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15년 타던 스틱 자동차가 갑자기 길 중간에 멈춰 섰다.
기어도 들어가지 않았고, 액셀도 말을 듣지 않아 도로 한복판에 꿈쩍 않고 서 있었을 때 신랑은 멀리 출장을 갔고, 남동생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돌발상황이 운전 중 처음이었던 나는 보험회사에 전화 걸 생각도 못하고 애먼 신랑에게 전화해
"왜 오늘 출장을 간 거야!"며 생떼를 썼다. 주위 자동차들은 모두 시끄러운 경적을 울리며 나를 지나쳤고, 움직이지 않는 차속에서 자동차 핸들이며 기어를 이리저리 휘졌느라 고조된 당황함에 심장과 얼굴이 터져 버릴 것처럼 달아 오른 나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차가 안 움직여요? 내려 보이소."
아저씨는 능숙한 솜씨로 시동을 끄고 기어를 올린 후 다시 시동을 켜 내 차를 안전한 도로 옆으로 세워 놓으시고는 "레커차 불러 보이소"하며 유유히 사라지셨다.
브레이크 등이 나갔을 때도 그랬다. 모르는 아저씨가 차문을 내리고 내 옆에 차를 세우시더니
"브레이크 왼쪽 등이 나갔어요~"를 남기고 가던 길을 재촉하셨다.
옛날에 그러니깐, 한 20대쯤? 까지의 나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성격도 내성적이라 모르는 이에게 다가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도 하거니와, 인간관계의 필요성도 딱히 느끼지 못했다. 나는 나하나는 먹고살 만큼 밥벌이는 하고 있었고, 취미도 혼자 책을 보거나, 조물조물 집중해서 뭘 만들거나, 식물 키우기 같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만을 즐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고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혼자는 어렵구나'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코로나시국을 겪으며, 지독한 외로움에 차라리 사람들 만나고 코로나 걸리는 게 났겠다는 생각을 했고,
아이를 키우며, 체력의 한계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나눌 누군가도 반드시 필요했으며,
신랑이 은행에 다니다 보니 잡다하게 보험이나, 어플가입, 예금, 적금 등을 부탁할 지인이 필요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함께하는 게 어려웠던 게 아니라, 도움을 받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내 부탁이나 요구가 상대방에게 민폐가 될지. 어떨지... 부탁해도 될 만큼 내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였는지. 아닌지... 늘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신랑이 부탁한 은행 권유직원 등록을 위한 어플가입을 점심시간 탈의장에서 이야기하자 직원들이 어릴 적 공기놀이 하듯 머리를 맞대고 앉아 내 설명을 들으며 하나 같이 휴대전화를 두드려 줬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게 꼭 미안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나도 그들의 부탁을 들어줄 자세가 늘 되어 있으니까.
혼자 가면 빨리 가고, 같이 가면 멀리 갈 수 있단다.
힘든 일도 많고, 어렵고, 괴로운 일도 천지인 인생인데, 서로서로 도와가며 살면.
그래도, 살만할 것 같다.