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단편소설
'네가 당장 그 돈이 필요한 게 아니잖아! 근데 왜 그걸 손절하려고 하냐? 그걸 지금 팔아서 뭘 어쩌려고? 맨날 그러고는 또 후회하지, 너란 녀석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현재 가격이 평단(평균구매단가) 보다 더 올라가지 않고 오히려 더 떨어질 거라 판단하여 마이너스인 상태에서 더 큰 손실을 피하기 위해 손해를 보고 주식을 파는 행위
김 과장은 오늘도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주식을 팔지 말지 고민하다가 매매 창을 닫아버렸다. 요 며칠 계속 주식시장이 좋지 않아서 그새 흰머리가 더 많이 늘었다. 작년 9월부터 주식을 시작하면서 나름 원칙을 지키면서 거래하겠다고 결심했었는데, 매번 지켜지지 않았다. 그도 인간이니까. 주식시장은 원래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어이, 김 과장! 좋은 아침!"
"편히 쉬셨습니까? 차장님!"
"근데 얼굴이 왜 그래? 자네 혹시 간밤에 주식한 거 아니야?"
"아, 아닙니다. 차장님! 제가 주식할 돈이 어디 있습니까?"
"뭐, 아니면 말고. 근데 어젯밤에 테슬라가 엄청나게 떨어졌더군. 자네도 가지고 있나?"
"네? 아니요. 제 차는 하이브리드입니다."
"뭐? 하하하하."
K3 빌딩 옥상 흡연장에서 항상 일어나는 대화는 전날 주식시장 소식이나 비트코인이 오르고 이더리움이 떨어졌다거나 하는 암호화폐에 관한 얘기들뿐이다. 원래 경기가 많이 안 좋아지면 복권 판매량이 늘어난다는데, 어쩌면 요즘 사람들 사는 게 다들 팍팍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주택복권이 우리나라에 처음 발행되었을 때, 추첨하는 시간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전 국민의 관심거리인 적이 있었다. 요 몇 년 사이에 워낙 물가가 많이 올라서 (복권 당첨금이 상대적으로 많아 보이지 않아서인지) 로또복권 인기도 시들한 것 같다.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더라도 서울에 있는 번듯한 아파트 한 채를 못 사니 말이다. 요즘 대세는 아무래도 주식이나 코인인 듯하다. 일일이 직접 확인해 본 건 아니지만 K3 빌딩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아마도 삼성전자나 테슬라, 비트코인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직장에서 직원들 간 대화에 끼질 못했다. 주식과 코인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절대 주식 같은 걸 하면 안 된다고 가정교육을 받았다. 사실은 그의 부친이 젊었을 때 주식으로 전 재산을 날려 먹은 적이 있어서다. 어쨌든 그는 절대로 자기는 주식 같은 걸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관심 자체를 두지 않아 S&P500이 뭔지, XRP가 뭔지, 직원들이 얘기하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평소 고리타분하고 원리원칙주의란 소릴 자주 듣는 편인데, 그런 그의 성격이 주식이나 코인과 관련된 정보의 흡수 자체를 아예 막아버린 탓이다.
그의 나이는 올해로 만 58세이며, 정년퇴직을 2년 앞두고 있다. 스포츠용품 전문 브랜드 K3 주식회사에서 근무한 지 29년째다. 결혼해서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는데, 첫째인 아들은 대학을 졸업해서 독립했고, 둘째인 딸은 캐나다에 유학 가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아내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근무하는데 그보다 나이가 10살 어리다. 두 사람은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만나 3개월 정도 사귀다 결혼했고, 지금까지 큰 다툼 없이 살아왔다. 워낙에 두 사람이 다투는 일이 없어서 주위에선 금실 좋은 부부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다지 관계가 좋은 부부는 아닌 듯하다. 아내와의 잠자리를 안 한 지가 벌써 5년이 지났지만, 아내가 지금까지 그에게 불만을 표시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는 현재 가족과 떨어져 대구에서 근무하고 있다. 원래는 K3 본사가 있는 평택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차장승진에 떨어지면서 지방으로 인사발령이 나버렸다. 하는 수 없이 그는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사택에서 지내며 주말에만 평택 집으로 올라오는데, 최근 몇 년간은 거의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올라오는 수준이어서 대구에서 혼자 지내다시피 하고 있다.
