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한 첫 장거리 비행

아기사자와 20시간 여행을 하다

by DK

2024 년 12월 20일, 이날은 나와 아내가 한 해 내내 기대해 왔던 제네바에서 한국으로 출국하는 날이었다. 기대는 걱정과 함께 왔는데, 11개월이 된 아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20시간이 넘는 여정을 해야 된다는 생각에 티켓을 예약한 지난해 3월부터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최대한 준비를 하려고 했다.


거의 한살이 다 된 아이는 걷는 것은 이제 당연히 여기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되었고, 우리가 항상 팔 안에 안고 있기에는 조금 무거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미국 유학시절 나는 서울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1년에 한 번씩 탔었고, 다른 장거리 비행기를 타봤는데, 거의 항상 크게 우는 아기들의 소리와 피곤해 보이는 부모들의 표정이 기억났다. 내가 부모가 된 후에는 아이가 3개월 정도가 됐을 때 2시간 정도의 비행기를 타보기도 하고, 4~5시간이 되는 기차여행을 가보기도 하였지만, 이번 여행을 앞둔 나는 너무나 걱정이 되었다.


직장에서 이런 고충을 동료들에게 얘기했더니, 무려 3명의 자식들을 (심지어 나와 비슷한 나이의) 키워온 동료는 모든 것은 어떻게 생각을 하냐에 따라 달린다고 하였다. 그녀는 혼자 3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비행기를 많이 탄 경험이 있고, 항상 모든 게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여행을 시작하였더니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하였다. 좋은 위로를 해주는 동료에게 감사를 표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 순간, 4살짜리 딸아이를 가진 동료가 내 옆으로 와서 “내 경험상, 너무 힘들고 죽고 싶을 거야”라고 하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미친...나는 답례로 조용히 입을 닫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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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기대감이 섞인 마음을 진정시키며 성공적인 여행을 위해 나와 아내는 3가지 준비를 하였다.


아기사자의 탈을 쓴 아기

첫째, 최대한 아이를 귀엽게 옷을 입혀서 주변 승객들이 아이를 이뻐하고 큰 소리를 지르더라도 너그럽게 용서해 주기를 바라자. 이를 위해서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 기간 동안 사자를 닮은 아기 옷을 사서 준비하였다. 실제로 라운지에서부터 비행기 탑승 때까지 아기사자님은 모두의 관심을 받았고, 윙크를 날리시며 행복한 에너지를 전달했다. 게이트 근처에서 아기사자를 팔에 품고 어슬렁 거렸더니, 승무원이 바로 알아채고 제일 먼저 탑승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였다. 일단 작전 성공!


둘째, 나의 동료가 말했듯이 최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갖자. 아기가 잠을 안 잘 수도 있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고, 기저귀가 흘러 너무 칠 수도 있고… (비행기에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 끔찍하다) 정말 힘든 상황이 많이 생길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은 예상할 수 있고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것에 집중하지 말고 우리는 행복한 연말을 기대하는 것에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리고,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 너무나도 든든한 지원군들이 육아와 모든 것을 해주실 거 기 때문에, 우리는 비행기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셋째, 팀워크를 강화하고 교대로 공략하자. 요즘 들어 더 드는 생각인데, 육아는 정말 재밌지만 힘든 스포츠와 비슷하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지치는 건 물론이고 팀워크가 너무나 중요한 경기를 매일 끊임없이 하는 기분이다. 다행히도 아내와 나는 경기 중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패스를 주고받고 하프타임 (낮잠시간)에는 서로 피드백을 나누고, 경기가 끝나면 (아기의 밤잠!) 격려를 하며 다음 경기를 준비할 수 있는 좋은 파트너가 되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각자의 부담을 덜어주기로 계획하였다.


아 물론, 계획대로 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 하하


출국 당일, 저녁에 예정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일주일 내내 정리한 짐을 마지막으로 싸고, 생길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얘기해 가며 하루종일 준비를 하였다. 스위스에서는 유모차/짐을 둘 수 있는 공간이 버스에 충분하기에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는데, 우리의 예상대로 아이가 유모차에서 잠들자 아내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우리의 치밀한 계획을 서로 칭찬하였다.


