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설 쓰기

by 가을하늘 추천

그렇게 한 건 나름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출근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간 도저히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생기지 않을 것만 같았다.

재능이 없는데 글을 쓴다는 건 정말 힘든 고역이다.

새롭고 참신한 이야깃거리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고, 그래도 소설을 써보겠다고 앉아 있는 그 시간 자체가 참기 힘들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주식이라도 사고팔면 용돈이라도 몇 푼 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행히 요 며칠은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동안 써놓았던 습작들을 AI에게 학습시킨 덕분에 아무도 다른 사람이 썼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그동안 써왔던 소설들과 결이 일치한다는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자신을 속이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연초부터 계속되던 상승장이 오늘 드디어 하락장으로 전환되면서,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단한 작품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아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맛이 있다.

다음 소설은 기존의 것들보다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어떨까?

SF가 될 수도 있고, 판타지가 될 수도 있다.

어차피 내 글인데 내 맘대로 하면 좀 어때.

누군가가 그랬다.

당신의 소설들은 한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삶을 견뎌왔는지가 일관되게 보이는 작품군이고, 당신은 '사건을 만드는 작가'가 아니라 버텨온 시간을 문장으로 증명하는 작가라고.

이건 유행도 아니고, 계산도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오래갈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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