매년 8월이 되면 승진시즌이라 발표를 앞두고 회식이 거의 매일 이어졌다. 그도 승진을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매번 회식에 참석했는데, 그날은 평소 주량보다 많이 마신 듯 다음 날 기억이 드문드문 비어있었다. 몇 가지 기억 중에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송 대리와 주식과 코인으로 언쟁을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과장님, 그만 드시죠. 오늘 평소보다 많이 드신 거 같은데요."
"뭐? 이 정도는 끄떡없어. 송 대리, 나가서 한 잔 더하고 갈까?"
"아뇨. 괜찮습니다. 들어가서 할 일이 있어서요."
"퇴근했는데 무슨 할 일? 그러지 말고 한 잔만 더 하고 들어가."
"싫습니다. 과장님."
"싫어? 내가 싫어?"
"아뇨. 과장님이 싫다는 게 아니라 할 일이 있어서 이제 들어가 봐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들 내가 싫지? 나도 알아. 내가 재미없다는 거. 그래도 나한테 다들 이러면 안 되지. 안돼."
"과장님도 주식이나 코인 한 번 해보세요. 그래야 요즘 젊은 사람들하고 대화가 돼요."
"주식? 그딴 걸 왜 해! 난 절대로 주식 같은 거 안 해! 일하는 시간에는 일해야지. 다들 일은 안 하고 주식이나 코인을 하면 돼? 안 되지. 안돼!"
"다들 일하면서 틈틈이 하는 거예요."
"그래? 그걸 누가 믿어?"
"믿지 마세요. 과장님은 평생 그렇게 사십시오."
"뭐? 송 대리, 나 지금 무시하는 거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답답해서 하는 소립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직장인은 말이야. 월급 꼬박꼬박 받아서 저축하면서 사는 게 정답이야. 주식이나 코인 같은 거 하면 큰일 나!"
"회사에서 월급을 넉넉하게 줘야 주식 같은 걸 안 하죠. 월급은 맨날 쥐꼬리만큼 주고는 매일 야근에 주말 초과근무나 시키니까 다들 빨리 돈 벌어서 직장 때려치우려고 그러는 겁니다."
주식이라는 게, 코인이라는 게 정말 나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요즘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대다수사람들이 재테크에 관심이 많다. 파이어족을 꿈꾸는 젊은 직장인들도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주식과 코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바꿔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져서 낙오자처럼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식과 코인을 해보기로 했다. 자신은 절대 아버지처럼 실패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파이어족(FIRE族)은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약자로, 경제적 자립을 통해 30~40대에 조기 은퇴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극단적 절약과 투자를 통해 생활비의 25~30배에 해당하는 자산을 축적해 근로소득 없이도 안정적인 삶을 유지한다. 네이버 AI브리핑(2025.8)
그날 밤 그는 주식거래 앱 몇 개를 검색했다. 주거래 통장인 KB국민은행 계좌로 거래하는 KB증권의 <M-able> 앱과 아내에게 송금할 때 쓰는 NH농협은행 계좌로 거래하는 NH투자증권의 <나무증권> 앱을 스마트폰에 다운로드했다. 아이디와 패스워드는 기존에 사용하던 은행의 것과 똑같이 설정하고, 종합위탁계좌와 CMA 계좌를 개설했다. 처음이니까 각각 250만 원씩 총 500만 원으로 투자금액을 정했다. 코인은 주식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그때 하기로 했다. 당장 무슨 종목을 살지를 고민하는 순간부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원래 처음은 항상 긴장되는 법이니까.