그런데 웬걸, 공항에 근처에 가자 폭탄으로 의심되는 슈트케이스 때문에 버스가 목적지까지 가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 평화로운 제네바에 폭탄이라니!! 결과적으로는 누군가가 깜빡한 짐을 의심스럽게 본 직원들이 조심하기 위해 신고를 한 거였다.


이 때문에 시간이 조금 지연되었지만, 환승을 하러 간 파리 샬드갈 공항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자그마하게 마련된 공항의 아기전용 공간에서 조금 쉬고, 아기사자를 앞세워 승객 중 제일 먼저 탑승을 하고, 라이언킹에서 라피키가 심바를 자랑하는 것과 비슷하게 대한항공 승무원님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난 후 (모두가 아기사자를 보고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셨다) 좌석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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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석 제일 앞쪽에 자리를 잡고 앞쪽 벽에 설치 가능한 아기 침대를 받은 우리는, 출발 전 잠에 든 아기를 보며 다시 한번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밤 12시쯤 비행기가 이륙하는 시간에 잠들었으니 지금부터 8시간 정도는 잘 수 있지 않을까??? 엄청나게 낙관적인 생각을 하던 나는 15분이 체 지나지 않아서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너무나 편안하게 아기 침대에서 잠이 들었던 아기를 보며 미소를 짓던 우리를 벌하려는 건지, 어두웠던 비행기 안은 순식간에 밝아졌고, 우리의 "완벽했던" 계획의 치명적인 결함을 깨닫게 되었다.....


맞아... 밥 먹을 시간이지.......


비행기 내의 모든 불빛이 켜지고 승객들에게 밥과 음료를 대접하려고 분주해진 승무원들의 소리에 짧은 잠에서 깬 아기사자는 짜증을 내며 포효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것을 고려하였다고 생각한 우리였고 아기와 두 번의 해외여행을 이미 가본 우리 가족은 모든 게 준비되었는 줄 알았지만, 장거리 비행은 처음이라 그런지 예상 못한 변수를 맞이하였다. 심지어 나와 아내가 기대했던 대한항공의 비빔밥은 너무나 맛이 없었다. 나물을 줄인 건가??


일단 잠에서 깬 아기사자는 다시 재우려는 우리 노력을 무시하고 계속 포효를 하였고, 가끔 잠에 들긴 하였지만 아기침대에 가만히 있지는 못하였다.


이 순간부터 14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나와 아내는 거의 잠을 못 자고 피곤한 몸을 뒤로 한 채 육아에 전념하였다. 그렇다면 플랜 B 좋은 생각을 하며 팀워크로 이 난관을 헤쳐가자! 다행히 아이는 크게 울지도 않고 심하게 칭얼거리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아내한테만 안기길 바랐다는 거였다.


내가 육아퇴사를 하고 9개월간 전업주부가 되었을 때에는 항상 나에게 안겨있고 나와 노는 걸 즐겨하던 아이가, 내가 복직을 하고 나서 같이 시간을 덜 보내서 그런지, 또는 그냥 엄마를 더 좋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내의 품에 안겨있고 싶어 했다.

20241221_040059.jpg 비행기 안에서 기저귀 가는 팀워크

내가 최대한 오랫동안 안고 놀아주려고 하였지만 몸부림치며 아내 쪽으로 점프를 하는 아기를 보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에는 팀워크가 필요한 비행기 안의 육아는 팀의 에이스 (아내)에게 막중한 짐을 지어주고 나는 벤치에 앉아있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있기 뭐해서 옆에서 듄 2를 보고 있었는데, 아내의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지기도 하였다...


시간이 어떻게 이렇게 느리게 갈 수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몇 번 동안 기저귀를 갈고 아기의 밥을 먹이는 동안 비행기의 도착 예상 시간은 변하지 않았다. 팔에 힘이 떨어질 때마다 서로에게 아기를 패스하고, 파이팅을 외치며 우리는 이 시간을 견뎌냈고, 긴 시간 끝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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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자마자 나를 반겨오는 한글 안내문들, 깔끔한 공항 시설, 그리고 우리를 기다려주신 나의 부모님들을 보면서 너무나 마음이 편해지고 지난 20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는 속담을 되새기며 우리 가족의 첫 장기 여행 리뷰를 마쳐본다.


다음 이야기는 한국에서 부모의 입장으로 든 생각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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