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사나흘에 한 권씩 책을 읽어댔다.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글을 잘 쓰고 싶어서.
그동안 글을 쓰고자 하는 자라기엔 부끄러운 독서량이었기에, 그 점을 보상이라도 하듯 회사에서. 집에서. 틈만 나면 책을 끼고 살았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책의 매력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글 쓰는 게 자신이 없어졌다.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위해 집에서 입고 나온 트레이닝복에 밑창 해진 운동화를 신고 '나는 할 수 있다!'며 철없이 의기양양해하는 애송이만 같았다.
[나는 여전히 인간으로서도, 작가로서도 미성숙했다. 그를 온전히 이해하고 키워서 존재로 탄생시킬 능력이 없었다. 이 무지막지한 존재를 책임질 용기도 없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쓰겠다는 '욕망'뿐이었다. '유진'을 여러 형태로 그려낸 이유다. 등단작인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에선 정아의 아버지로, (내 심장을 쏴라)에선 점박이로, (7년의 잠)에서는 오영제로, (28)에서는 박동해로. 매번 다른 악인을 등장시키고 형상화시켰으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목이 마르고 답답했다. 그들이 늘 '그'였기 때문이다. 외부자의 눈으로 그려 보이는 데 한계가 있었던 탓이다. 결국 '나'여야 했다. ]
- [종의 기원] 정유정 작가의 말 중-
매 순간, 섬뜩할 정도로 자세히 표현된 감정, 행동, 느낌...
사이코패스 자신이 아니면 아니, 본인도 이해하지 못한 내면 깊숙한 감정까지 적나라게 그려낸 '유진'을 정유정 작가는 완벽하게 껍질을 벗겨 퍼득거리는 날것 자체를 활자로 표현해 냈다. 글을 읽는 내내 스며드는 경이로움에 나는 몸서리를 쳤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미성숙한 작가라 말하고 있다.
처음 느꼈다. 지나친 겸손함은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래도 글좀 쓴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공모전을 기웃거렸던 나의 사기는 완벽하게 꺾였다.
'그럼 나는 뭐란 말인가?'란 반사적인 내면의 물음 앞에서.
그래서인지,
이틀이 멀다 않고 글을 올려댔던 브런치의 말갛고 하얀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가.
모음과 자음을 혈란 하게 눌러대던 키보드 위의 손가락 춤사위가 새삼스레 겁이 났다.
내가 쓴 글은 대체 어느 정도로 평가될까?
국민학교땐 '수우미양가', 중고등학교땐 '0~100'까지 중 어느 숫자, 대학땐 A부터 F까지.
수없이 나를 줄세워 대던 제도적 틀속에서의 평가 결과들이 머릿속을 쉼 없이 맴돌다 불현 든 내 맘 속 작은 소리에 이네 사그라들었다.
'네가 글 쓸 때 행복해서 쓰기 시작한 거잖아..'
마음속 긍정 센서가 어두컴컴하고 침울한 마음을 비집고 한줄기 빛을 쏘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