우선 국내 주식시장은 코스피와 코스닥으로 구분되는데, 먼저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종목을 살펴봤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삼성전자에서부터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삼성바이오로직스, 현대차, 기아, 셀트리온 등등. 투자금액은 250만 원으로 한정되어 있는데 사고 싶은 종목이 너무 많았다. 사면 모두 올해 안으로 상한가를 칠 것만 같았다. 일단 종목별로 1주씩 사기로 했다. 2024년 9월 12일 종가(終價) 기준으로 삼성전자가 66,300원이었다. SK하이닉스는 168,800원, LG에너지솔루션은 414,000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971,000원, 현대차는 232,000원, 기아는 99,100원, 셀트리온은 195,600원으로 총 7개 종목을 1주씩 매수하기로 했다. 거래수수료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총 매수금액은 2,146,800원이고, 남은 예수금은 353,200원이다. 국내 주식은 주거래 은행인 KB국민은행 KB증권의 <M-able> 앱으로 거래를 시작했다.
다음으로 미국 주식을 살펴봤다. 미국 주식시장은 나스닥과 다우존스로 구분되는데, 우선 나스닥 시가총액 상위종목을 알아봤다. AI 반도체로 유명한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아마존닷컴, 메타(구. 페이스북), 알파벳, 테슬라 등등. 역시나 사고 싶은 종목은 많았지만, 투자금액 250만 원 범위 안에서 1주씩만 사기로 하고 가격을 알아봤다. 엔비디아는 119.14달러, 마이크로스프트는 427.00달러, 애플은 222.77달러, 아마존닷컴은 187.00달러, 메타는 525.60달러, 알파벳은 154.69달러, 테슬라는 228.81달러였다. 거래수수료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총 매수금액은 1,865.01달러이고 환율(1,338.70원)을 적용하면 2,496,689원이다. 예수금은 3,311원이 남았다. 미국 주식은 NH농협 NH투자증권의 <나무증권> 앱으로 거래했다.
낮에는 국내 주식을 거래(AM 09:00 ~ PM 03:30)하고, 밤에는 미국 주식을 거래(PM 10:30 ~ AM 05:00)했다. 처음 1주일 동안은 밤에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실시간으로 시세가 변하는 가격을 보고 있으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금방 가격 그래프가 곤두박질칠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아서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커피를 연거푸 마셔도 새벽 시간대엔 졸음을 쫓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1주일을 보내고 나니 주말엔 아무것도 할 힘도 의욕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거의 하루 내내 침대에 누워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몇 주 뒤에 밤낮없이 이뤄지는 주식거래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싶었는지 이번엔 코인도 알아봤다. 코인을 거래할 수 있는 국내 앱을 검색했다. KB국민은행 계좌로 거래하는 <빗썸>, K뱅크 계좌로 거래하는 <업비트>, 카카오뱅크 계좌로 거래하는 <코인원> 등등. 평소 사무실 회식비를 결산할 때 카카오뱅크를 주로 사용하고 있어서 코인 거래는 <코인원> 앱으로 정했다. 먼저 거래대금 상위종목을 살펴봤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비트코인, 시가총액 2위인 알트코인 이더리움, XRP(구. 리플), 솔라나, 에이다(구. 카르다노) 등등. 이 중에서 비트코인, 이더리움, XRP 세 가지를 각각 50만 원씩 총 150만 원어치를 구매하기로 했다. 참고로 주식은 1주당 가격이 정해져 있고 거래단위가 되는데, 코인은 1개당 가격과 관계없이 5,000원 단위로 매매가 이루어진다. 2024년 9월 30일 종가기준으로 비트코인은 개당 83,750,000원, 이더리움은 3,442,000원, XRP는 809원에 거래되었다. 종가기준이라고 표현하였지만, 코인 시장은 주식시장과 다르게 폐장이 없고 24시간 365일 거래가 되기 때문에, 코인 시장에서의 '종가'란 임의로 특정한 시간(예를 들면 AM 09:00 가격을 시가, PM 09:00 가격을 종가)을 정해서 부르는 것일 뿐이다. 즉 코인 시장에서 실제로는 종가가 없다. 예전에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던 '테라, 루나 폭락사태'처럼 코인이 시장에서 아예 없어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원히 종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Alt coin(Alternative Coin): 암호화폐 시장의 선구자인 비트코인 이외의 후발 암호화폐를 칭하는 말. 나무위키(2025.8)
