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단편소설
"이렇게 떠나가버릴 너를 보려 하는 것이 아니야. 하지만 나는 기다려 네가 다시 돌아올 날까지. 이곳에서"
출처: <하여가(何如歌)> 가사 일부분, 서태지와 아이들, 1993.6.21. 발매
대학교를 입학한 1993년, 부산 구포에서는 승객 276명과 승무원 5명이 탑승한 무궁화호 열차가 전복되어 78명이 사망하고 19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전남 해남에서는 아시아나 보잉 737 여객기가 운거산에 추락하여 65명의 사망자와 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는 110톤급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침몰하여 292명이 사망했다.
출처: 네이버 무명인님 블로그 <History I write> (2025.8)
하지만 대구 동성로 지하상가에서는 항상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김건모의 <핑계>, 부활의 <사랑할수록>, 김종서의 <겨울비> 같은 유행가가 흘러나오던 해이기도 했다.
출처: 나무위키 검색(2025.8)
대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까지 내가 과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은 유일하게 과대표였던 2학년 세환 선배뿐이었다. 우리 과는 해마다 4학년 선배들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를 열었는데, 파트너 없이 참석하면 안 된다는 전통이 있었다. 선배에게 파트너가 없으니 졸업파티에 참석을 안 하겠다고 했더니, 너처럼 파트너가 없어서 참석을 안 하겠다는 사람이 또 있다며 소개팅을 주선했다.
소개팅 장소는 동성로에 있는 <첼로>라는 카페였다. 주말이라 그런지 카페 안은 많은 사람으로 인해 떠드는 소리로 어수선한 시장 같았다. 흘러나오는 음악은 평소에 내가 즐겨 듣는 노래에 비해 비트가 너무 빨랐고, 실내는 환기가 전혀 되지 않는지 담배 연기가 유난히 자욱했다. 대구에서 맞는 겨울이 이제 막 시작되려고 하던 쌀쌀한 토요일이었다.
소개팅에 나온 남자는 키 175센티미터에 몸무게가 53킬로그램인 마른 체형이었다. 얼굴은 동글동글한 귀여운 스타일에 얼굴에 비해 크기가 좀 커 보이는 검은 뿔테안경을 썼다. 애니메이션 <마녀배달부 키키>에 나오는 '톰보' 같은 느낌의 남자였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아서 오빠라고 부르기로 했다. 동안(童顏)이라 같이 있으면 항상 내가 한두 살 정도 많아 보였다.
우리 과 졸업파티는 항상 학교 앞 카페를 통째로 빌렸다. 파티는 저녁에 시작해 밤늦게 끝났다. 오빠와 나는 파티가 시작되기 10분 전에 카페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파티가 시작되는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오빠는 빨간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그때는 그게 유행이었다. 졸업파티는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간단하게 서로 인사를 하고는 카페 안으로 급하게 들어갔다.
어두운 실내조명 탓인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나는 걸음을 약간 주춤했는데, 오빠가 내 손을 부축하듯 잡고는 성큼성큼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인 카페 안은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 지하실 특유의 퀴퀴한 곰팡내와 자욱한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졸업파티는 우리 과의 전통이고 세환 선배의 성의를 봐서라도 끝까지 앉아있으려 했지만, 이런 분위기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미안하지만 오빠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나가려고 했는데, 마침 장기자랑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오빠가 호명되어 무대에 나가더니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빠가 부른 노래는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과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이었다. 내가 평소에 즐겨 들었던 노래였다. 특별한 기교 없이 담백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쩌면 그 순간부터 오빠가 좋아지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빠는 평소에도 노래를 자주 부른다고 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는 대학교 2학년이 되었다. 오빠와의 관계도 점점 깊어졌다. 그날 우리는 시내에서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으면서 술을 마셨고, 나는 술기운에 용기를 내어 오빠를 내 자취방에 초대했다. 나의 예상대로 그렇게 우리는 첫날밤을 보냈다. 나도 거의 처음이라 서툴렀지만, 오빠도 처음인지 서툴렀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가자 우리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오빠는 대학교 3학년이 되면서 야학교사를 시작했다. 대학교 강의가 끝나면 야학에 가서 밤늦게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학생들을 돕는 일이니, 나는 오빠에게 어린애처럼 만나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릴 수도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할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고, 이혼 후 혼자 사는 엄마에게서 어느 정도의 생활비는 받고 있었지만, 대학교 등록금만큼은 내 손으로 벌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밤마다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오빠와 나는 평일엔 각자 할 일이 있어서 만날 시간이 없었고, 우리는 주로 주말에만 만났다. 오빠와 주말에 만나면 시내에서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나서, 커피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고는 자연스럽게 내 자취방으로 갔다. 자취방에서 우리는 평일에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인지 섹스를 밀린 숙제처럼 몰아서 했다. 오빠와 만나면서 특별히 피임을 신경 쓰지 않았다. 임신하게 되더라도 걱정할 게 없다는 생각이 어쩌면 내게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오빠와 결혼하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반듯하게 자란 오빠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적인 대학생이고, 이대로 대학을 졸업하면 큰 어려움 없이 취직할 거고, 이변이 없는 한 나와 결혼하게 될 것만 같았다.
