래 저렇게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지를, 부끄러웠다. 그런 아이에게 팩폭이라는 셈으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미안하고 괴로웠다. 나는 차마 나머지 일기는 열어볼 자신이 없어서 그대로 상자 안에 넣고 불태웠다,


(3) 장


1) 편지 한 통

장례식이 다 끝나고 납골당에 그녀의 재를 넣을쯤 부모님이 나를 부르고 한 통의 편지를 줬다

“혹여나 자신이 못 전해주면 전해달라고 부탁했어… 여기 너에게 보낸 편지란다.”

수술전날이라고 적혀있는 편지에는 빼곡하게 글이 써져 있었다.

‘민수! 내가 이렇게 이름을 불러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진짜 얼마 만에 이렇게 너 이름을 부르고 너에게 전하는지 모르겠어. 한동안 안보이던데 대체 어디 간 거니? 아마 이 편지는 네가 보겠지? 그때 내가 살아있을지 죽어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나는 살아있을 거야 이 문장을 보면서 웃으면서 날 쳐다보겠지.’

마지막까지 희망차게 생존을 바랐던 그녀의 말에, 예상에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거지 같은 희망을 왜 갖고 있었는지. 차라리 그냥 마지막 인사라고 생각하지, 왜 어째서…라고 생각하면서 다음 줄을 읽는다.

‘물론 희망찬 소리니깐 아닐 수도 있어 내가 죽었을 수도 있지, 네가 그때 말했잖아 희망찬 소리 그만하라고 소리쳤잖아. 나도 알아!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거. 하지만, 나는 하루종일 죽음이라는 두려움과 절망이랑 싸우는데 차마 너랑 부모님 앞에서 까지 그것을 보여줄 수 없잖아, 나만 힘들면 되지 왜 다른 사람까지 힘들어야겠어!‘

순간 머리가 멈췄다. 내가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한 건가. 내 앞에서만 그런 소리를 한 거라고는 왜 생각 안 했지? 내가 얼마나 그녀랑 같이 있는다고 기껏해야 하루에 1~2시간 같이 있는데 남은 20시간 동안 얼마나 외롭고 불안하고 무서워했을까. 그녀가 보여준 희망이라는 것은 24시간 절망 속에서 있던 그녀가 할 수 있던 유일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그것을 생각 안 했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미안했다. 그냥,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였다.

나는 거기서 편지를 한참 동안 넘어가지 못했다. 내 눈에서 눈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 눈물은 슬퍼서 나오는 것이 아닌 희수에게 너무 미안해서 나오는 눈물이었다.


2) 못한 말

‘암튼! 내가 이 편지로 할 말이 있어 정말 네가 고맙다고 , 그리고 정말 사랑한다고! 부끄럽다,,, 이런 말을 너에게 할 줄은 몰랐는데, 정말 부끄럽네(웃음) 암튼 내 앞에 있다면 부디 이 질문에 답해주길 바라!’

편지는 끊겨있었고 나는 떨리는 손과 멈추지 않는 눈물을 뒤로한 채 천천히 뒷페이지로 넘겼다.

‘나랑 사귀어 줄래?’

그 문장을 보자 나는 엎드려서 엉엉 울었다. 미친 듯이. 그냥 그동안 울지 못했던 것을 다 쏟아냈다. 그녀에게 한 행동이 너무 미안해서, 자신이 했던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서 그리고 그녀를 너무 사랑해서…. 나는 펑펑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답을 했다.

“어… 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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