그는 평일 낮에는 국내 주식, 밤에는 미국 주식을 거래했고, 주말에는 이틀 내내 코인을 거래했다. 그는 뭔가에 몰두하면 대충이란 걸 몰랐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주식과 코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나니,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이 그를 초조하고 조급하게 만들어버렸다. 최근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게 초췌해지고 회사에서는 수시로 조는 모습을 보였다. 회의시간에 집중할 수도 없었고,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바로 옆에서 귓속말로 자꾸 뭐라고 말하는 망상에 시달렸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얼른 화장실로 가서 시세를 확인해야지. 목표가(價) 보다 더 올라가 버리면 곤란하잖아! 주식은 말이야, 타이밍이야, 타이밍!'
'음, 분위기가 좋지 않아. 이쯤에서 물을 좀 타! 금방 또 오를 테니까 괜찮아. 인생 뭐 있어?'
'공포에 사라는 말도 있잖아. 주눅 들지 말고 남자답게 확 질러버려!'
한 달쯤 지나자 그도 젊은 직원들의 대화에 낄 수 있게 되었다. 평소에 주식 얘기만 나오면 뭔가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을 본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를 피하던 그였는데, 지금은 주식과 코인에 대한 자기 나름의 생각을 얘기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런 그를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평소에 그에게 관심이 별로 없었던 터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회식 자리에선 특히나 더욱 열정적인 주식 예찬론자가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특정 종목의 매매를 강권(強勸)하는 상황도 종종 생겨났다. 그런 그를 회사 사람들은 점점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고, 그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를 일부러 피하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상황을 보다 못한 송 대리는 (평소 그가 휴식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옥상 흡연장으로 그를 찾아갔다.
"과장님, 여기 계셨네요."
"어, 왔어? 내가 가면 어딜 가겠어? 무슨 일 있어?"
"아닙니다. 그냥 바람 좀 쐬러 올라왔습니다."
"난 여기가 제일 편한 것 같아. 사무실에 있으면 괜히 가슴이 답답하다니깐."
"과장님 요즘 많이 변하신 거 같습니다."
"내가?"
"요즘 일과시간에 자주 자리를 비우시고, 자리에 앉아 계실 땐 졸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였습니다."
"요즘 내가 갱년기라 많이 피곤해서 그런 걸 거야."
"회의시간에는 집중도 잘 안 하시는 거 같고요."
"내가 그랬었나?"
"과장님, 요즘 잠은 잘 주무십니까?"
"잠? 죽으면 평생 잘 텐데 뭐. 며칠 안 잔다고 죽지 않아."
"밤늦게까지 주식하지 않으십니까?"
"......"
"너무 깊게 빠지신 거 같아 걱정돼서 말씀드려 봤습니다."
"......"
"몸도 챙기시면서 하십시오. 그러다 정말 쓰러지십니다."
그도 이렇게 계속 생활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매일 밤 미국 주식 생각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다음날 출근해서는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쳐다보면서 하루 내내 머릿속엔 주식과 코인 생각밖에 안 났다. 주말엔 끼니도 거르는 경우가 많았고, 가뜩이나 부실한 모발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다. 흰머리는 점점 더 온 머리를 덮기 시작했다. 얼굴 피부의 탄력도 점점 떨어지고, 이마와 눈가의 주름살은 점점 더 골이 깊어졌다.
