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by 발돋움

20대 딸의 항암치료를 앞둔 A직원과 커피를 두고 마주 앉았다.

뇌하수체에 생긴 양성 종양은 점점 자라며 딸의 호르몬 분비를 막았고, 그 사실을 1년 동안 생리를 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해서야 직원은 알아챘다. 생리불순은 흔한 일이고, 아무런 증상이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대학생 딸에게 누가 그런 일이 생길 것이라 예견할 수 있을까? A직원의 고심은 그 치료가 항암 밖에 없다는 사실과 항암치료로 인해 영구 불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더욱더 깊어졌다.

침울한 A직원에게 나는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것이 직업의식인지, 강박관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나와 가깝게 지내는 동료이니 그 마음이 더했다.


"A님 제가 최근에 읽은 책이 있는데, 거기서 그런 내용이 나와요.

'세네카'라는 학자에게 친구의 편지가 도착해요. 그 친구는 자신이 소송을 당했고, 그 일로 인해 엄청난 걱정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내용이었죠. '세네카'는 친구에게 이렇게 답장을 보내요. '만약 자네가 근심을 날려버리길 원한다면 자네가 두려워하는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게'라고. 그 상황을 이성적으로 헤아려 보면 근심하고 있는 상황보다는 훨씬 덜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그냥 책 내용에 그런게 적혀 있더라고요."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A직원은 '그래?' 하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B직원이 건강관리실로 들어섰다. 최근 초등학교를 졸업한 자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자 나도 그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요즘은 그런 것 같아. 애가 공부를 너무 잘해서, 뭔가가 막 뛰어나서 좋은 게 아니고, 그냥 내 아이가 옆에 있다는 자체가 힘이 되는 것 같아"

별 말없이 듣기만 하던 A직원은 마스크를 챙겨 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B직원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뜨며 '수고하세요~'하며 건강관리실을 나섰다.


모두 나가고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기 위해 컴퓨터를 들여다보던 나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바쁘게 두들겨 대던 키보드를 멈추고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앞에서는 불임과 항암을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를 하고 곧이어 아이가 세상 중요한 존재임을 이야기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나를 발견하고 만 것이다.


'내가 과연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할 수 있는 사람이긴 한 걸까?'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로 A직원은 위로는 커녕 평생 자녀 없이 살아갈지도 모르는 딸 걱정이 눈덩이처럼 불어 났을 수도 있다.


말은 글보다 어렵고 힘들다는 명제가 더욱 뚜렷해졌다.

그리고, 나는 말하기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그림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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