나는 오빠와의 만남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혹시나 오빠가 내 과거를 알게 되면 나에 대한 감정이 변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사실 나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과거가 있다. 언젠가는 오빠에게 말해야지 하면서도 선 듯 말하기를 주저하게 되는. 사실 나는 처녀가 아니다. 어쩌면 내가 처녀가 아니란 걸 오빠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밤 이불 위에 붉은 핏자국이 없었으니까. 나는 과거에 내가 원하지 않는 남자에게 순결을 빼앗겼다.
내가 중학생 때 아빠가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어린 두 동생은 아빠와 계모(繼母) 밑에서 자라야만 했다. 나는 그런 아빠와 같이 살기 싫어서 친척 집을 전전하다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혼자자취를 시작했다. 엄마는 이혼 후 혼자서 다방을 운영하셨는데, 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에 엄마에게 열 살 연하의 남자친구가 생겼다. 엄마는 가끔 나를 보기 위해 자취방에 오셨는데, 그때마다 그 연하의 남자친구도 함께 왔다. 그러다 그 좁은 자취방에 셋이서 자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어느 날 한밤중에 엄마의 남자친구가 혼자 술에 취해 나타나서는 내 자취방에서 자고 가겠다고 막무가내로 동네에서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재워주게 되었는데, 다음날 새벽 엄마의 열 살 연하의 남자친구는 자고 있는 나를 성폭행했다. 엄마에게는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엄마는 그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고, 아빠와 이혼 후 혼자 다방을 운영하면서 연하의 남자친구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성폭행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엄마가 받을 충격이 너무 클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말수가 적고 어두운 아이로 변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친하게 지낸 친구가 거의 없었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과대표인 세환 선배를 제외하고는 연락처를 알고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내가 오빠와 연애를 할 수 있었던 건 참 신기한 길이다.
나는 계속 내 과거를 오빠에게 감출 수만은 없다고,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고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서 이야기했다. 오빠는 내 얘기를 다 듣고는, 아무 말없이 꼭 안아 주었다.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오빠가 내 과거를 다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런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며칠 뒤에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오빠가 자취방에 오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내년에 대학교 4학년으로 올라가고, 취업을 위해 공부하느라 만날 시간이 안 난다는 핑계를 댔지만, 우리 집안이 평범하지 않다는 (아빠는 재혼해서 계모와 두 동생을 데리고 살고 있고, 다방을 운영하는 엄마에게는 열 살 연하의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과 내가 처녀가 아니라는 (엄마의 열 살 연하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에 오빠가 부담스러워한다는 게 느껴졌다. 그전엔 안 그랬는데 사소한 말다툼도 잦아졌다.
말은 안 하지만, 나를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하는 게 보이는 오빠를 계속 만나는 게 나도 편하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 사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아르바이트하다가 우연히 만난 낯선 남자와 모텔에 갔다. 그리고 오빠에게는 다른 남자가 생겼으니 헤어지자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어느 날 저녁 길을 걷다가 뒷모습이 오빠와 비슷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날 밤 오빠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한밤중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나 오빠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지만, 오빠는 신호가 가자 바로 전화를 받았다. (나중에 오빠에게 들은 얘기인데 평소에 모르는 전화는 잘 받지 않는데, 그날따라 이 전화는 무조건 받아야 하는 중요한 전화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오빠 나야, 은주."
"... 은주?"
"그래 나야. 내 목소리 벌써 까먹었어?"