안 되겠다 싶어 주식과 코인을 모두 매수한 평균가격보다 낮은 상태로 손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매도한 순간, 주식과 코인 가격이 수십, 수백 배로 폭등하는 상상을 하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적당히 자제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꿨는데 그는 한적한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평소에 산책 같은 걸 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느낌이었는데, 여유롭달까 편안하달까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좋은 느낌이었다. 공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산책로는 잘 정돈되어 있었고, 산책로 주변으로 심어놓은 가로수들은 모두 수령(樹齡)이 최소한 50년은 넘어 보였다. 공원치고는 나무가 많아 숲 속 길을 걷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졌지만, 사택 근처에 숲은 없었으므로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숲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몇 시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머리 위로 햇빛이 비치는 걸 봐서는 점심시간이 막 시작되었거나 끝나갈 즈음으로 판단되었다. 산책로 양쪽으로는 10m 간격으로 벤치가 있었는데 앉아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공원에는 그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히 점심시간이면 산책하는 사람들로 붐볐을 법한 공원인데도 신기하게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멀리 벤치에 혼자 앉아있는 노인을 발견했다. 멀리서도 노인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건 백발의 머리 때문이었다.
벤치에 앉아있던 노인에게 가까이 다가갔지만, 노인은 전혀 그가 왔다는 걸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노인의 키는 160cm 정도로 작은 편이었고, 나이는 대략 90세 정도 되어 보였고, 두꺼운 검정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상의는 겨울용 울 캐시미어 정장 재킷을 입고 있었고, 재킷 안쪽에는 털실로 짠 듯한 조끼를 입고 있었다. 바지는 상의와 같은 재질이었지만 색상은 달랐다. 구두는 편안한 스타일의 갈색 캐주얼 단화를 신었다.
노인은 벤치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 안돼! 더는 못 기다려주겠어. 지금 애플을 팔아야겠어."
노인은 벤치에 앉아서 스마트폰으로 주식거래를 하고 있는 듯했다. 분명 낮이었는데 노인은 미국 주식 중에 애플을 팔아야겠다고 중얼거렸다. 그는 뭐 이런 정신 나간 노인네가 다 있나 싶어 아무 말도 걸지 않고 그 자리를 지나쳐갔다. 그리고는 잠에서 깨어났다.
며칠 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미국 주식 중에 애플이 20% 넘게 급락한 것이다. 새로운 아이폰 제품출시 하루를 앞두고 악재가 발표되었다. 신제품에 탑재된 소프트웨어에서 다수의 악성코드가 발견되어 기존에 생산된 모든 제품을 전량 회수하여 포맷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거기다가 이번에 새롭게 적용한 카메라 디자인이 삼성전자의 갤럭시폰을 모방한 것이라는 국제소송이 제기되면서 법정 공방이 시작되었다는 뉴스도 함께 터져 나왔다. 물론 그는 애플 1주만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20% 넘게 급락해도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입진 않았지만, 꿈속에서 본 노인의 말대로 애플을 미리 팔았다면 손해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우연이라 생각했다. 주식이라는 게 원래 오르거나 내리거나 둘 중 하나라서 우연히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며칠 후 또다시 비슷한 꿈을 꾸게 되었다. 한적한 공원이었고, 산책 중이었다. 산책로 주변 벤치에는 아무도 앉아있는 사람이 없었고, 지난번 꿈에서처럼 멀리 백발의 노인 혼자만 벤치에 앉아있는 걸 발견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노인에게 접근했다. 노인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면서 또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머스크 녀석이 싫긴 하지만, 이건 지금 사놓으면 앞으로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은데. 얼마나 사들여야 하지?"
