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점심.
커피 한잔과 함께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TV를 보던 중 카톡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카톡 미리 보기에 뜬 내용을 보고 부리나케 확인해 보니. 절친의 어머니의 부고 소식이었다.
류머티즘관절염으로 긴 시간 투병을 이어오셨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부고소식을 알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 달 전 친구들끼리 놀러 가던 중 운전 중이던 친구가 스피커폰으로 어머니와 통화할 때
"운전조심해서 잘 다녀와라" 하셨던 목소리가 귓전에 생생했다.
친구는 분명 밥도 못 먹고 울고 있을게 뻔했다.
피부도 안 좋아 스트레스받으면 뒤집어지는데... 예민해서 스트레스받으면 잠도 잘 못 자는데...
어쩌고 있을지 걱정이 떠나지 않아. 또 다른 절친에게 연락을 했다.
"나 지금 가족여행 와서 내일 가봐야 할 것 같아."
"알았어. 그럼 내일 같이 가고, 오늘은 내가 먼저 가볼게"
나는 검은색 셔츠, 팬츠에 네이비색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친구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학창시절 자주봤던 친구의 동생이 나를 맞았다.
"언니 왔어요?"
"응. 고생이 많지? 얘는 어딨 어?"
"언니, 너무 많이 울어서 지금 누워 있어요"
"그래."
향을 피우고 절을 두 번 올리고, 상주에게 절을 올리고 나서야 위태위태 서있는 친구를 발견했다.
친구는 나를 보자 품에 안겨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는, 꼭 안아 주며 등을 쓸어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 너무 아프고 힘드셨잖아. 이제 편하게 쉬게 해 드리자 "
친구의 상태는 내가 생각한 상황보다 심했다. 얼굴은 발적으로 벌겋게 달아올라있었고, 다리는 퉁퉁부어있었다. 온몸에 가려움증도 심한 상태였다.
"병원 가자. 일단 병원 다녀오자. 산사람은 살자. 친구야"
외투하나만 걸치고 나는 친구를 응급실로 이끌었다. 응급실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타오며 나는 이야기했다.
"밥을 먹어야 돼. 안 넘어가면 국에 말아서라고 먹어. 그래야 살아. 약도 잘 챙겨 먹고 "
"응." 울음을 삼키듯 친구는 대답했다.
"너처럼 엄마한테 잘한 딸은 대한민국에 없다. 친구야. 미안해하지 말고,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네가 너무 많이 울면 엄마가 편하게 못 떠나시잖아."
"응... 너도. 엄마한테 잘해드려. 서운하다 생각하지 말고."
내일 다시 오마 약속하고 친구를 장례식장에 들여보네며 되돌아오는 길 자꾸만 친구의 마지막말이 마음을 두드려 댔다.
'엄마한테 잘해드려.'
부모자식 사이에 하는 행동, 말이 어떤 이유가 있어서,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들이 있을까?
자신의 분신인 자식에게.
나를 핏덩이부터 지금처럼 사람구실하고 살 수 있게 키워준 부모에게.
서로 잘해야 하는 이유 따윈 없다. 그저 당연히 그리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뭐가 그리 서운하고. 뭐가 그리 화가 나고. 또. 왜 그리 미워했었는지.
집으로 향하던 핸들을 틀어. 친정으로 향했다.
아빠는 거실에서 화투를 펴 그림 맞추기 중이셨다.
"어. 왔나?"
"응"
부엌에 있던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챙기기 바쁘다.
"너 장아찌 담은 것 좀 가져가볼래. 요즘 밥에 콩은 같이 넣어 먹냐? 콩 좀 줄까? 쌀은 안 떨어졌냐?"
엄마가 주시는 음식들을 모두 감사히 챙겨 집으로 향한다.
나는 아직 멀었다. 철이 들려면.
나는 아직 멀었다. 자식의 도리를 깨우치려면.
나는 아직 멀었다.... 그러니, 엄마 아빠가 그때까지 건강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