"...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오빠의 목소리는 예전에 들었던 20대 목소리가 아니었다. 세월이 그만큼 지났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약간 슬펐다. 내가 좋아했던, 졸업파티에서 들었던 특별한 기교 없이 담백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이제는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한밤중에 오빠와의 25년 만의 통화로 나는 잠시 예전 대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빠와 대화하면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빠는 지금 아내와 떨어져 혼자 지내고 있는데, 아내와는 잠자기 전인 밤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에 마지막 전화통화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오빠의 아내가 잠든 이후인 밤 11시 30분에서 12시 사이에 전화를 걸었다.
"오빠, 요새는 글 안 써?"
"글?"
"오빠 꿈이 소설가라고 했었잖아."
"... 그랬었나?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나를 모델로 하는 소설을 써준다고 했었는데, 기억 안 나?"
"내가 그랬었나?"
"다시 예전처럼 소설을 써보는 건 어때?"
"글 쓰는 걸 너무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될까? 요즘은 책도 잘 안 읽는데..."
"오빠 목표가 신춘문예 당선되는 거였잖아."
"그땐 내가 철이 없었지. "
"아니, 내가 볼 땐 오빠는 충분히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지금은 사는 게 바빠서 잠시 잊고 있었던 거고, 오빠가 이제 슬슬 써 볼까 하고 시작만 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
나와의 대화가 오빠를 자극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밤 나와의 전화통화 이후로 오빠는 다시 소설을 쓰기로 했다. 예전에 나와 약속한 대로. 나를 모델로 하는. 퇴근 후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운동도 열심히 해서 체력도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오빠가 최근에 갱년기를 겪고 있었는데, 나와 통화하면서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다고 했다. 나와의 통화가 오빠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 흐뭇했다.
"오빠, 나야."
"그래, 기다리고 있었어."
"그럼 혹시 나 쓴 거야?"
"응. 다 썼어."
"그럼 결말이 어떻게 됐는지 물어봐도 돼?"
"너를 모델로 해서 쓴 글인데 당연히 알려 줘야지. 지난번에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주인공이 자살하려고 부산으로 가는 케이티엑스에 올랐어."
"맞아. 주인공은 해운대 콘도에 도착했어. 자살하려고 콘도 옥상으로 올라갔는데, 옥상에서 주인공처럼 자살하려고 올라온 남자를 만난 거야. 처음엔 무시하려고 했는데, 자꾸 신경이 쓰여서 옆에 가서 말을 걸었지. 남자는 주인공을 경계하면서 계속 무시했어."
"당연히 그 남자는 죽을 마음을 먹었으니 주인공에게 관심이 없었겠지."
"맞아. 주인공은 그 남자 옆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어. 그랬더니 그 남자가 조금씩 주인공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그랬을 거야. 그 남자."
"그 남자는 그제야 자기가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주인공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어. 주인공도 그 남자에게 자신이 왜 죽으려 하는지 말했지. 한참을 얘기하고 났더니 죽고 싶지가 않은 거야. 그 남자도 마찬가지로 죽고 싶다는 마음이 다 사라지고 주인공이 예쁘다고 생각했어."
"주인공도 남자가 꽤 잘 생겼다고 생각했고."
"응. 두 사람이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에 어김없이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거지. 해운대 콘도 옥상에서 바라보는 부산 앞바다 일출 장면이 펼쳐지는 거야."
"기억나. 우리가 옛날에 같이 봤던 그 장면!"
"맞아. 실눈을 뜨고 겨우 쳐다봐야 할 정도로 눈이 부신 아침 해."
"오빠 얘기를 듣고 있으니까 마치 그때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야."
"나도 그래. 계속 들어 볼래?"
"응. 오빠. 끝까지 듣고 싶어."
"알았어. 소설의 장면은 해운대 콘도 옥상에서 부산역 앞 광장으로 바뀌고, 두 사람은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해. 그리고는 각자의 집으로 가는 케이티엑스에 오르는 장면으로 끝이 나지."
"다행이다. 주인공이 죽지 않아서."
"응. 그리고 너 해피엔딩 좋아하잖아."
"고마워, 오빠."
"내가 고맙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걸 네가 기억나게 해 줬잖아. 네가 아니었으면 아마 난 평생 소설 따위 쳐다보지도 않았을 텐데."