그는 순간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를 떠올렸다. 분명히 노인이 '머스크'라고, 지금 사놓으면 나중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는 얼른 테슬라 주식을 사고 싶었지만, 스마트폰을 사무실에 두고 왔다는 걸 기억해 냈다. 그는 공원을 빠져나오려고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노인이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척하며 계속 앞만 보며 달렸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꿈에서 본 걸 그대로 믿고 주식을 덜컥 사버리는 그런 무모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꿈에서 본 노인의 말은 믿어도 될 것만 같았다. 최근 테슬라의 여러 가지 사업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의 집중이 되는 상황이고, 조만간 대규모의 투자를 예고하고 있던 터라, 분명히 노인의 말처럼 지금 사놓으면 나중에 오를 거란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만큼의 돈을 더 투자해야 할지 감이 서질 않아서 며칠을 망설이고 있었었는데, 꿈속에서 들은 노인의 말이 모닥불에 기름을 들어부어버린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는 일과 중에 빌딩 1층 은행으로 가서 지난 연말 가입한 정기예금을 해약했다. 둘째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면서 생활비를 보내느라 한동안 저축을 못 하고 있었는데, 지난 연말 회사가 어닝서프라이즈를 달성하면서 직원들에게 특별 보너스를 지급해 준 덕분에 나중을 위해 정기예금에 가입해 두었었다. 그 돈을 그는 오늘 밤 테슬라를 매매하는 데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프리마켓에 전량을 매입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본 장이 시작되면서 고꾸라지는 경우를 몇 번 경험한 터라 오늘은 신중하게 매매하기로 다짐하고는 미국 시장이 개장하는 밤 10시 30분을 기다렸다.
기업의 실제 실적이 시장 예상치(컨센서스)를 상회하는 현상을 의미함. 이는 투자자들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긍정적 결과로, 단기적으로 주가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네이버 AI브리핑(2025.8)
예상한 대로 테슬라는 프리마켓부터 2%가량 상승 중이었다. 하지만 낮에 다짐한 대로 이번에는 본 장이 시작될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오늘따라 시간이 더디게 흘러갔다. 그는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매매 창을 계속 열었다가 닫았다가를 반복하면서 기다리다가... 드디어 본 장이 열렸다. 예상한 대로 초반 10분 동안은 1% 내외의 등락이 반복되었다. 1%였다가 잠깐 눈을 돌렸다 다시 쳐다보면 3%가 되고, 3%였다가 금방 2%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럼 다시 1%로 떨어질 때 분할 매수하기로 하고는 1%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설정해서 매수 버튼을 눌렀다.
"매매가 접수되었습니다."
기계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스마트폰에서 들려왔다. 그리고는 2분 정도 지났을 때.
"매매가 전량 체결되었습니다."
아직은 안심할 수가 없었다. 테슬라는 워낙 변동성이 심한 종목이어서 이러다가도 금방 급락할 수도 있다. 계속 모니터 해야만 한다. 역시나 1%에 매수한 가격이 -1%로 파랗게 음전하더니 -5%까지 순식간에 떨어졌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그 늙은이 말만 믿고 덜컥 그 큰 금액을 써버리다니. 정말 한심하군! 그런 식으로 주식을 하면 너도 네 아버지처럼 실패할 거야!'
