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고 모든 게 당연한 건 아니다.

가깝고도 먼 가족.

by 발돋움

'기쁨을 나눌 사람이 있나요?

주말아침. 브런치를 순회하다 발견한 내 마음을 두드린 한 문장이다.


무심히 휠을 돌려대던 검지손가락을 마우스에서 살짝 띄우며, 가만히 기억을 떠올려 본다.


기간제며 특수업무직을 지루하게 이어오다 처음 정규직 발표가 났을 때.

아이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수필공모전에 수상했을 때.

새벽까지 공부하며 매달리던 기사 시험에 합격했을 때.


처음 소식을 건넨 사람...


신랑과 시어머니였다.


그럼. 나에겐 친정이 없느냐고 누군가 궁금해한다면.

있다.

나는 4남매의 3녀로 태어났고, 부모님도 인근에 거주하신다.


내게 기쁜 소식을 전할 사람에 대해 글로 물음을 건넨 브런치 작가님은 기쁜 소식을 건넬 사람으로 당연히 가족들이 있다고 했다.

이대목을 읽고 나는 다시금 그 글의 제목에 내용을 접목시켰다.


[가족은 당연히 기쁜 일을 나누는 존재.]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가지는 인간관계. 가족.

그런 가족에게 나는 무한히 편안한가? 그들은 나에게서 가족의 사랑을 느끼고 있을까?


자영업을 하는 동생이 가끔 휴가 내고 집에 있는 나에게 건네는 "팔자 좋네~"라는 말.

승진이 다른 사람보다 빠른 신랑에 대해 시기 어린 시선을 건네는 언니들.

농사를 짓는 아버지가 쌀 좀 달라는 딸에게 '너네 시댁에서는 쌀도 안주더냐?...


마음이 비뚤어서일까? 쓸데없이 예민한 탓일까?

듬성한 필터링으로 걸러지지 않고 빠져나가 버렸으면 하는 모든 가족들의 말들이 모두 나에겐 비수가 되어 가슴 깊숙이 내다 꽂혔다.

그래서 휴일엔 일부러 동생 가게에 들르지 않았고, 신랑 승진 소식도 친정엔 전하지 않았으며, 쌀 달라는 말도 엄마의 쌀 떨어질 때 되지 않았냐는 물음이 있기 전까진 꺼내지 않았다. 친정 갈 땐 가진 옷 중 가장 허름한 옷을 골라 입었고, 끼고 있던 반지와 귀걸이는 뺐으며, 밥만 먹고 부리나케 일어나기 바쁜 그곳이... 나의 친정이다.


그런 가족에게 나의 가장 기쁘고 행복한 일을 전할 수 있을까?


어쩌면 가족이 제일 어렵다.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제일 모르는...

가까운 경쟁자. 잘되면 서로 시기와 질투의 대상. 가식적인 대화. 그 속에 사막 같은 무미건조.


그에 비해 시댁은 달랐다.

따뜻했다.

어머니는 불같은 성격이시긴 하지만, 가족일에 누구보다 헌신적이셨고,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내가 어머니 자식으로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셨다.

친정에선 좌불안석이던 내 마음도 어머니 앞에선 털썩 내려놓아 졌다. 주방에서 요리하시는 어머니를 두고 나는 거실에 누워 뒹굴거릴 수도 있었고, 힘든 일이 있으면 무작정 어머니에게 찾아가 목놓아 울 수도 있었다.

그러니, 가장 좋은 일 기쁜 일이 있으면. 시어머니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할 수밖에.


모임에서 친구들이 명품백을 들고 왔을 때도 에코백을 든 나는 부끄럽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기꺼이 부러워하며, 선물한 친구의 신랑들을 칭찬해 줬다. 나는 명품백에 별 의미를 두고 살지 않으니까.

그러나, 딸바보 아버지, 의좋은 형제자매, 배려 깊은 가족사랑이야기를 전하는 이들을 대할 때면 어딘가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에 작아진 나는,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입이 닫는다.


원래, 기쁨은 공감이 안된단다.

공감은 슬픈 일, 좋지 않은 일에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니, 그것이 꼭 나를 낳아준 부모나 친 형제 자매가 아니어도, 기쁨을 나눌 대상이 있다는 것 만으로 얼마나 큰 행운인가?


잠 많아 전화도 못 받는 며느리 사랑해 주시는 어머니, 고집세고 심술부리는 마누라 아껴주는 신랑, 공부는 둘째치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 두 아들 녀석이 오늘따라 더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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