한 해가 저물고 또 다른 한 해가 시작되었다. 1월 1일 신문에 신춘문예 결과가 발표되었고, 오빠가 응모한 단편소설이 당선되었다. 나는 그 순간 기뻐하는 오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오늘 밤 11시 30분에서 12시 사이에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주말에 해운대 콘도에서 만나자고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빠가 소설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어서, 그 소설의 주인공이 나여서 기뻤다.
밤 11시 30분이 되었다.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신호가 가지 않았다. 몇 번을 계속 눌러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오빠는 분명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건데, 빨리 오빠와 통화해야 하는데 나는 지금 전화를 걸 수 없다. 전화기의 문제인지, 어제까지 통화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일 아침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내일 아침에 전화국에 고장신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몇 시간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든 것 같았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나는 누군가의 방 안에 있었다. 나는 침대 머리맡에 서서 누군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방은 창문에 커튼이 쳐져 있어서 실내가 무척이나 어두웠는데도,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이 오빠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오빠의 이름을 불러 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동안 내가 잊고 있었던 지난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해운대 콘도에서 뛰어내렸다, 이미 20년 전에. 엄마의 열 살 연하 남자친구는 엄마와 결혼해서 나의 계부(繼父)가 되었고, 그 남자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엄마에게 얘기하면 다 죽여버리겠다고 나에게 협박까지 했다.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엄마가 받을 충격이 너무 클 것 같았다. 계부에게 밤마다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계속 혼자 속앓이만 하다가 결국엔 자살만이 최선이란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자살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계부의 자식을 임신했기 때문이었다. 피임을 나름 한다고는 했는데도 임신을 피하지 못했다. 내가 자살하면 엄마와 내 동생들은 슬퍼하겠지만, 그에게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했다. 비록 계부의 자식이지만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만 불쌍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대로 이렇게 더는 살 수 없었다.
오빠가 쓴 소설의 주인공이 돼서 오빠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남고 싶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지만, 저승에서 이승으로 밤마다 전화를 걸었고, 우리는 다시 연결되었다. 저승에 있는 나와 이승에 있는 오빠가. 운명(運命)처럼. 다행스럽게도 오빠가 다시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나는 소설 속 여주인공이 돼서 영원히 기억되었다. 사람은 죽는다는 게 슬픈 게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슬픈 거라고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소설이라는 건 어쩌면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쓴 추억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내가 제일 좋아했던 노래는 가수 진숙화와 성룡이 부른 <명명백백아적심(明明白白我的心)>이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웠었는데, 노래 가사가 맘에 들어서 오빠에게 불러 달라고 적어준 적이 있었다. 오빠가 부르는 이 노래를 듣지 못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다시 오빠와 만날 수만 있다면 이번엔 꼭 오빠가 부르는 이 노래를 듣고 싶다. 특별한 기교 없이 담백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1992년 여명, 관지림, 장학우가 출연한 영화 <폭열도시(暴烈都市)>의 삽입곡
"제 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어요(명명백백아적심). 진정한 사랑을 갈망하고 있지요(갈망일분진감정). 예전에 사랑 때문에 너무나 아파했었죠(증경위애상투료심). 왜 달콤한 꿈은 쉽게 깰까요(위십요첨밀적몽용역성). 당신은 따듯한 눈을 가졌고(니우일쌍온유적안청), 당신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졌어요(니유선해인의적심령). 당신이 괜찮다면 내가 다가갈 수 있게 해 주세요(여과니원의청양아고근). 당신은 내 마음을 알 수 있을 거예요(아상니회명백아적심). 별빛은 찬란하고 가벼운 바람이 불어도(성광찬란풍아경), 가장 고독한 것은 여인의 마음이에요(최시적막녀아심). 옛사랑에 이별을 고하고 상처를 어루만져 주네요(고별구일련정파나창상무평). 앞으로 다시는 울지 않을 거예요(불재류루도천명). 전 당신의 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어요(아명명백백니적심). 진정한 사랑을 갈망하고 있지요(갈망일분진감정). 전 예전에 사랑 때문에 너무나 아파했었죠(아증경위애상투료심). 왜 달콤한 꿈은 쉽게 깰까요(위십요첨밀적몽용역성)"
출처: 네이버 쪽빛날개님 블로그 <언제나 그대 있는 그대로.....> (20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