자신이 너무 한심하단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난 항상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뭔가 잘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잘못되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이제는 겁이 난다. 이제 은퇴도 2년밖에 안 남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무 막막하기만 하다. 내게 그 답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
술 생각이 났다. 다행히 냉장고에 먹다 남은 소주 PET 반 병이 있었다. 안주 없이 그대로 입에 물고 소주를 들이켰다. 오늘따라 소주가 썼다. 몇 번 나눠 마시고 나니 금방 바닥이 드러났다. 체육복 차림으로 슬리퍼를 신고는 사택 앞 편의점으로 나갔다. 밤늦은 시간인데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이 여러 명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는 원래 태어날 때부터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없어서 맥주 한 잔을 마셔도 금방 얼굴이 검붉게 닳아 올랐다. 그런 자신의 얼굴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혼자 술을 마신 날에는 웬만하면 외출을 하지 않는데, 지금은 소주가 너무 당겼다. 급하게 소주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안주도 없이 다시 소주 나발을 불었다. PET 절반 정도를 마시고는 머리가 핑 돌았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온몸은 두드러기가 난 것처럼 가려웠고, 속은 울렁거렸다. 어지러웠다. 눈꺼풀의 무게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연거푸 하품이 나왔다. 졸음이 쏟아졌다. 그는 체육복을 입은 채로 그대로 소파에 고꾸라지듯(플러스 3%에서 마이너스 5%로 급락하는 테슬라처럼)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다음 날 새벽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습관처럼 소파 주변을 더듬어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미국 주식시세를 확인했다. 테슬라의 주가를 확인하고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무 급하게 일어나서 순간적으로 온몸이 휘청거려 쓰러질 뻔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잠들기 전 -5%로 확인했던 테슬라의 주가는 그날 새벽 종가기준으로 32%나 급등했다. 그는 1%에 매수를 했으므로 31%의 수익을 냄 셈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미국 나스닥 관련 뉴스 중에 테슬라에 관한 기사를 찾았다. 그리고는 밤새 왜 주가가 폭등했는지 이해했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고 본인의 재산 일부를 정치자금으로 기부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던 거였다. 현재 바이든 정부에서는 테슬라가 추진하고 있었던 로봇 택시사업이 안전상의 이유로 사업허가가 보류되었는데,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경우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기대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그가 1%에 매수한 금액이 천만 원이었으니까 그날 새벽에 번 수익금은 투자한 금액의 31%인 310만 원이다. 총 2천만 원 중에 절반을 분할 매수한 거니까 전량 매수했다면 수익금은 두 배인 610만 원이 될 뻔했다.
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밤마다 꿈속에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마치 좋은 정보이니 들어보라는 듯이 항상 누구라도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그날 오르거나 내리는 종목을 암시하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그 정보를 활용하여 꽤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캐나다에 유학을 가 있는 딸의 몇 년 치 생활비를 보내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돈을 모았다. 그러자 욕심이 생겼다.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서 은퇴 후 부자로 살고 싶었다. 이번에는 꿈속에서 만난 노인에게 직접 말을 걸어서 어떻게 하면 주식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저, 어르신."
"누구신지?"
"네. 저는 어르신 덕분에 주식으로 돈을 좀 번 사람입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주식으로 돈 벌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신 분이네요."
"어르신, 제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러는데 혹시 어떻게 하면 주식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지금처럼 꾸준히 좋은 종목을 골라서 장기투자를 하면 된답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올해로 나이가 58세입니다. 2년 뒤 정년퇴직을 하는데, 장기투자로 부자가 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여쭤보는 겁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정말 주식으로 단기간에 부자가 되고 싶은 게요?"
"네. 그 방법을 알려주신다면 그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럼 거래를 하나 제안하지요. 제가 당신을 단기간에 부자로 만들어줄 테니, 저에게 당신의 10년이란 시간을 주십시오."
"10년이요?"
"당신이 10년 동안 벌어야 할 돈을 하루 만에 벌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음, 10년이라... 뭐, 퇴직 후엔 특별히 벌이가 없으니까 나쁜 거래는 아닌 것 같네요. 새로 직업을 찾아 열심히 돈을 번다고 해도 10년 동안 큰돈을 벌어 부자가 될 자신은 없으니까... 그렇게 하시죠, 어르신!"
그는 출근하자마자 본인이 빌릴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을 은행에서 대출했다. 그리고 미국 주식시장이 개장하자마자 노인이 알려준 종목을 매수하고는 곧바로 주식 매매 창을 닫았다.
노인이 알려준 종목은 무려 1,000%나 상승했다. 그는 총 2억 원을 대출해서 투자했고, 그날 얻은 수익금은 무려 20억 원이었다. 너무나도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그는 이제 회사에 출근할 이유가 없어졌다. 바로 차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을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평소 업무 때문에 밤늦은 시간에 걸어도 바로 받는 분인데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회사를 그만두는 마당에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그동안 감사했다는 작별인사와 사직(辭職)처리를 부탁하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는 그 길로 차를 몰고 평택 집으로 올라왔다.
