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을 하며 많은 생각을 깊이 하는 것은 금물이다.
회사생활을 열심히 하며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꿈도 허상이다.
현 직장 입사 후 2년의 기간제와 5년 8개월의 특수 업무직을 지내며, 내가 뼈저리게 깨달은 바다.
간호사란 이유로 입사 동기는 당연한 정규직 전환과 승급도 모두 제외되었지만, 열심히 하면 기회가 올 거란 믿음과 "이것저것 일을 많이 하다 보면 정규직이 될지 알아?" 하는 상사의 권유에 나는 겸직까지 했었다. 간호사가 안된다면 정규직이 가능한 서무로라도 가겠다고 했지만, 모두 무산됐다. 그 이유 또한 나는 간호사 이기 때문이었다.
임상이 아닌 회사에서 간호사의 위치가 더욱더 선명해졌다. 생산성은 없지만 법적으로 구색을 맞춰야 해서 만들어 놓은 자리. 그게 산업 간호사였다.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미친 듯이 최선을 다했다. 회사 판촉에도 앞장서 사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내일 이외의 일도 해야 했으므로 쉴 새 없이 뛰었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고, 나의 몸과 마음은 뿌리 깊은 자괴감과 발버둥 치면 칠수록 빠져드는 우울의 늪에 잠식되어 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 인생이 이 회사에서의 정규직만이 다가 아니란 것.'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가지지만, 나는 가지지 못한 정규직만을 생각하며, 상대적 발탈감에 찌들어 살아왔던 지난 시간이 너무 아깝고, 나 자신이 측은했다.
그 이후로 나는 정규직에 대한 마음도 접고, 다른 직장을 찾았다.
완전히 마음이 돌아서니 기회는 아이러니하게 찾아왔다.
"간호사 정규직 되게 TO 내느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는지 몰라. 고맙다고 얘기해야 돼~"
본인이 원한적 없는 호의에도 사람들은 대가를 바란다. 생명의 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며칠 전 직원들의 단체행동에 화가 난 상사가 "예의"를 들먹여 가며, 직원들의 행동을 지적하는 PPT 자료를 직원들 메신저로 뿌렸다. '예의'란 아랫사람만이 윗사람에게 지켜야 하는 덕목이었던가? 한 번도 예의적이고, 바람직하며, 올바른 처우를 받아 본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나나 되니까. 다 해결을 하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어림도 없었어."
하며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상사를 보며, 마음속 저 깊은 무의식에 파묻혀 화석이 되어버릴 법한 무수한 직장의 의미들이 다시금 의식을 뚫고 선명해진다.
"아... 네... 그렇죠."
어제 같았던 나의 수많은 과거의 경험들이 있음에도, 상사의 말에 영혼은 없으나, 긍정적인 맞장구 추임을 넣고 있는 내가... 나는 오늘 더 낯설다.
'나도 이제 닳고 달았구나.'
맹수가 드글거리는 정글 같은 삶에 최적화된 수동적인 직장생활.
간호사를 하며 소소하게 느껴 왔던 직업의식, 사명감, 명예란 의미가 다시 한번 무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