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받침대가 필요했다.
경추디스크가 생기면서 바른 자세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깨닫기도 했거니와, 컴퓨터 작업을 하다 보면 낮은 모니터 높이에 목과 어깨가 결려왔다. 때마침 사무실에서 사무용품을 구입한다는 말에 냉큼
"모니터 받침대도 사줘요!"
하며 학급 회의 때 내 말은 꼭 들어줘야 된다는 학생처럼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받침대 말고 거치대 한번 써볼래? 나한테 있는데."
"거치대요?"
선배계장님이 책상 밑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모니터 거치대는 책상에 고정해 로봇팔처럼 두 모니터를 고정시켜 자유자재로 모니터 위치와 높이도 조절할 수 있는 신박한 아이템이었다.
"오~ 좋아요 할래요."
"근데 설치하는 게 좀 어렵지 않겠어? 남자 직원들한테 부탁해"
설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선배 계장님에게 여유 있게 웃으며 "저 이런 거 설치하는 거 좋아해요"하며 상자를 끌어안은 체 건강관리실로 냉큼 돌아왔다.
나는 뭔가를 조립하고, 만들고, 설치하고, 고치는 일이 너무너무 재밌고 신난다. 공구함에 처음 몽키, 스패너, 드라이버, 니퍼, 망치, 렌치를 구비해 놓고, BOSH전동드라이버까지 채워 놓았던 날 마음이 어찌나 든든하던지 세상 모든 걸 다 고쳐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간호사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리모델링을 하거나, 엔지니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상을 싹 치우고, 상자를 펼쳐 사용설명서를 확인했다.
'음.... 책상에 먼저 고정장치를 고정하고, 거치대를 설치하고, 모니터를 고정하면 되겠군...'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뚝딱뚝딱 설치가 마무리되어 갈 때즈음 설치도 못하고 낑낑거리고 있을까 봐 과장님이 건강관리실을 슬쩍 방문하셨다.
"어? 벌써 다 설치하셨네요? 남자 직원들도 처음엔 좀 헤매는데... 설비보전팀으로 전향을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하며 의아해하셨다.
남자 일과 여자 일이 원래 정해져 있지는 않을 텐데.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남자일과 여자일을 슬그머니 분리해 놓는다.
며칠 전 사무실에서 여러 직원들과 서류작성을 하고 있는데, 새로 부임해 오신 공장장님이 내 옆으로 슬쩍 다가오셨다.
"비서가 오늘 휴가니까. 사무실에 자주 올라와서 볼일을 좀 보고 해야 할 것 같은데."
공장장님의 말은 서류를 작성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공허하게 메아리쳤고, 그 메아리엔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 말은 누가 봐도 나에게 한말이었고, 비서가 없으니 손님이 오면 비서대신 손님접대를 하고 커피를 타란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대답할 수 없었다.
손님접대는 손님이 온 파트에서 지금까지 해왔고, 여직원이 아니라도 커피는 다 탈 수 있다. 다른 직원들도 심지어 이전에 있었던 공장장님도 다 그렇게 해왔던 일인데 새로 부임해 오신 공장장님은 아직도 여자일과 남자일에 대한 본인만에 기준이 확고하신 듯했다.
반응이 없자, 공장장님은 커피잔을 들고 황급히 다른 직원에게 이야기를 걸며 화제를 돌렸다.
나는 회사에서 남자직원들과 동등하게 일하고 있다. 눈이 오면 다 같이 재설장비 챙겨 눈을 쓸고, 염화칼슘을 뿌렸고, 무거운 물건도 누군가 들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카트에 들어 올려 온 회사를 끌고 다니며 씩씩하게 정리해 왔다. 그리고, 전등교체며, 고장 난 문고리 등등도 모두 공구를 얻어와 내가 직접 수리했다.
그런데, 왜 내가 공장장님에겐 커피를 타야 하는 가장 적절한 사람이었던 건지...
모니터는 아주 깔끔하게 달렸다. 없던 업무 효율도 막~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