아파트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는데 잘못 눌렀다는 메시지가 계속 나왔다.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열어준 덕분에 무사히 현관문을 통과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문 앞에 도착했다. 평소 같으면 키우던 갈색 푸들이 짖는 소리가 들렸을 텐데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새 집안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의 위치가 바뀐 것 같지는 않은데 뭔가 세월의 흔적 같은 게 느껴졌다. 벽지의 색깔이 조금 어두워졌고 소파 가죽에서 낡은 느낌이 났다. 오랜만에 집에 와서 그런 걸 수도 있겠고, 회사를 그만둔 탓에 뭔가 심리적으로 변화가 생긴 걸 수도 있겠단 생각에 그럴 수 있다고 자신을 이해시켰다. 그리고는 아내의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
소파에 앉아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났다. 거실은 조명을 켜지 않아서 어두워졌고, 베란다 창밖으로 해가 뉘엿뉘엿 지평선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저녁 7시쯤 되자 도어록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아내가 들어왔다. 그런데 아내는 안 본 사이에 늙어버린 것 같았다. 얼굴엔 주름이 깊어졌고, 머리카락은 반 백발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를 보고 깜짝 놀라더니 그리고는 갑자기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는 영문을 몰라 당황했다. 혹시나 퇴근하는 길에 무슨 봉변을 당한 건지, 일단은 울고 있는 아내를 달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하고는 아내를 부축해서 소파에 앉혔다.
식탁 위에 있는 각 티슈를 건네주면서 퇴근길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아내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가까이에서 보니 아내의 얼굴은 10년은 늙어 보였다.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늙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을 정도로 자신의 눈을 의심했지만, 그의 눈앞에 앉아있는 아내는 분명 10년은 늙어버린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아내가 말문을 열었다.
"당신 도대체 그동안 어디에 있었어?"
"무슨 소리야, 어디에 있었냐니? 갑자기 연락도 없이 불쑥 집으로 올라온 건 미안한데, 당신 지금 하는 말이 난 잘 이해가 안 되는데. 그리고 당신 얼굴이 왜 그래? 한 10년은 늙어버린 것 같은데. 얼굴에 주름도 그렇고, 흰 머리카락도 그새 엄청 많아졌고."
아내는 한참을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더니 그제야 마음이 진정된 듯 평소와 같은 표정을 되찾았다.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가 정수기에서 냉수를 한 잔 받아 벌컥벌컥 마시고는 다시 소파 쪽으로 다가왔다.
"여보, 그동안 잘 지냈어요? 그동안 왜 내 전화를 안 받았어요?"
"내가 당신 전화를 안 받았다고?"
그는 스마트폰의 부재중 수신된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하지만 아내의 부재중 전화번호는 없었다.
"이것 봐! 당신 번호가 없잖아.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당신 전화를 안 받을 리가 없잖아. 아까는 갑자기 왜 운 거야?"
"당신 10년 동안 도대체 어디에서 뭘 하면서 지낸 거예요?"
"10년 동안?"
"당신이 연락을 끊고 사라진 게 2025년이고, 올해가 2035년이니까 딱 10년 지났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를..."
그는 아내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단 대구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본 자신의 손등이 평소보다 너무 쭈글쭈글해 보였다. 핸드크림을 자주 안 발라서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는 편인데,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하고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었다. 그런데 다시 손등을 쳐다보니 정말 60대 후반의 손등처럼 주름이 쭈글쭈글하고 시커먼 검버섯도 여러 개 보였다.
"여보, 우리 꽁이 어디 있어?"
"꽁이요? 죽었죠, 5년 전에요."
"죽었어? 우리 꽁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