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진짜 고아네...

어머니를 여읜 직장 선배 이야기.

by 발돋움

드르륵. 드르륵.

저녁 8시... 아버지 생신으로 친정 식구들이 모두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방금 집에 들어온 상황이라 미쳐 벨소리로 변경되지 못한 휴대전화가 식탁 위에서 조용히 몸무림 친다.

설거지를 하다 물 묻은 고무장갑을 치켜세우며 곁눈질로 식탁 위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했다.

[OO언니]


회사 언니가 저녁시간에 무슨 일인가 싶어 오른쪽 고무장갑을 벗어 싱크대에 걸쳐 놓고 바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네~ 언니.]

[A 계장님 어머니 돌아가셨어.]


3일 전 어머니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요양병원에서 일반병원으로 옮기시는 일을 나와 의논했었다.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다.


[언니. 벌써 영안실로 내려가셨나요? 같은 병원 영안실이죠?]

[아니 아직 병실. 영안실에서 준비할 게 있나 봐]

[네. 언니 지금 갈게요.]


고무장갑을 싱크대에 마저 벗어 두고 옷장을 열어 검은 옷으로 찾아 갈아입었다. 평소 계장님의 상황을 알고 있었던 신랑은 얼른 가보라는 말과 함께 위로 잘 해 드리라는 말도 덧붙였다.


스무 살이 갓 넘은 시기에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가장이 되어버린 계장님은 신장투석을 받는 동생과 암진단을 받아 투병 중인 어머니를 돌봐 오셨다. 집에서 쓰러져 계신 어머니를 발견하고 뇌경색을 진단받은 지 6개월 만에 어머니는 계장님의 곁을 떠나셨다. 그 사이 둘째 아이마저 뇌하수체 종양을 진단받아 항암치료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주위의 안타까움은 더했다.

계장님은 그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내가 주저앉아 펑펑 울어 버리면, 지금 까지 버텨 오던 게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 같아서. 나는 못 울겠어...]


늘 혼자 결정하고, 혼자 해결하고, 혼자 참아내야 했던 계장님의 정신적 버팀목인 어머니 마저 돌아가셨으니, 나는 계장님에게 얼른 달려가 지지대든 버팀목이든 무언가가 되어 옆에 있어 줘야만 할 것 같았다.


부리나케 달려간 병실에선 아직 영안실로 내려가지 않은 채 임종을 맞이한 어머니와 계장님, 그리고 계장님 동생이 함께하고 있었다. 슬퍼하며 울부짖는 두 자녀를 양 옆에 두고 조용히 눈을 감은 어머니의 표정은 참 평안해 보이셨다.

콧줄, 혈압계, 링거줄, 소변줄... 생명을 이어 붙이기 위해 몸에 주렁주렁 달고, 걸고 있던 외부와의 연결 줄이 필요 없어지면서 이승에서의 고통과 실음도 다 잊어버리신 걸까?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 수없이 마주한 주검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모두 깊은 잠에 빠져 든 듯 고요하고, 편안해 보인다고.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지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승이 지옥일지도 모른다고.

먹고살기 위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잘 살 수 있는 미래를 위해 참고 견뎌야 하는 모든 일상,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소외감, 통증, 불안...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의 고통. 이 모은 것을 잘 견뎌내고 나면 슬픔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티켓을 줄 것만 같은. 그래서 그 티켓을 받은 눈 감고 영원히 잠든 그들은 참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지도.


영안실로 내려와 검은 상복을 입은 계장님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나... 이제... 진짜 고아네...]


3, 4월이 되면서 회사며 주위에서도 부고 소식이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새로 돌아온 봄부터 겨울까지의 사계절을 버텨낼 제간이 없으신 어르신들은. 유독 봄에 세상을 등지고 저세상으로 떠나시는 분들이 많다. 나이 40이 되어도, 50이 되어 반백이 되어도. 부모님의 빈자리는 늘 공허할 것이다.


영화 [더 파더]에서 치매에 걸린 앤서니 홉킨스가 뒤죽박죽 된 기억과 왜곡된 현실을 마주하며 혼란스러워할 때 불안한 눈빛으로 울부짖으며 해던 말이 떠오른다.

[Oh! mammy...]

더파더.png 영화 [더 파더] 중

우리 눈에 비친 80대의 그도 엄마가 있었고, 또 누군가의 아들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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