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벨소리가 울리는 침대 옆 테이블로 손을 뻗어 잠이 덜 깬 실눈으로 발신자를 확인했다.
[어머니]였다.
"네 어머니."
수화기 너머엔 흥분하다 못해 화가 난 어머니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는 어떻게 잠을 자면 듣지를 못하냐. 전화를 안 받아 난리가 났다. 어떻게 그렇게 까지 너는...'
터져 나오는 어머니의 속사포 같은 공격에 나는 고개를 획 돌려 안방 벽시계를 확인했다.
7시 05분.
"네. 어머니 일어났어요. 지금 준비하면 안 늦어요." 하며 겨우 통화를 마무리했다.
사건의 전말은 그랬다. 새벽 출근을 해야 하는 신랑이 5시쯤 집을 나서며 충전 중이던 휴대전화를 침대 테이블에 가져다 두며 6시 30분쯤 전화를 해서 깨울 테니 전화를 받으라고 일러주고 집을 나섰다.
신랑은 약속대로 6시 30분에 전화를 했다. 나에게 6통, 큰 아이 6통, 둘째 아이 4통.
그런데, 아무도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이다. 지각할까 걱정이 된 신랑은 결국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걱정이 많은 어머니는 결국 아버님을 집으로 급히 보냈고, 근처에 사는 형님에게 까지 전화해 우리 집에 가보라고 전했다.
'하....' 한숨이 났다.
늦어도 지각밖에 더할까? 고작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온 가족을 우리 집으로 급파할 일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상식선에선.
나는 잠귀가 어둡다. 그것도 매우.
한번 잠이 들면 아침까지 좀처럼 깨는 일이 드물고, 수면의 깊이 또한 어마어마해 누군가 옆에서 흔들어 깨우지 않는 이상 잘 일어나지 못하는 일도 허다했다. 첫아이가 태어나고 밤중 수유를 할 때도 아이가 깨서 우는 소리를 듣고 거실에서 자고 있던 시어머니와 남편은 안방으로 뛰어왔는데, 나는 자고 있었다.
2시간마다 깨서 울어 대는 아이를 보다 지쳐 잠든 나는 시어머니와 신랑 앞에서 자식보다 잠을 선택한 매정한 엄마가 되어있었다. 어제는, 잠하나를 못 이겨 아침 식전부터 온 가족을 집결시킨 생각 없는 며느리가 되었고.
나는. 나로 인해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는 게 정말... 싫다.
그건, 엄마를 꼭 빼닮았다.
무일푼으로 결혼해 아이 넷을 낳고, 온갖 풍파를 겪으면서도 엄마를 도와주는 이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엄마 혼자 늘 만취인 신랑을 거둬야 했고, 배고픈 아이들을 먹여야 했고, 새벽부터 일어나 나락먼지를 뒤집어쓰며 쌀포대를 지어다 나르며 일을 해야만 했다.
'독고다이'.
그것이 엄마의 인생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싫어했다. 그것이 자식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결혼한 자식의 집은 집들이와 아이가 태어났을 때 들여다보는 것 이외엔 들어서면 큰일이라도 나는 양 멀리했다. 나는 그렇게 칼로 자르듯 자신의 구역과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엄마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어제 일어난 이일도 신랑입장에선 가족끼리는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였고, 나는 왜 가족들에게 이런 민폐를 끼치냐는 생각에서 극명하게 갈렸다.
살아온 환경은 어쩔 수 없는 걸까?
시인 '이상'도 자신을 남다른 이상한 존재, 분열된 자아로 인식하며 살아가게 된 것을 어린 시절 부모의 따뜻한 사랑도 받지 못하고 컸던 경험과 학창 시절 동급생들에게 당한 고통으로 말미암았다는 의견이 다분하다.
다름을 인정해야 하고, 나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생각의 흐름은 이전으로 돌아가는 이 회귀본능의 무한궤도를 수정하기는 참으로 어려워 난감하기 그지없다.
오늘은 6시 30분 알람소리에 번쩍 눈이 띄었다. 정신 차려야 한다는 마음속 되새김질에 밤사이 5번을 깼고, 그 덕에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게 눈꺼풀이 무겁고, 머리가 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